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2022.09.25 17:54 게재일 2022.09.26
‘자투리’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사전적 뜻은, 필요한 것을 ‘쓰거나 팔고 남은 작은 부분’ 또는, ‘기준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거나 적은 조각’을 말한다. 그런데, 미리 남기는 자투리를 뜻하는 단어는 생각나지 않고, 웹상에 찾아보아도 없다. 왜일까.
필요한 것을 쓰기 전에 조금 떼어놓는 일은, 예나 이제나 있을 것이다. 우리 선인들과 국어 연구자들은 왜 이 경우의 말을 만들지 않았을까. 그 말을 알지도, 찾지도 못하니 답답하다. 옷, 이부자리 등 천 제품을 만드는 공정(工程)에서, 불량품 방지를 위해 재단 전 일부러 자투리를 남기는 경우가 있다. 또, 성당에서는 사순절에 이웃을 돕기 위해, 밥 짓기 전 쌀 한 숟갈 모으기 운동을 ‘사순절 성미(誠米)’란 이름으로 한다. 천 자투리 남기기는 용어를 못 찾았고, ‘사순절 성미’는 표현 적절성이 떨어진다.
수년 전,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배운 것이 있다. 한 나이 지긋하신 분이, 소변을 본 후 주머니에서 휴지 쪼가리를 꺼내 뒤처리하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남자의 소변 뒤처리는 상상도 하지 않았었다. 남자도 소변 뒤처리를 하면, 위생 면이나 대인 관계상에도 좋겠다고 생각이 바뀌어 따라 하였다. 뗀 대변용 휴지에서, 소변용 작은 자투리 쪼가리를 미리 남기는 버릇도 이어 생겼다. 그 후, 일상생활에서 사전 절약, 용도 늘리기, 물, 공기 오염 줄이기 같은데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을 바꾸고 보니, 연쇄 반응처럼 다른 것들이 보였다. 저절로 이것저것 자투리 미리 남기기 거리를 찾게 되었다. 어떤 화장실엔 손 씻은 후 닦는 제법 큰 크기의 1회 용 휴지가 있다. 씻어 깨끗한 손의 물기만 닦고 아까운 종이를 버리는 것은 자원 낭비이자, 자연 훼손과 기후 악화와도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손 닦은 휴지를 가져 와 다른 용도로 더 쓰고 버린다. 아이들이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물티슈도 우리 부부는 씻어 몇 번 재사용 한다.
자투리 미리 남기기의 마음은 ‘아나바다 운동’의 정신과 궤를 같이한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간 정신일 것이다. 아나바다운동은 외환위기를 맞은 다음 해인 1998년 등장했다. 정부 주도의 이 운동은 소비지출 줄이기가 요체였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구호를 내건 아나바다 운동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다.
‘아나바다’가 소비 줄이기에 역점을 둔 개념인 반면, ‘자투리 미리 남기기’는 소비를 줄일 뿐만 아니라, 새 용도를 창출하고 나아가 생태계보호까지 염두에 둔 개념이 된다. 물론, 소비를 줄이면 생태계보호에 이바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새 용도가 창출되지는 않는다.
지구의 환경과 자원은 유한하다. 이는 지구가 부양할 수 있는 생명체도, 감당할 수 있는 오염물도 유한하다는 증거다. 지구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다. 우리 어머니다. 인간이 일으킨 환경오염으로 지구 어머니는 중병에 걸렸다. 중병을 낫게 하는 처방의 하나로 ‘자투리 미리 남기기 운동’이라도 제안하고 싶은 마음이다.
자투리 미리 남기기가 온 지구촌에 퍼지면 좋겠다.
'어울리기 > 발표 글-경북매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행나무 유감 (11) | 2022.11.07 |
---|---|
살아있는 우스개 (7) | 2022.09.29 |
누이이며 어머니인 지구 (0) | 2022.09.04 |
숨은 사회 카르텔 (0) | 2022.08.28 |
우리 사회의 한 수준 (0) | 2022.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