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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60] 이방주 '자연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연'

[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60] 이방주 '자연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연'기자명 김철희 기자 chk1500@naver.com 승인 2025.04.28 18:15본문 글씨 줄이기 본문 글씨 키우기 바로가기 복사하기다른 공유 찾기강길수 수필가 '어떤 연'...'수필미학' 봄호이방주 문학평론가 섬네일. 사진=데일리한국DB서울대공원은 기린의 먹이통을 목 길이만큼 높은 곳에 설치했다고 한다. 동물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의 일례이다. 기린의 습성을 이해하고 자연을 닮은 서식 환경을 조성해줌으로써 나태한 행동방식에 변화를 주자는 데 목적이 있다. 동물을 보호하고 사육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처럼 스스로 자연에 적응하도록 하는 생태주의 사고의 결과이다.는 1996년에 개봉된 스티븐 홉킨스 감독의 공포 영화이다. 1898년 ..

비겁한 빌라도

등록일 2025-04-21 20:29 게재일 2025-04-22 지난 성지(聖枝)주일 성당 미사 때, 신자들이 함께 읽은 루카 복음 수난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백성의 원로단 즉,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무리가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간다. 무리는 예수가 ‘민족을 선동’하고. ‘황제에게 세금을 못 내게 막고, 자신을 메시아 곧 임금’이라고 한다는 거짓말로 정치범으로 몰아 고발한다. 식민지 이스라엘 주민의 생살여탈권을 쥔 로마 총독 빌라도는 재판 첫 신문에서 예수의 무죄를 안다. 그가 갈릴레아 사람이란 구실로 그곳 통치자 헤로데에게 보내 사건을 떠넘긴다. 예수에게서 기적을 바라던 헤로데는 그의 무대응에 조롱하고, 좋은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보낸다. 둘째 신문에서..

생명의 등불

등록일 2025.04.07 18:17                    게재일 2025.04.08     1시간만 지나면 2025년 4월 3일이 된다.  우리나라의 올해 3월은 지금껏 겪은 같은 달 중에 ‘가장 잔인한 달’이 되고 말았다. 역대 최악의 산불 때문이다. 미국 시인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그의 시 ‘황무지’에서 읊었다. 이제 한국은, ‘3월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속말이 올라온다. 산불 피해자와 진화대원, 봉사자, 공무원, 온 국민이 함께 절규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잔인한 3월을 우리 사회가 만들고 말았다는 사실 앞에 멍할 뿐이다.  보도에 따르면, 3월은 24일 오전 6시까지 전국에 43건의 산불이 났다. 하순에 접어들며 21일 산청, 22일 울주, 23일 의성 순으로..

한 표 차

등록일 2025.03.24 19:54                     게재일 2025.03.25  “할아버지, 한 표 차로 떨어졌어요!” 시외버스 안에서 다짜고짜로 받은 손전화 말이다. 이달 초등학교 2학년이 된 큰 손자의 전화였다. ‘한 표’라는 말로 반장선거에서 낙선했음을 알아듣고, 그래도 2등 했으니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며칠 뒤, 집에 온 손주 녀석에게 반장선거 결과를 물어보았다. 같은 반 학생 28명 중 반장선거에 나온 학생이 10명이고, 1등이 10표, 2등인 손자가 9표였다고 했다. 속으로 손주 녀석이 대견해 보였다. 남들 앞에 나서기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같은 반 학생 모두 선거 결과를 받아들인 건 물론이다. 이 반장선거 결과를 따져보면, 3등이 2표, 나머..

어떤 연

“어! 이게 뭐야?” 나도, 아내도 깜짝 놀랐다. 화장실 세면대 안에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생물 하나가 붙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오륙 년 전, 늦가을 어느 날 저녁의 일이다. 첫 순간은 얼핏 지렁이가 연상되기도 하였다. 나는 불문곡직하고 종이에 그것을 싸 들고 뒤란 작은 텃밭에 방생했다. 그곳은 단풍 든 취나물, 부추, 상추 같은 먹거리들이 아직 있었기 때문이다. 한낱 미물을, 이 정도 배려해 주는 것만도 잘하는 일이라 여겼다. 이 생명체와 우리의 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두세 해 더 보였는데, 그때마다 같은 방법으로 처리했다. 방생 횟수가 늘어나는 동안, 밤이면 싸늘해질 날씨가 마음에 걸렸다. 도시 한가운데이니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애완용으로 키우는 이들도 있다지만, 언..

