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초록 풀머리

보니별 2022. 7. 10. 23:04

                               등록일 2022.07.10 18:00                           게재일 2022.07.11

 

 

  졸지에 유명을 달리한 지체(肢體)들의 한이 원혼으로 변해 빙의라도 한 것일까. 짧게 남은 팔뚝들에 숨 막힐 듯 많이 솟아난 잔가지들이, 명부에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혼령들의 초록 풀머리로 보이니 말이다.

 

  하늘로 굵은 팔들을 벌려 연록 생명을 뽐내던 곳이, 인간의 기계톱으로 갑자기 죽음의 아수라장으로 변하던 봄날의 일이 되살아난다. 석 달이 지났다. 팔뚝들이 댕강 잘려 나갔던 언저리에 초록 풀머리들이 빼곡하다. 죽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 나무가 얼마나 처절하게 몸부림쳤으면, 전설의 고향 프로에 나오던 귀신보다 더 빽빽한 풀머리를 달아냈을까.

 

  웬일인지 눈길이 자꾸 초록 풀머리에 머문다. 가지치기 전문가들은 나무의 디엔에이가 작용해 그러니, 괜한 데 마음 쓰지 말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과 더불어 살다가, 마침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의 존재다. 이를 자각한다면 온갖 생명체는 물론, 무생물 하나까지도 자연공동체의 일원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어릴 적 산골에서 자라나며 나무와 친하게 지냈다. 나뭇가지를 자치기 막대, 낚싯대, 팽이 등 놀이도구로 쓰고, 피리로 만들어 불기도 했다. 어른들은 의식주를 위해 서까래같이 나무 밑동을 톱으로 자른다든가, 뽕나무처럼 일부 가지를 치곤 했다. 그러나 도시의 가로수나 조경수처럼, 몸체에 붙은 가지를 한두 뼘 정도만 남기고 몽땅 잘라버리는 광경은 보지 못했다.

 

  내 눈엔 나무 가지치기도 인간의 욕구 충족행위로 보인다. 사람이 심은 나무도 생장과 소멸의 아름다움을 자연에 맡겨 두면 안 될까. 살아있는 식물로 인위적인 미를 추구하는 일은 결국, 인간의 자연 지배욕에 닿을 것이다. 대기와 수질오염, 기후변화, 해수면 상승, 자원고갈, 쓰레기 난제 같은 참담한 환경파괴로 나타난 인간의 자연 지배욕은, 이제 지구촌의 생존 여부와 직결되고 있다

 

  석 달 전 출근길에 만난 무자비한 가지치기는, 또 다른 인간의 전쟁터였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만 살육일까. 인간이 무분별하게 자연을 죽이는 것도 바로 살육이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사람이 이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인간도 살아있는 것을 먹어야 할 숙명의 존재인 이상,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먹을거리만 자연에서 구하거나 가꾸어 먹어야 할 것이 아닌가.

 

  무럭무럭 자라는 두 손주가 자연 품에서 웃으며 뛰노는 모습에서, 두 아들 어릴 때보다 더한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어떤 불안과 걱정, 야릇한 슬픔과 죄책감이 가슴속을 헤집는다. 나도, 생명이 살 수 없는 자연을 손주들에게 물려줄 것만 같은 기성세대이기 때문이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2018지구온난화 1.5도 보고서나 관련 전문가들이 지구 기후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 회복 불능 상태 진입을 경고하며 온실가스 억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할아비는, 손주들에게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먼저 간 동기들의 빙의로 태어났을 초록 풀머리들이, 세상에 울부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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