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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동 등산로[6](장안선녀)

보니별 2007. 9. 3. 21:14
 

                  양학동 등산로[6](장안선녀)

                                                                        강길수


 선녀 같은 여인이 서서 멀리 바다를 바라다본다. 해뜨는 곳 영일만 바다다. 개선장군처럼 배를 타고 돌아올 낭군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나라의 중책을 맡아 일본으로 떠난 낭군이다. 먼 야산의 낮은 산봉우리가 푸르다. 그 너머 바다는 더 푸르다. 파도치는 하얀 물거품 띠가 가뭇하다. 산도 바다도 오늘따라 더 짙푸르다. 보고픈 낭군 ‘소랑((蘇郞)’이 타고 오는 배는 오늘도 야속하게 보이지 않는다. 애가 탄다. 그녀의 마음은 더한 그리움으로 퍼렇게 멍이 든다. 땅거미가 내린다. 그녀는 힘없이 발길을 돌린다. 낭군이 더 그립다.

 

 벌써 다섯 해를 하루같이 바다를 바라보며 남편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리운 마음이 짙어 이젠 몸마저 성치 않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늘 옆에 있어주던 바둑이마저 오늘은 어디론가 쏘다닌다. 가을이 짙은 바다는 이젠 검푸르다. 그리운 낭군은 역시 오지를 않는다. 그리움이 사무친다. 심장이 까맣게 타오른다.

 

 앙상한 가지의 초겨울이다. 떨어지다 남은 나뭇잎 하나가 안쓰럽게 바람에 팔랑인다. 나뭇잎을 바라다보던 그녀의 마음은 견딜 수가 없다. 낭군에게 가고 싶다. 지쳐 병든 몸이 싫다. 지나간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낭군을 만나 사랑했던 시간들이 마냥 따사롭다. 임금의 얼굴도 스친다.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일부러 남편을 일본으로 보내 놓고,  ‘우리 신라에는 마복자(摩腹子)1)들도 두는데, 무얼 그리 어렵게 구느냐‘며  강압과 회유를 번갈아가며 유혹하던 임금이다. 그 동안 많이도 원망스러웠다. 허나 이젠 다 부질없다 싶다. 팔랑이던 나뭇잎이 떨어져 찬 바람에 날아간다. 그녀는 저 낙엽을 타고 낭군님께 가리라고 맘먹는다. 남편과의 즐거웠던 지난날은 물론, 가슴이 멍들고, 심장이 까맣게 타오르도록 낭군을 위해 바친 지난 오년의 삶이 되레 행복하다.  순간, 그녀는 나비처럼 가벼움을 느낀다. 병들어 초췌해진 육신이 저만치 애처롭다. 하지만 서방님 만날 생각에 즐겁기만 하다. 이젠 산도, 바다도 문제되지 않는다. 그리운 서방님께 그저 사뿐히 날아가면 그만이다. 자유다.

 

 저 쪽에 지난 오년을 기거했던 움막집도 보인다. 쓸쓸하다. 그 옆으로 남편이 타던 말과 집 지키던 바둑이가 어딘가 불안스럽다. 바둑이가 짖어댄다. 말도 덩달아 운다. 불쌍하다. 바둑이가 짖는 소리를 듣고 매일같이 찾아오던 아랫마을 어멈이 나타난다. 어멈이 가슴 치며 울부짖는다. “진즉 말리지 못한 내가 ‘장안선녀’님을 돌아가게 했구나!”하고……. 장안선녀는 “아니야, 난 벌써 알고 있었어. 내가 원했던 일이야!”라고 하지만, 그녀의 말은 웬일인지 어멈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올라온다. 그들은 정성으로 장례를 치른다. 주인을 잃고 죽은 바둑이와 말의 무덤도 나란히 만들었다. 그 옆에 삼간초옥(三間草屋)을 만들어 장안선녀의 혼백을 고이 모신다. 초옥을 ‘망부사(望夫祠)’라 이름 지어 부른다. 그리고 자신이 매일 서서 남편을 기다리던 저 산봉우리 연화봉(蓮花峰)을 망부산(望夫山)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이 모든 일을 지켜보던 장안선녀는 ‘저게 다 무슨 소용일까?’하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고마운 사람들이다. ‘오년 동안 신세 진 일도 많은데, 이 은공을 어이 갚을꼬.’하고 혼잣말을 한다.

 

 그러나 저 멀리 푸른 바다가 일렁인다. 바다위에서 그리운 소랑이 웃으며 자신을 부른다. 기쁘다. 그녀는 반가운 손짓을 한다. 얼른 그리로 날개를 편다. 즐겁다. 지난 세월, 파도에 멍들어 시퍼런 바다처럼 퍼렇게 그녀 마음에 들었던 그리움의 멍이 확 풀어진다. 행복하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삼간초옥도, 그녀의 무덤도, 바둑이와 말의 무덤도 스러져 버렸다.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에는 ‘장안 선녀’가 살아 있었나보다. 왕조가 두 번이나 바뀐 조선왕조의 어느 날이다. 한 암행어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장안선녀의 얘기를 듣고 이런 시를 읊는다.2)


  願望臨碧空  멀리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怨情感離別  이별한 낭군만 그리워할세.

  江草不知愁  강가의 푸른 풀이 야속 하구나

  巖花相爭發  바위의 꽃은 다투어 피건만

  雲山萬里隔  산과 구름이 만 리 길을 막아

  音信千里絶  임의 소식 영영 끊어 졌도다.

  春去秋後來  봄이 가고 다시 가을이 오건만

  相思幾時歌  아니 오는 임 생각 언제 풀 건고.


 또 많은 세월이 흘렀다. 왕조가 사라지고 과학문명의 시대가 왔다. 망부산 동쪽 고갯길엔  넓은 도로가 나고, 많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쌩쌩 오르내린다. 그래도 사람들은 ‘장안 선녀’를 잊지 못하는가 보다. 고갯마루 동쪽에 그녀를 위한 ‘신라소재상부인순절비(新羅蘇宰相夫人殉節碑)’를 세우고, 설명문도 써 게시하였다. 장안선녀는 오늘도 소랑과 함께 망부산에 서서 바다 쪽 자기의 순절비를 보며 웃음 짓고 있다.


 

 

 

1) 신라의 독특한 제도로 임신을 한 여자가 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후 낳은 아들을 마복자라고 한다. 높은 지위의 세력들은 정치적인 지지자를 갖게 되고 마복자는 후원자를 갖게 되는 제도이다. 왕들도 마복자를 가졌고 화랑들이나 낭두들도 마복자를 가졌다. 마복자들은 일종의 사회, 정치적 의제 가족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마복자의 존재는 단순히 성적 문란의 증거일수 없다. 『화랑세기』 1세 위화랑 조에는 비처왕(소지왕)의 마복자들이 마복칠성으로 나오고있다.(백과사전)

2) 조선 세조 때의 한 암행어사라 함.( ‘신라소재상부인순절비’ 설명문)

 

 

 

 

 

 

 

 

 ( <열린포항 > 2008.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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