한살이 한살이 강길수 장롱에서 소중한 것을 꺼내놓고 쳐다본다. 낡아 못쓰게 되어 버릴까해서다. 스무 해도 더 내 손에 붙어 다니며 정이 듬뿍 든 물건이다. 내용물이 많을 때는 접은 가죽부분을 펴 크게 하여 쓸 수 있도록 편리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각 모서리도, 손잡이도 많이 닳아있다. 무엇보다 직육면..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8.05.03
홍시 홍시 강길수 “야야, 이것 좀 머 바라!” 어머니께서 바가지에 커다란 홍시 네다섯 개를 담아 내놓으며 한 말입니다. “귀한 걸 집에나 먹지, 말라고 이때까지 나 둤노?” 저는 고마운 마음을, 이처럼 퉁명스럽게 대답 하면서 홍시 한 개를 집어 들었지요. 그리고는 어머니 가슴에 그만..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8.04.21
숯불찌개 당번 숯불찌개 당번 강길수|姜吉壽 아버지! ‘학교 늦겠다!’고 어머니가 제게 성화이십니다. 나른한 봄이 와 그만 늦잠을 잔 것이지요. 저는 부스스 일어나 눈곱을 비비며 마당에 내려섭니다. 커다란 황소가 배고프다고 ‘음매, 음매!’ 하며 연거푸 보채댑니다. 저는 외양간을 지나 쇠죽솥가로 갑니다. ..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8.04.03
보이지 않는 등록금 보이지 않는 등록금 강길수 버스에 올랐다. 두 시간 정도 가야 하기에 잠시 눈을 붙이겠다고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는다. 오늘 받을 수업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몸이 천근같이 무겁다. 오늘이 실험실 콘크리트 바닥에 헌 골판지를 깔고 회사 근무복을 입은 체, 쪼그리고 누워 토끼잠을 잔지 일..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8.03.15
삼월 삼월 강길수 나는 삼월과 연(緣)이 깊다. 음력으로 동짓달에 있는 생일을, 무슨 이유인지 양력 삼월일일로 출생신고를 아버지가 하셨다. 세상에 태어나서 두 달 만에 삼월과 공적으로 관련 지워진 것이다. 진짜생일 따로, 서류상생일 따로 인 삶을 산 것이다. 이 점은 그 시대에 태어난 많은 아이들이 ..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8.03.06
고추모종 고추모종 강 길 수 봄이 무르익자 작은 밭이 가관이다. 생명력 뽐내기 시합이라도 벌어진 걸까. 어느 곳엔 호박새싹이 빼곡히 솟아올랐고, 들깨새싹은 온 밭을 덮어 씌웠다. 감자에 달래, 나팔꽃, 돌미나리, 심지어 자두나무새싹도 드문드문 돋아났다. 그 뿐 아니다. 참외, 수박은 ..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8.02.08
요한에게(2) 우리 아들 요한아! 추워지는 날씨에 고생한다. 가을인가 싶더니 거리의 가로수들은 낙엽 다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구나. 또 한해가 가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집에는 다 건강하고, 별 문제도 없다. 네 동생이 동원훈련 갔다가 옮아온 감기에 너희 어머니가 옮아 한 열흘 간 기침을 조금했다. 지금.. 아름답기/편지 가람 2007.11.24
양학동 등산로[7](반갑습니다) 양학동 등산로[7](반갑습니다) 강 길 수 “아저씨! 의원 출마하려 하세요?…” 지나가는 이의 기분 좋은 농담 인사다. 십일월도 사흘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푸르러 높은 하늘이다. 사람들의 가을은 어떠했을까? 그들의 마음은 저 맑은 하늘처럼 텅 비워졌을까. 나는 오늘도 양학동 등산로를 걷고 있다. ..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7.10.31
묵사발 가을 순례길 마르첼리노... 지난 주말은 오랜만에 우리 인생길과도 같은 여행을 하였다네. 여행이라기보다 가을순례길이라고 하고싶으이.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들국화가 그 연보랏빛을 수줍고 정갈하게 발하며, 고속도로나 도로 연변, 산기슭, 개울가에 지천으로 피어올라 이 가을을, 이 산하를 .. 아름답기/편지 가람 2007.10.12
갈 나들이 세레나...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가족 모두 건강하시구요? 가을이 오는가 했더니 어느새 가을이 깊었습니다. 세레나의 이 가을은 어떠신지요? 갈 나들이라도 하셨나요? 생각같아서는 갈 억새 느끼러 어디라도 한 번 훌쩍 떠나고 싶어도 그 것도 못하고 지냅니다. 별로 하는일도 없이 마음만 바쁜 시간.. 아름답기/편지 가람 2007.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