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2025.04.07 18:17 게재일 2025.04.08
1시간만 지나면 2025년 4월 3일이 된다.
우리나라의 올해 3월은 지금껏 겪은 같은 달 중에 ‘가장 잔인한 달’이 되고 말았다. 역대 최악의 산불 때문이다. 미국 시인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그의 시 ‘황무지’에서 읊었다. 이제 한국은, ‘3월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속말이 올라온다. 산불 피해자와 진화대원, 봉사자, 공무원, 온 국민이 함께 절규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잔인한 3월을 우리 사회가 만들고 말았다는 사실 앞에 멍할 뿐이다.
보도에 따르면, 3월은 24일 오전 6시까지 전국에 43건의 산불이 났다. 하순에 접어들며 21일 산청, 22일 울주, 23일 의성 순으로 큰 산불이 발생했다. 산불 진화에 연일 사투를 벌인 결과, 월말이 되며 주불은 순차적으로 다 끄고 잔불 정리에 단계에 들어갔다. 4월로 바뀌며 잔불 재발화 소식이 없으니 이젠 다 껐나 보다.
우리 경북의 경우, 4월 2일 밝힌 잠정 산불 피해 집계현황은 사람 사망 26명, 산림 45,157ha, 주택 3,766동, 농작물 3,414ha, 시설 하우스 364동, 축사 212동, 농기계 5,506대, 어선 16척, 문화재 25개소로 밝혔다.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 규모다. 불길에 유명을 달리한 분들, 다친 분들, 집과 농작물, 어선을 잃은 분들의 불행을 어떻게 위로, 치유해 나아가야 한단 말인가.
사람들의 사소한 실수, 방심, 무심, 건조한 날씨, 거센 바람, 또는 알 수 없는 원인이 모여 역대 최악의 초대형 산불로 커지고 말았다. 우리 사는 세상은 왜 이리도 처절한 인과(因果)로 얽혀 있을까. 기상학자 로렌즈(Lorenz, E. N.)의 ‘나비효과’란 말이 대변해 주듯 지구상 아니, 온 우주의 모든 것은 한둘의 사소한 요인이나 실수, 의도가 엄청난 해악을 끼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스도교의 원죄 교리만큼이나 인간에겐 억울한 현상이다.
엘리엇은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1차 세계대전 후 유럽 문명의 붕괴와 인간 존재의 허무를 다루며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다. 더하여 전통과 현대의 충돌, 신화와 현실의 교차를 통해 정신적 황폐와 구원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반면, 우리 박목월은 시 ‘4월의 노래’에서 멀리 떠나와 배를 타거나, 별을 볼 때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렇다. 사람은 지구촌에 생긴 이래 끊임없는 자연재해와 인재(人災)의 재난을 겪으며 생존, 발전해 왔다. 재난을 그냥 당하며 존재해 왔을 뿐인 동식물과 다르다. 따라서, 모든 것을 삼킬 듯이 불탔던 산불로 죽을 만큼 쓰라리고, 괴롭고, 슬퍼도 우리는 다시 4월을 맞는다. 4월에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또 힘을 내어 일어나야 한다. 불탈 때부터 시작된 각계의 온정의 손길들이 희생자, 부상자들과 재산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도와주고 있다.
엘리엇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같이 되어버린 우리의 ‘가장 잔인한 3월’. 피해자들을 돕는 봉사자들 손길이 번지며 치유의 4월이 되고 있다. 이 땅에, 목월과 우리가 염원하는 ‘생명의 등불을’ 계속 밝혀 들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