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한살이

보니별 2008. 5. 3. 00:55
 

                                              한살이


                                                                                                    강길수


   장롱에서 소중한 것을 꺼내놓고 쳐다본다. 낡아 못쓰게 되어 버릴까해서다. 스무 해도 더 내 손에 붙어 다니며 정이 듬뿍 든 물건이다. 내용물이 많을 때는 접은 가죽부분을 펴 크게 하여 쓸 수 있도록 편리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각 모서리도, 손잡이도 많이 닳아있다. 무엇보다 직육면체의 형태를 유지해주는 받침판의 지지상태가 느슨해졌다. 접은 부분의 가죽은 삐죽하게 틈새로 나와 있다. 발도 떨어져 나갔다. 게다가 한쪽 넓은 면은 장롱 속에 보관하며 옆에 둔 반짇고리 모서리와 닿으면서 많이 긁혀있다. 더 이상 쓸 수가 없겠다.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어본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구석구석에 내 삶의 흔적이 눈에 선하게 배어있다. 차마 버리기가 아깝다. 수리가 가능하다면 벌써 수리했을 것이다.

  속은 아직도 멀쩡하다. 새로 샀을 때나 별반 다름이 없다. 언제 꽂아두었는지도 모르는 볼펜과 샤프펜이 필기도구 꽂이에 꽂혀있고, 자료 몇 장과 어떤 카탈로그도 서류꽂이에 들어있다. 속은 낡지 않았어도 겉 때문에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버리기가 더 아깝다. 그래도 어떡하랴. 사람 사는 일이 그럴 때가 많듯, 아까워도 버려야 한다.

 

  젊은 날, 처음 옮긴 직장에서 출장 다닐 일이 많아졌다. 따라서 가방이 필요했다. 어떤 동료들은 제법 큰 돈을 주고 공공칠 영화의 제임스 본드가 들고 다니는 것과 흡사한 것을 샀다. 하지만, 내 생활관(生活觀)으로는 그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산 것이 이 가방이다. 인조가죽으로 만든 싸구려 공공칠가방이다. 멋과 내구성이 좀 못하지만, 출장 다니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국내출장은 이 가방 하나면 충분했다. 서류나 자료, 옷가지 서너 개, 양말 두세 켤레, 여행용 세면도구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해외출장도 이 가방 한 개로 대부분 족했다. 주로 두 주 미만의 단기출장을 다녔기 때문이다. 귀국할 때 다른 여행용가방이 생겨있는 경우도 어쩌다가 있었지만, 대부분 쇼핑백 한 두 개만 늘어나면 되었다.

  출장 다니며 내가 만난 대상(對象)들은 똑같이 만난 가방…. 우리나라의 전국 주요 공장지대는 거의 다 만났다. 달걀이 익을 정도로 뜨거운 벳뿌 온천을 자랑하며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아름다운 십일월의 일본 큐슈지방과도 만났다. 장엄한 로키산맥의 만년설과 교과서로만 보던 거대한 툰드라, 상록수의 숲으로 덮인 이월의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콜롬비아지방도 만났다. 황량함과 피골이 상접한 노인으로 기억되는 곤궁한 인도대륙의 동남부 이월의 부바네스와 지방과도 만났으며, 진주처럼 맑은 센토사 섬과 도시 전체가 대 정원과도 같은 삼월의 싱가포르와도 만났다. 도쿄, 엘에이, 뉴델리, 홍콩과 같은 큰 도시들의 밤과도 만났다.

  가방이 만난 것들이 어디 겉으로 보이는 세계뿐이었을까. 가방 속이 만난 것들이 실은 더 중요하리라. 가족들이나 직원들에게 줄 작은 선물들을 만나기도 했고, 간단한 세면도구는 단골손님이었다. 땀에 젖은 내의나 발 고린내 밴 양말은 무시로 만났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방 속은 언제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만남이 압도하고 있었다. 출장지에서 주거나 받으며, 설명하고 해결해야할 서류와 자료들과 목록들이 그 것이다. 답답함과 긴장, 막막함과 궁리, 집중과 연구로 점철된 가방속의 세계였다. 더구나 수천 톤씩 수출한 제품의 클레임을 처리하러 갈 때의 팽팽한 긴장감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그 밖에, 어쩌면 지금껏 내가 놓치고 살아온 것들을 가방은 또한 만났을 것이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내 내밀한 모습들 말이다. 남에게 드러내놓기 부끄러운 욕망으로 포장된 또 다른 내 모습을 가방은 만났으리라. 게으름, 교만, 인색, 분노와 같은 것들로 채색된 내 슬픈 자화상도 만났을 것이다. 나도 모르는 버려야할 내 나쁜 모습들과, 간직하고 발전시켜야할 내 좋은 모습들 또한 가방은 만났을 것이다.  

  가방이 내게 말을 하거나 아니면, 가방에 투영된 내 모습을 컴퓨터의 출력창치처럼 읽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긴 시간동안, 내 인생의 성숙기와 성취기를 함께한 가방이, 내 앞에서 가방으로서의 한살이를 마감하려 한다. 아니, 정직하게 말하면 내가 마감시키려 한다. 그러고 보니, 가방도 사람처럼 한살이가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착잡하기 그지없다.

  버려야할 헌 가방 하나를 앞에 두고, 왜 자꾸 아까워지고 아쉬워지는 걸까.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이 가방과 더불어 보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언젠가는 나도 이 가방처럼 세상으로부터 용도폐기 당해야 할 운명의 존재이기 때문일까?

    

  어느 훗날, 내가 세상을 떠나야 될 처지가 되었을 때, 누가 이 가방처럼 나를 두고 아까워하며 지난날을 반추해줄 것인가. 어쩌면 가방은 지금 제 삶을 마감해도 행복해할지도 모른다. 그 한살이를 함께 해 오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내가 곁에 있으므로……. 

  내 한살이의 마감이 가방처럼 되면 좋겠다.


 

    2008.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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