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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우스개

등록일 2022.10.16 18:00 게재일 2022.10.17 내 차례가 되었다. 아주머니는 비닐봉지에 땅콩 한 됫박을 부어 넣었다. 앞서 샀던 여자분처럼 내게도 한 움큼 더 주기 위해 좌판의 땅콩을 집는 순간, “며칠 전 집사람이 사 왔었는데 무게가 모자라던데요.”라고 말하자, 아주머니는 두말 안 하고 두 움큼을 더 주었다. 이에 먼저 샀던 여자분이, “왜 이분에겐 더 줘요?” 하고 불평하였다. 단박에 아주머니는, ‘살아있는 우스개’를 한 방 날리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나도, 여자분도 폭소가 터져 나왔다. 기분이 뛸 듯이 상쾌해졌다. 우스개의 요술에 빠졌나 보다. 발걸음 가볍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땅콩 봉지가 보무도 당당하게 갈바람에 나붓거렸다. 우스개 한 마다가 이렇게 사람 기분을 좋게 하다니..

자투리 미리 남기기

등록일 2022.09.25 17:54 게재일 2022.09.26 ‘자투리’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사전적 뜻은, 필요한 것을 ‘쓰거나 팔고 남은 작은 부분’ 또는, ‘기준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거나 적은 조각’을 말한다. 그런데, 미리 남기는 자투리를 뜻하는 단어는 생각나지 않고, 웹상에 찾아보아도 없다. 왜일까. 필요한 것을 쓰기 전에 조금 떼어놓는 일은, 예나 이제나 있을 것이다. 우리 선인들과 국어 연구자들은 왜 이 경우의 말을 만들지 않았을까. 그 말을 알지도, 찾지도 못하니 답답하다. 옷, 이부자리 등 천 제품을 만드는 공정(工程)에서, 불량품 방지를 위해 재단 전 일부러 자투리를 남기는 경우가 있다. 또, 성당에서는 사순절에 이웃을 돕기 위해, 밥 짓기 전 쌀 한 숟갈 모으기 운동을 ‘사순..

누이이며 어머니인 지구

등록일 2022.09.04 18:02 게재일 2022.09.05 8월 마지막 주일. 주보(週報)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가 요약, 게재되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개된 주일미사 때부터 미사 전 주보를 읽는 버릇이 생겼다. 빨리 와야 성당 내에 앉을 수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유행 전에는, 주보를 공지 사항 위주로 대강 보고 넘어갔다. 신문도 관심 가는 기사 이외에는 제목으로 대충 흐름만 파악하곤 했다. 담화를 읽는다. 둘째 단락 첫 문장이 가슴에 와 박힌다. “우리의 ‘누이’이며 ‘어머니’인 지구가 울부짖습니다.”라는 구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가톨릭신문을 통해 전에 본 적이 있으나, 그 내용을 제대로 ..

숨은 사회 카르텔

등록일 2022.08.28 18:19 게재일 2022.08.29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숨은 무엇이 그 저변에 꿈틀거리는 것만 같다. 온갖 일에 참견하고 비난하며, 편 가르고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는 존재인 듯하다. 도대체 어떤 것이 내게 이러한 느낌을 들게 하는 걸까. 취임한 지 1분기밖에 안 된 대통령에게,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고 언론마다 난리굿이다. 신났는지 야당 의원이 ‘대통령 탄핵’이란 망발까지 말한 바 있다. 반면, 어떤 유튜브가 생방송으로 거리에서 조사한 대통령 지지율은 80~90%는 되어 보였다. 왜 이럴까. 여론조사기관의 발표 수치는 내가 피부로 느끼는 그것과는 왜 천양지차인가. 지난달 말, 대법원은 2건의 총선 무효소송을 늑장 기각판결을 했다. 사람들과 단체들이 재작년 4.15총..

우리 사회의 한 수준

등록일 2022.07.31 18:11 게재일 2022.08.01 걸어 출퇴근한다. 일터에 오가는 일과 걷기운동을 겸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사무실 가는 길은 여러 거리를 지난다. 간선도로 서너 곳, 학교 곁 두세 곳, 지선도로 두어 곳, 이면도로가 열 곳이 넘는다. 이렇게 따지니 먼 것 같지만, 약 반 시간 정도 걸린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의 출퇴근 거리(距離)가 흔히 말하는 하루 운동량 만 보에는 미치지 못하나, 내겐 족한 거리다. 거리마다 같거나, 다른 광경들을 만나며 걷는다. 어떤 곳은 담배꽁초 하나 없이 깨끗하다. 반면, 어느 길모퉁이나 바람 모이는 자리엔 많은 쓰레기가 있다. 심지어 식당의 이면도로 앞에도 다량의 쓰레기가 있다. 짧은 시간 걷는 동안 깨끗하거나 지저분한 각기 서로 다른 ..

