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2025.03.10 18:59 게재일 2025.03.11 지면 18면
인도 한쪽, 가로등 지주 곁에 지날 때마다 쳐다보는 리어카가 있다. 폐지가 가득 실렸다. 바퀴엔 숫자 다이얼식 자물쇠도 잠겨있다.
한데, 리어카는 지난 겨우내 이 자리에서 기다린다. 짐 실은 모습이 다른 폐지 리어카들보다 깔끔해 처음부터 눈여겨보았다. 폐 골판지 상자를 접어 바닥에서부터 바퀴 보호대 한 뼘 정도 위까지 차곡차곡 실었다. 그 위에 접은 장난감 포장 상자 같은 작은 폐지들을 가득 담은 커다란 골판지 상자 너댓 개를 싣고, 고무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폐지들은 긴 시간 햇빛에 색이 바래고, 비도 맞고, 바람과 공기에 부대껴 제법 상했다.
이 리어카의 주인, 폐지 줍던 분은 어찌 되어 어디로 간 걸까. 아마도 지나치는 길에 한두 번은 만났을 연로한 분이리라. 지난 늦가을, 환절기에 건강에 이상이라도 온 것일까. 바퀴에 자물쇠를 채우고 간 것을 보면, 갑작스러운 사고나 자리보전은 아닌 듯하다. 자녀들이 폐지수집 그만하라고 종용이라도 한 것인가. 그렇다면, 리어카가 여기 있지도 않았을 터다. 아무래도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 같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요즈음은 어찌 된 일인지, 폐짓값도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다. 가끔 집에 모아 둔 신문지를 묶어 고물상에 가져가는 날, 아내는 옛날의 반값밖에 안 된다고 구시렁거리곤 했다. 웹에서 폐짓값을 찾아보았다. 2025년 2월 전국평균 폐지 가격은 ㎏당 신문지가 135.1원, 골판지는 91.0원이었다. 이러니 실제 폐지 수집자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골판지의 경우, 50원/㎏ 정도나 될까.
폐지 줍는 분이 하루에 얼마큼 줍고, 얼마를 버는지 모른다. 하루에 골판지 300㎏을 주워 50원/㎏에 판다면, 그 벌이는 1만5000원에 불과하다. 매일 같은 양을 줍는다는 보장도 없다. 리어카 주인이 올 기초연금 평균 월 34만 3000원과 폐지 주워 받는 돈으로만 산다면, 뼈 빠지게 일해도 최저생활 하기가 어려움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 저변의 절실한 민생문제의 하나다. 그 많은 지자체 의원과 국회 의원 나리들과 보좌관들, 관련 공무원들이 이런 현실을 알고 제대로 쳐다보기나 할까.
정치꾼들은 자신과 정파의 이익에 필요할 때만 ‘국민, 민생’을 들먹이고, 실제는 안중에도 없음을 국민은 다 안다. 폐지뿐만 아니라, 사람이 배출하는 폐기물은 대부분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자원 재활용은 제2, 3, 4의 광산이자 석유요, 천연자원이다. 자원 순환시스템의 활용률을 올리는 일은, 인류의 생존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민생문제들을 이슈화하는 정치인의 보도를 요즈음엔 본 바가 없다,
가로등 지주 곁에서 리어카는 폐지를 가득 실은 채, 오늘도 주인을 기다리며 기도한다. 그가 돌아와 녹슬어가는 뼈대를 닦아주고, 함께 고물상에 가 무거운 짐도 내려주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몰라도, 리어카는 텔레파시로라도 소통해 주인의 행방과 처지를 알 터. 그러니 올 한겨울을 오롯이 턱 버티고 서서 주인을 기다린 게지….
오는 봄 어느 날, 주인장이 쨍하고 나타나 자물쇠 풀면 리어카도 덩달아 하늘을 나는 기분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