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고추모종

보니별 2008. 2. 8. 01:30
 

                                       고추모종 

 

                                                                                                      강 길 수

 

  봄이 무르익자 작은 밭이 가관이다. 생명력 뽐내기 시합이라도 벌어진 걸까. 어느 곳엔 호박새싹이 빼곡히 솟아올랐고, 들깨새싹은 온 밭을 덮어 씌웠다. 감자에 달래, 나팔꽃, 돌미나리, 심지어 자두나무새싹도 드문드문 돋아났다. 그 뿐 아니다. 참외, 수박은 물론 파, 상추, 배추에 이름모르는 잡초새싹까지 앞 다투어 솟아올랐다.  밭에 가꾸는 푸성귀들에다 플러스알파까지 다 모여 싹튼 듯 하다. 보기 좋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한줄기 따사한 봄바람에 연록 새싹들이 일제히 살랑댄다. 꼭 유아들이 떠는 재롱 같다. 너무 예쁘다. 생명잔치다. 나도 새싹이라도 된 듯 기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마음이 아파온다. 곧 이 고운 새싹들을 내손으로 다 파 엎어야 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저마다 한 생을 살겠다고 대지를 뚫고 꿋꿋하게 올라온 새싹들…. 이 어린 것들을 고추모종을 위해 아니, 내가 살기위해 희생시켜야 하다니 고추농사고 뭐고 그만두고 싶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겨울 거름하겠다고 이것저것 묻지나 말 것을…. 어떡하든 이 어린 것들을 살리고 싶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만일, 아내에게 고추를 심지 말고 그냥 두자고 한다면 펄쩍뛸 게 뻔하다. 어쩌면 내 정신상태를 의심할지도 모른다. 새싹들이 애처롭고 아까워도 결국 고추를 심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어리고 여린 저 찬란한 연록 새 생명들을 일거에 죽음으로 몰아넣기가 정말 싫다. 그래서 더 슬프다.

  밭 앞에 앉아 봄바람에 환호하는 새싹들을 어루만져본다. 손바닥을 간질인다. 보드랍다. 생명의 신비한 기운이 손을 타고 올라오는 것만 같다. 땅 속에 곧 묻혀질 새싹들의 애처로운 모습이 선하다. 아깝다. 안타깝다. 어떻게 하면 아내를 설득하여 이 고운 새 생명들을 살게 할 수 있을까? 온 밭을 뒤덮은 들깨새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잎이 얇아 바람에 잘도 팔랑인다. 운동회 날 일제히 치는 어린 손바닥들의 박수갈채 같다. 더 애처롭고, 아깝고, 안타깝다. 마음이 아려온다.

  그 때 어디선가, ‘어차피 삶은 유한하고, 그 의미란 사는 기간에 있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났다. 이어서, ‘그래, 맞아. 며칠간이라도 이 어린 것들의 삶을 연장 시켜보자. 그 것도 무엇보다 소중한 일일 테니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내를 불렀다. 이렇게 많이 난 들깨 순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우니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내 마음이라도 읽었는지, 며칠만 기다리면 어리지만 무쳐서 먹을 수 있겠다고 한다. 때를 놓칠세라, 얼른 그리하자고 합의하였다. 반대하지 않고 내 의도에 순순히 따라준 아내가 무척 고마웠다. 아내의 마음이, 고운 이 어린 것들을 살아있는 푸른 별 지구에 딸린 우리 작은 밭에서 며칠간이라도 더 살게 한 것이다.

   이리하여, 고추모종 두 판을 물을 주어가며 베란다에 두게 되었다. 지난 초파일 어머님 제사 모시러 고향에 다녀오는 길에, 이 밭에 심기 위해 얻어 온 것이다. 오늘이 여드레째다. 모종에선 고추 꽃이 한두 송이 피어난다. 모종 할 적기(適期)가 지난 것이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우리 아파트 뒤편에는 각기 한 평 반 남짓한 작은 밭들이 줄지어 있다. 그 중 한 밭이 두해 전까지 우리 집 맞은 호에 살던 할머니께서 알뜰살뜰 가꾸던 밭인데, 이사를 가면서 아내에게 인계하였다.

   지난 두해를 우리가 고추농사를 지었다. 할머니만큼 잘 짓지는 못했다. 그러나 저지난해 보다 지난해가 나았으니, 삼 세 번째인 올해는 기어코 할머니만큼 고추농사를 잘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하여, 지난겨울에 음식찌꺼기, 썩는 호박, 과일껍질, 마늘 대, 들깨대공 등 거름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잘게 썰고, 낙엽과 함께 묻어 두었었다. 올해 고추농사는 더 잘될 게 분명하다. 아내의 정성이 듬뿍 담긴 우리 집 모든 거름재료는 물론, 이 고운 새싹들의 고귀한 희생을 고추모종이 먹고 자라날 것이니 말이다.

  아내는 들깨 새순을 뽑는다. 나는, ‘얘들아 미안하다. 한 생을 다 살지 못하고 고추를 위해서 아니, 나와 우리 식구들을 위해서 지금 너희들을 내가 희생시키겠다. 부디 너무 슬퍼 말고, 튼실한 풋고추로 다시 태어나 우리 만나자꾸나. 그리하여 너희들과 우리가족이 하나가 되어보자’ 하고 속으로 말하며 삽질을 한다. 여린 새싹들은 내 삽질에 의해 다시 저들이 태어난 땅 속으로 묻혀간다. 내 마음에는 삽질소리가 새싹들의 아련한 합창으로 들린다. 가사는 이러했으리라.


“그대 나를 사랑해 주었기에,

  지난 내 삶 짧아도 참 행복했네.

  삶이란 언젠가 한 번은 가는 것.

  길건 짧건 그가 가는 길은

  누군가를 위해 밥이 되어주는 길!

  그 것이 삶이라네.

  그 것이 사랑이라네.

  그 것이 바로 새로 사는 길이라네.

  받은 사랑 돌려주러 나 이제 가는 길…

  그 길이 너무 행복하네.”

 

  밭이랑을 만들었다. 짧다. 거기에 고추모종 두 판을 정성을 다해 심었다. 물도 듬뿍 주었다. 방금 심었지만, 종려나무같이 늠름하다. 밭 앞쪽으로 막대 세 개를 박고, 잘 보이는 붉은 비닐 끈으로 아이들 들어가지 말라고 경계표시까지 마쳤다. 한 평 반짜리 작고 앙증스런 고추밭은 오월 셋째토요일에 이렇게 만들어졌다. 고추모종은 묻힌 새싹들과 거름을 먹고 자라나, 가지마다 주렁주렁 부활한 풋고추를 매달게다. 우리 식구들은 올 한해도 그 맛있는 풋고추를 먹으며 거뜬히 살아 낼 것이다.

  몇 포기 고추모종에 앳되게 핀 하얀 고추 꽃이 백합처럼 아름답다.

 

 

       2008. 1. 20.

 

<보리수필> 6집,  20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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