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편지 가람

묵사발 가을 순례길

보니별 2007. 10. 12. 15:25

마르첼리노...

지난 주말은 오랜만에 우리 인생길과도 같은 여행을 하였다네.

여행이라기보다 가을순례길이라고 하고싶으이.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들국화가

그 연보랏빛을 수줍고 정갈하게 발하며,

고속도로나 도로 연변, 산기슭, 개울가에 지천으로

피어올라 이 가을을, 이 산하를 찬란하게 수놓고,

웃으며 나를 설래게 했다는 것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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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기 좋아하는 내가 그놈의 '전',

아니 요즈음은 '쩐'이라든가 하는 것 때문에, 

마리안나의 눈치가 엿보여 여행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산다면

자네는 아마도 '허허!'하고 웃겠지?

그녀도 내가 이런 얘길 하면 웃으며 거짓말 마라 하네.

이제껏 한 둥지에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내 뜻대로 살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게 그녀의 지론일세.

 

하지만, 내입장에서는 '사실'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네.

젊은 날 못다한 공부를 삼십대 중반에 시작하여

주경야독으로 어렵사리 학사과정을 마치고,

대학원 원서를 사 수 삼년을 이리저리 재고 또 재면서

출퇴근용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녔었지.

마리안나의 '대학원공부해 어디다 쓸려고 하느냐?'는

실용론을 과감히 뿌리칠 수 없는 경제상황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음 또한 사실이었고.

지금은 그 흔한 디카 하나 내 뜻대로 여태 못사고 있으니 말일세.

 

얘기가 엇길로 빠졌네 그려.

암튼, 우리 부부가  단독으로 간여행이 아니어서,

철저히 앞 스케줄을 모르는 상황에서

그때, 그때 주어지는 상황과 길을 따라 갈 뿐이었지.

마치도,우리네 인생길을 걷는 것 같은 순례길이었다네.

 

전에 성당에서 마리안나가 속한 단체에서 함께 봉사한 자매들이

만든 한 여성단체에서, 신랑들을 초청하여 이루어진 여행이었네.

처음 부터 끝 까지 그녀들의 스케줄에 따랐으니,그럴 법도 하잖은가?

덕분에,

총각때 서울에 두 해를 살면서도 가 보지 못한 '남이섬'에도 가 보고,

그 옛날 버스를 타고 한 번 지나 가 본 것이 고작인

아름다운 춘천 호반도 한 바퀴 돌았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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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꼭 보리라고 맘 먹었던

'메밀꽃 필 무렵'의 '가산 이효석' 생가를 방문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지.

젊은 날, 하도 유명하다기에 읽은 '메밀꽃 필 무렵'의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현장의 주위가 너무 많이 상업화 된 게 안타깝기만 했다네.

역시 여기도 '쩐'이 그 위세를 당당히 누리고 있다고 여겨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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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황에서의 효석 생가 방문...

문학적 탐방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그저 다른 이들과 함께 안내문이나 읽어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네.

 

칠백미터 쯤 떨어졌다는 곳에 있는 평창 군에서 세운

효석의 복원 생가는 멀리서 차타고 지나치며 본 게 다이고,

효석 문학관도 물론 못 가 봤지.

 

가 보자고 하면 갈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나는 그리 하지 않았네.

명색이 문학을 한다는 사람이 왜 그랬냐고?

처음부터 주어지는대로 하는 여행의 묘미에 나도 모르게 젖은 듯 싶으이.

다만 하나, 외딴 생가나 그 주위의 자연, 산, 봉평 동네 등을 바라보며

그 옛날 효석이 어렸을 때를,

마음으로 거슬러 올라 가 보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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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리노...

이어서 간 '허브나라'는 내겐 그다지 감동으로 다가오진 못했네.

'자연 그대로 두었더라면...'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지.

내가 확연히 향을 맡을 수 있는 것은 시중에서

작은 화분에 넣어 파는 몇가지 종류 뿐이었네.

 

비싼 입장료를 내고도 꾸역꾸역 찾아 드는 저 많은 사람들...

나도 그들 중의 하나란 생각을 하노라면 착찹했네.

소문이나 광고, 언론 보도에 우루루 몰려다니는 우리네들 아닌가?

허브나라 농장 주인은 그런 우리 성향을 타겟으로

농장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일세.

 

내 눈엔,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또는 보고 느낌을 위해

제 살던 곳이나 살아야 할 곳을, 사람 손에 의해 억지로 떠나

좁은 밭에서 아옹다옹 사는 모습만 크게 보였네.

게다가 주차장을 만들려는지 장비를 동원하여,

그 맑은 석간수가 흐르는 개울가를

파고 메우고, 콘크리트를 하고 하는 작업이

진행 되는 모습은 '저건 아닌데!...' 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게 하였네.

환경운동가들이 하는 이야기를 이 시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네.

"인간은 살아있는 푸른 지구의 가장 악질적인 비이러스다..."

 

마르첼리노...

내가 학생으로 착각한 서울에서 온 젊은 직장인 아가씨들이

내 묻는 말에 풋풋하게 대답하는 모습과 젊은 목소리라든가,

디카로 사진 찍으며 즐거워하는 모습,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천진스런 행동과 맑은 소리들은

그래도 심산 유곡의 나를 기쁘게 해주어,

또한 행복하기도 했다네.

 

조금 늦은 점심 시간인데,

몇몇 사랍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이어서,

효석생가에서 그리 멀지 않는 어느 메밀음식 식당에서

'묵사발'을 시켜 다 함께 먹고나서는 '비싸고 맛없다'는 푸념들 일색이었네.

상혼(商魂)이 압도하는 세상을 얘서도 실감하고 말았지 뭔가.

말 그대로, '점심이 묵사발이 되었다!'고 말일세.

 

돌아 오는 길엔 '풍기 인삼축제장'에 몰려 가 둘러보고,

싼 곳 '인삼조합 가게'에 들러 수삼 한두 묶음씩 사 들고 귀갓길에 오르니,

가을 비가 또 내리기 시작했다네.

 

주말이라 고속도로 정체 구간 피한다고 도중에 바꾼 길이

되레 둘러 오는 먼 길이 되고 말았다네.

이에 사람들은 또 배고프다고 아우성이고...

 

여덟시쯤 도착한 안강 딱실못 매운탕집은 장사를 끝내는 시간이었는데,

스무명이 들이 닥쳤으니 주인은 즐겁게 다시 손님을 받았다네.

 

취기가 돈 남녀들이 가요방기계앞에서 한 시간정도를

노래하고 춤추고 하다가 받은 저녁상 매운탕에,

짜니 어쩌니 하면서 허겁지겁 허기를 매꾸는 사람들...

 

그리고는 각자의 둥지로 돌아 갔다네.

 

이리하여,

이 가을의 순례길은 효석생가와 묵사발 점심,

그리고 짠 매운탕 순례로 끝이 난 기분이었네.

그래도 '기쁜 묵사발 순례!'란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나도 생의 가을길을 걷고 있는 게지...?

 

마르첼리노...

자네의 이 가을은 어떤가...?

 

 

이천칠년 시월 열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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