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옆자리

보니별 2008. 5. 8. 10:12
 

                                             옆자리


                                                                                                              강길수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일로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마치 여태 보이지 않던 새로운 세계가 확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년 봄 어느 날이었다. 기도드리며 합장한 두 손처럼 예쁘게 생긴 가운데 잎 사이로 처음 꽃자루가 비죽하게 솟아올랐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아이처럼 뛰며 좋아했다. 삼사년을 그토록 기다리던 군자란 꽃자루였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 며칠 후 아침, 한 뼘 정도 자라난 꽃자루가 거의 구십 도에 가까울 정도로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는 게 아닌가!

 

  우리 집 베란다에는 군자란 화분 두 개와 관음죽 화분 한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아내가 화분들을 기르며 우연히 옆자리에 두게 된 것이다. 마루에서 볼 때 왼쪽에는 관음죽이, 오른쪽에는 두 군자란이 자리한다. 그 양 옆으로는 다른 화분들도 있다. 처음 이 기이한 일을 알았을 때, 화분들의 위치를 바꾸어 주어야 할까 혹은, 그대로 두어야 할까하는 문제를 두고 잠시 망설였다. 결국 군자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화분들을 그대로 두고 관찰하기로 하였다. 좀 더 분명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시간이 가면서 휘어진 군자란 꽃자루에 작은 꽃봉오리가 커지기 시작하자 조금 일어서기는 했지만, 여전히 삼사십도 정도 구부러져 있었다. 맨 오른쪽 화분의 군자란 꽃자루는 햇빛 비치는 쪽으로 약간 구부러지기는 했어도 자연스러웠다. 두 군자란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관음죽쪽 군자란은 꽃을 피워도 꽃자루가 이십 도 정도 구부러진 채다. 맨 오른쪽 군자란의 꽃이 훨씬 더 화려하게 활짝 피었다. 관음죽쪽 군자란이 화분도 더 크고, 잎과 꽃자루도 더 튼실한데도 그랬다.

 

  군자란과 옆자리에 있는 관음죽 사이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작용이 일어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내가 말한 종류가 다른 군자란이라는 점과, 식물들은 햇빛의 에너지로 자라남을 감안해 보더라도 이 군자란의 이상(異狀)현상은 납득 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사람과 식물사이의 애정반응 개념을 동원해보아도 군자란의 기현상(奇現象)은 설명되지 않는다. 아내도, 나도 특별히 관음죽을 더 사랑하고 그 옆의 군자란을 더 미워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맨 오른쪽 군자란보다 더 가까워 손이 가도 한 번이라도 더 갔을 것이다.

 

  식물과 식물사이에도 감정반응이 있다면 혹시 설명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나는 두 가지 가능성으로 생각을 정리하였다. 우선, 관음죽에서 발산되는 생체에너지 같은 어떤 것이 군자란에게 좋지 않는 영향을 끼치는 현상일 수 있고, 다음으로 관음죽이 군자란에게서 자신이 필요한 무엇을 흡수하려하자 군자란이 이를 외면하는 현상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마침내 어제, 일년여에 걸친 내 관찰을 끝내고 새로운 관찰을 시작했다. 왼쪽 군자란 옆에 있는 관음죽을 거실로 옮긴 것이다. 관음죽 옆자리에 군자란이 위치하면 군자란의 꽃자루는 구부러진다는 사실을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똑같이 확인하였다. 그래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상황에서 확인해 보기 위해서다.  만일, 앞에서 정리한 내 생각들이 맞는다면 구부러진 군자란 꽃자루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하루가 지났다. 아니나 다를까, 구부러졌던 군자란의 꽃자루 윗부분이 거의 수직에 가깝게 도로 펴져있다. 이로써 군자란 꽃자루의 기이한 구부러짐 현상은 관음죽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난 것임이 확인된 것이다. 주어진 대로 움트고 자라나서, 꽃피우고 열매 맺는 식물들도 옆자리에 사는 식물과 서로 간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탐스럽게 핀 두 군자란 꽃송이를 다시 바라본다. 구부러졌던 꽃송이가 바로서니 더 아름답다. ‘우연’과 ‘옆자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간은 자기 의지로 의도되지 않거나, 지능으로 이해되지 않는 현상을 ‘인과관계가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 하여 ‘우연’으로 설명한다. 군자란과 관음죽 화분을 아내가 별 생각 없이 옆자리에 두게 된 사실을 나도 우연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군자란 꽃대의 구부러짐 현상도 우연이라 해야 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분명히 무슨 원인이 있을 것이다. 아내는 우연히 군자란 화분과 관음죽 화분을 옆자리에 두었고, 나도 우연히 군자란 꽃자루가 구부러진 현상을 발견했을 뿐이다. 뉴턴은 우연히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한다. 이와 같이 인간 삶의 제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위대한 발견이나 업적은, 보통 ‘영감’으로 표현되는 ‘우연’의 계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익히 잘 안다. 내가 만일 생체 에너지나 식물의 감정반응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군자란과 관음죽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 신비한 현상에서 어떤 새로운 이론을 추론하여 정립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지금껏 간과했던 것이 있다. 우연의 계기를 통해 넘쳐나는 삼라만상의 메시지는 실상 내 옆자리에서, 이웃에서 끊임없이 생겨나 보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메시지의 대부분을 나는 그저 우연이라 여기고 무심히 넘기며 살아왔을 뿐이다.

 

  이제껏 내가 놓치고 살아온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 신비한 군자란 꽃자루는 처음에 워낙 많이 구부러졌기에 알아챘지만, 지금껏 내 옆자리나 주위, 이웃에서 얼마나 많은 덜 구부러진 군자란들을 내가 무심히 우연으로 보아 넘겨왔을까. 그들의 모습이나 소리 혹은, 텔레파시나 영감 같은 애절한 메시지를 얼마나 많이 애써 외면해 왔을까. ‘이웃사랑’을 해야 한다고 배우고 기도하고 말하면서도, 막상 제 옆자리는 늘 우연으로만 여겼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온 게 나였다. 나도 군자란처럼 옆자리에서 오는 메시지를 언제나 느낄 수 있도록 때 낀 마음의 수신기를 닦아내보자.

 

  베란다의 군자란 두 송이! 그 볼그레한 볼이 봄볕에 눈부시다.

 

   2008.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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