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리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강길수 | 姜吉壽
그대….
빛바랜 산문집 하나 꺼내 들었습니다. 낙엽 뒤집어 보듯, 책갈피를 뒤집고 첫 글을 열었습니다. 옛날처럼 소리 내어 그 글을 읽습니다.
“…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위에는 ‘아이쎄여, 내 너를 사랑하노라… ’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 때.”
그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아니냐고요? 맞아요. 그 옛날, 풋 냄새 물씬거리던 까까머리시절, 국어책에 실린 ‘안톤슈낙’의 에세이지요. 그대도 이 글을 여태 기억하고, 사랑하는군요.
산문집을 컴퓨터 옆에 두었습니다. 맘 내키면, 언제라도 낭송하며 가을을 살고 싶어서 입니다. 아마도 가을엔, 내 마음이 풋풋하고 애틋했던 학창 때로 돌아가고픈 모양입니다.
“… 공동묘지를 지나갈 때. 그리하여 문득,
‘여기 열다섯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 잠들다.’라는
묘비명을 읽을 때.
아, 어린 시절 그녀는 나의 단짝친구였지.”
… …
그 어느 한 단어, 한 구절도 놓치고 싶지 않는 이 글을 나도 사랑합니다. 젊은 날부터, ‘나는 언제 '안톤슈낙'과 같은 산문을,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꿈만 가슴 깊이 묻어둔 채, 언제나 현실생활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지금껏 살아왔지요.
그대.
“늘 고독했으면서도, 가난한 영혼을 꿋꿋이 지켜오지 않았느냐”고요? 그래요. 언제나 고독하면서도, 가난한 내 마음이었어요. 바람에 날리는 갈대처럼 흔들리며, 바람을 탔지요. 하지만, 갈대처럼 생각에 뿌리를 두고, 갈대처럼 바람을 견뎌내려 했었지요. 그러다가 가을만 되면, 안톤슈낙과 같은 슬픔을 당하며 살았다 싶어요. 가난한 영혼을 지켰는지의 여부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대….
이제 내 마음은 ‘그대’란 실존을 만나, 서로 보듬고 서로 기대며 서로 안식 할 수 있음을 보고 또, 느낍니다. ‘진솔한 이야기를, 처절한 영혼의 외침을 글로 표현하지 않겠느냐’고 권하신 그대의 말씀, 참으로 고맙습니다. 불씨마저 꺼지려던 내 숨었던 마음의 소망을 일깨워 주고, 되살려 줌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살아가렵니다. 비록 능력이 따를지 모르나, 그대 통해 오는 영감과 격려에 힘입어, 힘껏 배우고 쓰며 살아내어 보렵니다.
그대.
그대도 이미 밝히고 있는 ‘예술혼’을, 가을에는 더 밝게 빛내리라 믿습니다. 한 꿈길을 걷는 연인 같은 길벗이 되어, 안톤슈낙처럼 아름다운 가을로 우리 함께 걸어가기로 해요.
그대.
맞아요!
깊은 마음의 일치를 나누는 벗 있으니, 나는 가을이 슬퍼도 행복합니다. 하여, 내 마음은 저절로 가을의 기도를 바칩니다.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
가을에는 슬퍼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그대….
깊어가는 가을 밤,
슬퍼 아름다울 꿈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