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우리 사회의 한 수준

보니별 2022. 8. 1. 17:14

           등록일 2022.07.31 18:11                                                   게재일 2022.08.01

 

  걸어 출퇴근한다. 일터에 오가는 일과 걷기운동을 겸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사무실 가는 길은 여러 거리를 지난다. 간선도로 서너 곳, 학교 곁 두세 곳, 지선도로 두어 곳, 이면도로가 열 곳이 넘는다. 이렇게 따지니 먼 것 같지만, 약 반 시간 정도 걸린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의 출퇴근 거리(距離)가 흔히 말하는 하루 운동량 만 보에는 미치지 못하나, 내겐 족한 거리다.

 

  거리마다 같거나, 다른 광경들을 만나며 걷는다. 어떤 곳은 담배꽁초 하나 없이 깨끗하다. 반면, 어느 길모퉁이나 바람 모이는 자리엔 많은 쓰레기가 있다. 심지어 식당의 이면도로 앞에도 다량의 쓰레기가 있다. 짧은 시간 걷는 동안 깨끗하거나 지저분한 각기 서로 다른 모습의 거리를 만나는 것은, 생각거리를 만들어 주어서 좋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우리의 사회 수준 하나를 들킨 것 같아 씁쓸한 때가 더 많다.

 

  그럴 땐 젊은 날 일본 출장길에 쓰레기 하나 없는 거리에 많이 놀랐던 기억이 저절로 떠올라, 우리와 비교되곤 한다. 서툰 일본어 실력으로 좌충우돌하면서 도착한 숙소에서 선잠을 자고 일어나, 내다 본 이른 아침 소도시의 거리 풍경.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에 고운 동영상으로 살아 있다. 집집에 한 사람씩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갖고 나와, 자기 집 앞과 거리를 청소하는 멋진 모습이 부러움과 시샘으로도 다가왔었다.

 

  편도 십 리도 안 되는 길이, 거리마다 다른 모양을 보여주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어떤 면을 말하는 걸까. 어떤 이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의 다양성 때문이라 할지도 모른다. 하나, 내가 본 깨끗한 거리에는 숨은 보석들이 살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침마다 보았던 어떤 할아버지의 묵묵한 공원 청소, 부부로 보이는 어느 시니어 봉사자들의 꼼꼼한 쓰레기 줍기, 땀을 흘리며 아침마다 자기 사는 지역 쓰레기를 말없이 치우던 중년 남자 등이 그들이다.

 

  깨끗한 거리는 정부의 일자리 사업 청소가 큰 몫을 차지한다고 본다. 출근길에 만나는 쓰레기 줍는 노인만 해도 족히 스무 명은 된다. 그분들은 정한 구역만 일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소외된 지역의 길은, 숨은 봉사자가 없는 한 깨끗하지 못하다. 일자별로 다른 지역을 배정한다든가 하면 효과가 더 높아질 텐데, 그 많은 공무원과 시··국회의원 등 국민의 머슴들은 어디서 무얼 보고 살피는 걸까.

 

  삶터의 쓰레기 유무를 그 사회 수준의 한 척도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오토바이를 타고 깨끗한 거리에 황야의 무법자처럼, 쓰레기로 될 명함전단지를 휙휙 뿌려대도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다. 잘못된 우리 사회 수준의 사례이리라. 쓰레기는 도시뿐 아니라 시골, 산과 들, 하천과 바다, 하늘에 이르기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없을수록 좋은 게 쓰레기다. 온 나라가 합심하면, 쓰레기 없애기가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이다.

 

  우리는 쓰레기로 버린 담배꽁초가 커다란 산불로 변해, 엄청난 피해를 주고 인명도 앗아가는 불행을 겪었다. 이는 우리가 사회 수준을 높여야만 할 반면교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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