3일간의 행복

등록일 2022.07.17 17:58 게재일 2022.07.18 ‘우와! 이게 웬 복이야! 나라꽃을 이곳에서 만나다니….’하고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순간, 숙소가 멀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사흘간 오가며 나라꽃 무궁화의 웃음을 보며 오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행복의 물결이 밀려들었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우리나라 꽃’ 노래가 절로 흥얼거린다. 칠월 중순의 둘째 날 아침이다. 숙소가 교육장과 멀어 조금 언짢았던 기분이 되살아나며 모텔 문을 나섰다. 첫 길이라 얼마간 이곳저곳 돌면서 교육장 가는 길을 찾았다. 간선도로에 연결된 주택지 도로다. 노변으로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얼굴, 목, 등에서 땀이 났다. 그런데 초입을 들어서자, 보도에서 활짝 웃는 얼굴들이 도열하고 서서 오는 이를 반기고 있는 게 아..

초록 풀머리

등록일 2022.07.10 18:00 게재일 2022.07.11 졸지에 유명을 달리한 지체(肢體)들의 한이 원혼으로 변해 빙의라도 한 것일까. 짧게 남은 팔뚝들에 숨 막힐 듯 많이 솟아난 잔가지들이, 명부에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혼령들의 초록 풀머리로 보이니 말이다. 하늘로 굵은 팔들을 벌려 연록 생명을 뽐내던 곳이, 인간의 기계톱으로 갑자기 죽음의 아수라장으로 변하던 봄날의 일이 되살아난다. 석 달이 지났다. 팔뚝들이 댕강 잘려 나갔던 언저리에 초록 풀머리들이 빼곡하다. 죽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 나무가 얼마나 처절하게 몸부림쳤으면, 전설의 고향 프로에 나오던 귀신보다 더 빽빽한 풀머리를 달아냈을까. 웬일인지 눈길이 자꾸 초록 풀머리에 머문다. 가지치기 전문가들은 나무의 디엔에이가 작용해 그러니, ..

염치 아는 사람

등록일 2022.06.26 18:00 게재일 2022.06.27 바뀐 녹색 신호등에 따라 횡단보도를 중간쯤 걸어갈 때다. 느닷없이 좌회전 소형 승용차가 스르르 앞을 가로막았다, 승용차 앞바퀴가 횡단보도의 흰 선을 한 걸음쯤 차지하며 멈췄다. 속도가 느려 놀라지는 않았지만, 황당했다. ‘무슨 이런 차가 다 있어?’하고 속에서 부아가 나려는 순간, “죄송합니다!”라는 음성이 반쯤 열린 운전석 창을 달려 나와 마음을 감쌌다. 목소리는 염치를 아는 운전자의 진심을 실어와 정전기처럼 찌릿하게 가슴을 찔렀다. 마음에 일던 반감이 사르르 녹았다. 조건반사같이 운전자에게 접은 우산 쥔 손을 흔들며, ‘괜찮아요!’하고 속말을 얹어 보냈다. 쳐다보니 운전자는 동년배 정도로 나이 들어 보이는 분이었다. 동병상련 같은 감정도..

보석들의 희망

등록일 2022.06.07 18:09 게재일 2022.06.08 손을 흔들며 경보선수같이 빠르게 지난다. 스르르 멈춘 택시 앞이다. 평소 내 습관을 여지없이 깨부순 택시 기사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몸에서 세로토닌(serotonin)이라도 일시에 분비되나 보다. 운전자라면 누구나 상식이나 법상으로 멈춰 서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마음이 기쁘다. 살면서 저절로 관습법처럼 자리 잡은 게 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의 ‘운전자 통행 우선’이란 잘못된 행동양식이다. 그 관습법이 별안간 타파된 즐거움이리라. 오늘 퇴근길이었다. 첫 번째 신호등 없는 건널목에 도착하여 좌우를 살폈다. 왼쪽 2개 차로는 멀리까지 차가 없고, 오른쪽 차로에는 저만치 2대의 차가 간격을 두고 오고 있었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건널..

씀바귀, 도심에 살다

등록일 2022.05.22 18:09 게재일 2022.05.23 보도 가에 흐드러진 붉은 장미꽃이 사람 마음을 흔든다. 뉘라서 저 장미꽃들의 향연에 취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내 시선은, 낮은 곳 구석진 곳에서 또 다른 오월을 밝히고 있는 쪼그만 노랑 꽃에 더 머문다. 내일이면 생명 찬란한 5월도 하순으로 접어든다. 한낮의 햇빛이 따갑다. 보도 곁 잔디잎들은 절반쯤 누렇다. 가뭄 타나 보다. 그런데 잔디 사이에서, 이 목마름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 노란 꽃들이 활짝 웃고 있다. 바로 씀바귀꽃이다. 잔디밭에 더부살이하면서도, 씀바귀는 움츠러들거나 가뭄 타지도 않고 해맑은 얼굴로 모두를 반긴다. 잔디도 씀바귀를 한 식구로 받아들여 사는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저리도 다정하게 보일 수 있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