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숯불찌개 당번

보니별 2008. 4. 3. 01:33

 

                                            숯불찌개 당번

            

                                                                               강길수|姜吉壽

                                                         

  아버지!

  ‘학교 늦겠다!’고 어머니가 제게 성화이십니다. 나른한 봄이 와 그만 늦잠을 잔 것이지요. 저는 부스스 일어나 눈곱을 비비며 마당에 내려섭니다. 커다란 황소가 배고프다고 ‘음매, 음매!’ 하며 연거푸 보채댑니다. 저는 외양간을 지나 쇠죽솥가로 갑니다. 아버지께서 거기에 쇠죽솥에서 꺼낸 제 세숫물대야를 준비해 놓았을 테니까요. 소가 고개를 들며 쳐다봅니다. 얼굴에 김이 후끈 스칩니다. 제 코는 주인도 모르게 소코와 함께 벌렁거립니다. 구수한 쇠죽 내에 섞인 얼큰한 냄새를 용케도 바로 알아냈지요. 입안에 군침이 사르르 돕니다.

  “ 아부지! 오늘은 동태찌개네요.”

  “ 오, 오냐. 맞다.” 

 

  아버지!

  쇠죽솥에서 김이 나기 시작하면 여물을 뒤집어야 할 시간이지요. 커다란 솥뚜껑을 아버지께서 열어젖히는 소리가 납니다. 외양간의 소가 귀를 쫑긋 쇠죽솥으로 향하며 벌떡 일어섭니다. 여물위에 얹혀진 세숫물 대야를 조심조심 들어내고 나무갈고랑이로 여물을 뒤집지요. 구수한 쇠죽냄새를 잔뜩 머금은 하얀 김이 무럭무럭 나와 바람타고 외양간을 온통 다 휘감습니다. 그러니 배고픈 소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을 테지요. 우리 둥지는 잠시 동안 황소 보채는 소리가 메아리칩니다.

  늦가을에서 이른 봄까지의 아침에는 대체로 쇠죽위에 세숫물대야가 자리합니다. 대야 속의 세숫물은 거의 끓을 정도로 뜨거워서 찬물을 타서 써야 하지요. 큰 양은대야이기에 찬물을 타면 아버지는 물론, 저와 동생까지 세수를 할 수 있는 양이 됩니다. 따끈한 세숫물을 그 때는 제가 싫어했습니다. 세숫물에 밴 쇠죽냄새가 맡기 싫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물은 얼굴뿐 아니라 마음도 씻고 덥히는 참 따뜻한 세숫물이었습니다.

  아버지!

  솥 안 여물위에는 이따금씩 군것질할 것들을 얹어 찌셨지요. 철에 따라 콩, 땅콩, 감자, 고구마는 물론, 알밤 등 쪄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얹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쇠죽솥은 찜통, 여물은 채반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남모르게 준비하여 벌어지는 우리 동기들의 쇠죽솥 군것질 파티는, 마치도 서리를 하는 기분이 함께 연출되어 기막힌 맛에 스릴까지 더하였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장작이 거의 다 타고 쇠죽 끓이기도 끝날 무렵이면, 숯불에 고구마나 감자나 알밤을 구워먹기도 했습니다. 따사한 숯불 앞에 모여서 갓 구워낸 군것질거리를 나누어 먹으며, 도란도란 아버지와 사는 얘기를 나누는 재미는 또 얼마나 솔솔 났는지 모릅니다. 또 있지요. 어머니께서 달걀찜이라도 하는 날엔, 저나 동생이 부엌으로 총총 달려갑니다. 달걀껍질과 쌀을 조금 얻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식구들의 밥 짓기에 바쁜 어머니께는 달걀에 한쪽 구멍만 내고 흰자와 노른자를 부어내리는 일은 무척 성가신 일이었지만, 자식들의 떼쓰기에는 언제나 지셨지요. 얻어낸 두세 개의 달걀껍질에 삼분의 일 쯤 쌀을 넣고, 절반쯤 물을 채웁니다. 그 다음 숯불에 절반가량 묻어 달걀밥을 하지요. 밥이 다 되어갈 무렵 달걀 구멍위로 흰 김 줄기를 내뿜으며, 하얀 밥알이 송골송골 올라오는 모습은 차라리 어여쁜 꽃입니다. 그 꽃은 어린 우리 동기들의 맘을 온통 설레게 하고도 남았지요. 달걀밥의 맛은 언제나 제일이었습니다.