메멘토 모리

별처럼 빛나는 보도(步道)를 걸어간다. 신년 미사에 가는 길이다.  새로 깐 보도블록 위에 절묘한 각도로 비춰 반사하는 햇빛이 밤하늘의 별들을 데리고 온 듯 반짝인다. 걷는 사람의 기분을 개선장군처럼 달뜨게 한다. 겨울 벚나무들이 보도 왼쪽에 줄을 섰다. 지난 성탄 날은 건물 사이를 빠져나온 된바람이 앙상한 가지를 휘돌아 내려와 걷는 다리를 사정없이 훑었었다. 한데, 오늘은 춥지도 않고 바람도 안 분다.  새해 첫날이 또 다가왔다. 해마다 벽두가 오면 올핸 무엇, 무엇을 잘하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작심 3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늘 현실은 어쩔 수 없다고 자기 합리화 변명을 앞세우며 살아온 것이다. 어떤 해는 새해 계획을 의도적으로 안 해도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자기를 이겨내는 길이 곧 성공’이란..

폐지 리어카, 기다리다

등록일 2025.03.10 18:59               게재일 2025.03.11                지면 18면   인도 한쪽, 가로등 지주 곁에 지날 때마다 쳐다보는 리어카가 있다. 폐지가 가득 실렸다. 바퀴엔 숫자 다이얼식 자물쇠도 잠겨있다. 한데, 리어카는 지난 겨우내 이 자리에서 기다린다. 짐 실은 모습이 다른 폐지 리어카들보다 깔끔해 처음부터 눈여겨보았다. 폐 골판지 상자를 접어 바닥에서부터 바퀴 보호대 한 뼘 정도 위까지 차곡차곡 실었다. 그 위에 접은 장난감 포장 상자 같은 작은 폐지들을 가득 담은 커다란 골판지 상자 너댓 개를 싣고, 고무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폐지들은 긴 시간 햇빛에 색이 바래고, 비도 맞고, 바람과 공기에 부대껴 제법 상했다. 이 리어카의 주인, 폐지 ..

바람, 불다

등록일 2025.02.24 19:51                       게재일 2025.02.25   그제가 우수였는데도 소소리바람이 분다. 꽃샘바람이 더 센 친구를 데려왔나 보다.출근길, 건물 사이를 지나는데 차고 매서운 바람(風)이 가슴속에 스며든다. 하지만, 하늘이 비취처럼 푸르고 공기도 맑아, 정신이 번쩍 든다. 마음과 몸도 새털같이 가볍다. 추워 한겨울 옷을 입었기에 사무실까지 걷기엔 지장 없다. “윙!…”. 동네 공원 나뭇가지를 훑고 내려오는 소소리바람 소리가 발걸음을 다그친다.센 바람도 이맘때 부니 꽃샘바람이 틀림없을 것이다. 아무리 기상이변 시대이지만, 지구 별이 태양을 돌고 꽃샘바람이 봄을 시샘하는 이상 오는 봄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머지않아 북극 냉기가 제자리로 돌아가면, ..

딱지 두 개

등록일 2025.02.17 19:38               게재일 2025.02.18   요에 떨어진 딱지 두 개를 주워 책꽂이 책 앞에 두었다. 송사리 새끼와 나는 새 모양이다. 시간이 가며 그것이 떨어진 피부의 감각과 고통, 느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살펴보고 싶어서다.지난 연말, 왼쪽 겨드랑이 아래 피부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질감이 생겼었다. 약한 통증을 동반하기도 하면서 메뚜기라도 붙어 기어가듯 왼쪽 등으로 갔다가 돌아서 앞 왼 가슴 위까지 옮겨 다녔다. 처음 겪는 증상이었다.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지만, 신경 쓰였다. 속으로, “이게 어른들이 말하던 근육통 곧,‘담’인 게로구나”하고 생각했다.‘텃밭에서 삽질 조금 했다고 담이 다 걸리다니’하는 마음도 들었다. 이삼일이 지나 제야(除夜)가 왔..

고통의 신비

등록일 2025.02.10 19:51                              게재일 2025.02.11   장미 밑둥치들을 살펴본다. 한 주에 두 번은 걸어서 지나는 화단이다. 이곳 장미들은 봄부터 늦가을까지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오가는 길손들을 즐겁게 한다. 처음에는 관심 없이 지나다녔지만, 시간이 가며 이 화단 장미들이 유별나게 곱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지날 때마다 장미들을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곳 장미는 왜 다른 것들보다 더 곱고 크며,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낼까. 내가 알아낸 것은, 정원사가 가지들을 자주 잘라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장미는 매번 가지가 잘리는 고통을 이겨내고 새 가지가 나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젊은이가 더 아름답듯, 새 가지에 피어난 장미꽃이니 더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