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염치 아는 사람

보니별 2022. 6. 26. 22:17

                                  등록일 2022.06.26 18:00                                                            게재일 2022.06.27

 

 

바뀐 녹색 신호등에 따라 횡단보도를 중간쯤 걸어갈 때다. 느닷없이 좌회전 소형 승용차가 스르르 앞을 가로막았다, 승용차 앞바퀴가 횡단보도의 흰 선을 한 걸음쯤 차지하며 멈췄다. 속도가 느려 놀라지는 않았지만, 황당했다.

 

무슨 이런 차가 다 있어?’하고 속에서 부아가 나려는 순간,

죄송합니다!”라는 음성이 반쯤 열린 운전석 창을 달려 나와 마음을 감쌌다. 목소리는 염치를 아는 운전자의 진심을 실어와 정전기처럼 찌릿하게 가슴을 찔렀다. 마음에 일던 반감이 사르르 녹았다. 조건반사같이 운전자에게 접은 우산 쥔 손을 흔들며, ‘괜찮아요!’하고 속말을 얹어 보냈다. 쳐다보니 운전자는 동년배 정도로 나이 들어 보이는 분이었다. 동병상련 같은 감정도 윤슬처럼 일었다.

 

저분은 얼마나 놀라 당황했을까. 무슨 연유로 신호등 바뀌는 시간을 잘못 헤아리고 교차로에 진입했을 터. 앞 차로에는 직진 차량이 달려오고, 돌아 지나가야 할 왼쪽 횡단보도 신호등엔 초록색 불이 켜져 사람이 걷고 있으니 말이다. 진퇴양난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기 잘못을 깨닫고 즉시, 보행자에게 진정을 담은 사과를 한 침착한 분이다. 염치를 아는 멋진 분을 출근길에 보다니, 기쁜 날이다.

 

즐겁게 사무실로 향하는데 생각의 나래가 저절로 펴졌다. 내게 같은 상황이 생겼다면 어찌하였을까. 아마도 멈추어 서서 당황하여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못 했을 터다. 정신 차린 후에는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차도 피했고 횡단보도 보행자와도 아무 일 없었으니, 천만다행이란 생각만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거다.

 

이어 마음의 소리가 너울져 왔다. ‘그래. 우리 서민들은 살아있는 거야. 아니,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 거야!. 오며 만난 운전자 같은 분, 곧 염치를 알아 잘못을 바로 사과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반면, ‘민주라는 탈을 쓴 지도층이란 이리떼들이 염치도 모르고 설쳐 나라를 흔드는 꼴을 그간 민초들은 많이도 보아왔다. 두고 볼 수 없는 서민들이 에스엔에스 등을 통해 시대의 선지자처럼 울부짖었다. 하지만 정치인도, 지식인도, 주류언론도, 관료도 침묵만 해온 우리 사회다.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트릴 부정선거 의혹이 선거 결과 통계치와 물증으로 드러나도 정치권과 언론계, 학계는 애써 외면만 한다, 사회정의가 사라져가고, 나라의 빚이 산더미로 늘어나도, 국민은 참된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 수년간 답답한 세월만 보냈다. 민초들의 눈에 비친 정치판과 관료집단은 말로만 국민을 팔뿐, 자기나 제 편의 이익과 유, 불리만 따지는 소인배들로 득실거렸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대인 정치인과 관료는 없는 것인가.

 

천우신조로, 지난달 정권이 바뀌었다. 새 정권은 오로지 나라와 국민만을 위해, 무너져가는 사회정의부터 바로 세우는 데 매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사회 저변의 정직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의심받는 선거 정의부터 바로 세우는 일이 최우선과제라고 믿는다. 염치 있는 사회를 향한, ‘새 도덕재무장 운동이라도 벌이면 어떨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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