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누이이며 어머니인 지구

보니별 2022. 9. 4. 23:15

   

              등록일 2022.09.04 18:02                                                     게재일 2022.09.05

 

 

 

  8월 마지막 주일. 주보(週報)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가 요약, 게재되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개된 주일미사 때부터 미사 전 주보를 읽는 버릇이 생겼다. 빨리 와야 성당 내에 앉을 수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유행 전에는, 주보를 공지 사항 위주로 대강 보고 넘어갔다. 신문도 관심 가는 기사 이외에는 제목으로 대충 흐름만 파악하곤 했다.

 

  담화를 읽는다. 둘째 단락 첫 문장이 가슴에 와 박힌다. “우리의 누이이며 어머니인 지구가 울부짖습니다.”라는 구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 받으소서>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가톨릭신문을 통해 전에 본 적이 있으나, 그 내용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다. 환경 분야에서 일해 왔고, 자칭 생태론자로 믿기에 내용은 비슷하리라 여겼었다.

 

  한데, 주보의 담화문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자신의 안일과 타성을 질책하고, 깨부수는 마음이 뒤따른다. 지구가 바로 우리의 누이라는 말 때문이다. 전에 가이아 이론이나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의 편지등을 읽으면서, 대지와 지구가 우리들의 어머니란 비유는 보았으나 누이란 은유는 오늘 처음 만난 것이다.

 

  웹사이트를 검색해보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7년 전 발표한 회칙 이름 <찬미 받으소서>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에서 따온 것이었다. 자연과 소통하며 동물들과 대화했다는 성 프란치스코는, 9세기나 앞선 생태주의 선각자였으리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할 인간의 삶을 몸소 실천하여, 본으로 살아낸 성자 프란치스코. 그가 새 떼들과 말하며 함께 사는 옛 영화의 한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누이어머니란 두 말에서 어떤 어감의 차이를 느끼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차이는 누이어머니보다 더 곱고, 아련하며, 가련하다. 어머니는 약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이는 어머니가 되기 위해, 커가는 여린 나무이지 않은가. 지금 우리 지구는, ‘가련한 누이의 처지일 것이다. 때문에 누이란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기후변화로, 북극의 빙하와 영구동토가 녹는 현장을 답사한 방송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영구동토 해동은, 지구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라 했다. 해동에 따라 동토층에 묻힌 메탄 등 가스가 분출되고, 모르는 미생물들이 유출된다. 이런 현상들이 기후와 생태계에 미칠 영향은, 미증유의 재난이 될 것이란 결론이었다.

 

  슬프게도 우리의 누이 지구는, 중병이 들었다. 제 몸에서 난 게 아니라, 인간에 의해 큰 병에 걸렸다. 개발을 앞세워 무분별한 환경훼손을 일삼고, 온실가스 과량 배출 등으로, 인간은 지구 누이에게 코로나19보다 더한 악성 바이러스가 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교황이 말씀하는 지구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면서’ ‘생태적 회개를 하고, 그 개선 내용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 누이 지구, 하루빨리 중병에서 일어나 해맑게 웃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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