  아버지!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가 가장 그리운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합작품으로 빚어내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찌개입니다. 바로 제가 ‘숯불찌개’라고 줄여서 부른 ‘우리 집 쇠죽솥 아궁이 숯불찌개’ 말입니다. 그 옛날 저 어릴 때, 어머니께서 찌갯거리를 냄비에 앉혀주면, 아버지는 늘 쇠죽솥 아궁이의 벌겋게 단 숯불위에 얹어 놓고 찌개 당번을 하셨지요. 찌개가 끓어 넘치지 않도록 숯불과 냄비위치를 조절하며, 맛있게 끓을 때 까지 기도하는 사람처럼 지켜냈습니다. 숯불과 냄비를 알맞게 조절하는 일은 보통 기술이 아님을 저도 곁눈질로 배워 알지요. 보글보글 끓는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찌개의 맛깔스런 냄새를, 배고픔 가운데 맡는 야릇한 즐거움을 어찌 무딘 제 글로 다 나타낼 수 있으리까.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스르르 도는 찌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찌개 가 바로 숯불찌개였습니다. 어머니의 찌개 앉히시는 솜씨나, 아버지의 숯불 다루시는 솜씨 중 어느 것이 더 좋아서 그 맛이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내륙 산골에 살면서도, 아버지께서 벼 중매인을 하시며 많이 다녀서인지 우리 집 찌갯거리는 늘 종류도 다양하고 풍성했습니다. 된장과 김치찌개는 여느 집과 다를 바 없이 주 메뉴였으나, 아버지가 시내에서 볼일을 보고 들어오시는 날엔, 어김없이 손에 생선 몇 마리가 들려 있었지요. 꽁치, 고등어, 갈치, 조기, 명태 같은 것들 말입니다. 가끔씩은 오징어라든가 돼지고기도 선보이곤 했습니다.


  아버지!

  오늘 아침밥상에 동태찌개가 나왔습니다. 맛이 그 옛날 것만 못합니다. 아내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제게는 사실인걸요. 저는 아버지께서 아시듯, 중학교 이학년 때부터 고향을 떠나 살면서 여러 지방에서 숱한 종류의 찌개를 먹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숯불찌개와 같은 맛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요. 타향에서 찌개를 먹을 때마다, 늘 그리운 것이 숯불찌개였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희 곁을 떠나신지 벌써 열두 해가 지났습니다. 어린시절 식구들과 밥상에 둘러앉아 숯불찌개를 맛있게 나누어 먹은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다투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요. 그리고 우리 동기들도 아버지 계실 때는 물론, 가신 후에도 별로 싸워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 것은 아마도 숯불찌개의 신비로운 효험 때문이라 믿기에, 두 분이 무척 고마울 따름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빚어내신 맛깔스런 숯불찌개와 같이 부부가 함께하는 일상의 작은 일들…….그 일들이 그토록 사람살이에 소중한 것임을 진즉 깨달았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하고 뒤늦게 후회합니다.

  아버지!

  이제부터라도 저는 아버지 따라 집안에서 숯불찌개 당번을 정성껏 하며 살아내고 싶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평안 누리소서.


 

     2008. 3. 22.

 

 ( <에세이 21> 2008. 가을호  )

 

 


'아름답기 > 수필 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살이  (0) 2008.05.03
홍시  (0) 2008.04.21
보이지 않는 등록금  (0) 2008.03.15
삼월  (0) 2008.03.06
고추모종  (0) 2008.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