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리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가을, 그리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강길수 | 姜吉壽 그대…. 빛바랜 산문집 하나 꺼내 들었습니다. 낙엽 뒤집어 보듯, 책갈피를 뒤집고 첫 글을 열었습니다. 옛날처럼 소리 내어 그 글을 읽습니다. “…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9.08.17
깜부기 깜부기 강길수 한 무리의 아이들이 보리밭 이랑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책보를 어깨에 둘러맨 채다. 아직 푸른 보리지만 이삭은 제법 여물어 보인다. 깜부기를 찾고 있다. 조금 지난 다음, 보리밭 가에서 아이들이 낄낄대며 떠드는 소리가 가득하다. 두세 명은 도망가는 아이를 따라가기도 하며 장난..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8.10.28
옆자리 옆자리 강길수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일로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마치 여태 보이지 않던 새로운 세계가 확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년 봄 어느 날이었다. 기도드리며 합장한 두 손처럼 예쁘게 생긴 가운데 잎 사이로 처음 꽃자루가 비죽하게 솟아올랐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아이처..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8.05.08
한살이 한살이 강길수 장롱에서 소중한 것을 꺼내놓고 쳐다본다. 낡아 못쓰게 되어 버릴까해서다. 스무 해도 더 내 손에 붙어 다니며 정이 듬뿍 든 물건이다. 내용물이 많을 때는 접은 가죽부분을 펴 크게 하여 쓸 수 있도록 편리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각 모서리도, 손잡이도 많이 닳아있다. 무엇보다 직육면..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8.05.03
홍시 홍시 강길수 “야야, 이것 좀 머 바라!” 어머니께서 바가지에 커다란 홍시 네다섯 개를 담아 내놓으며 한 말입니다. “귀한 걸 집에나 먹지, 말라고 이때까지 나 둤노?” 저는 고마운 마음을, 이처럼 퉁명스럽게 대답 하면서 홍시 한 개를 집어 들었지요. 그리고는 어머니 가슴에 그만..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8.04.21
숯불찌개 당번 숯불찌개 당번 강길수|姜吉壽 아버지! ‘학교 늦겠다!’고 어머니가 제게 성화이십니다. 나른한 봄이 와 그만 늦잠을 잔 것이지요. 저는 부스스 일어나 눈곱을 비비며 마당에 내려섭니다. 커다란 황소가 배고프다고 ‘음매, 음매!’ 하며 연거푸 보채댑니다. 저는 외양간을 지나 쇠죽솥가로 갑니다. ..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8.04.03
보이지 않는 등록금 보이지 않는 등록금 강길수 버스에 올랐다. 두 시간 정도 가야 하기에 잠시 눈을 붙이겠다고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는다. 오늘 받을 수업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몸이 천근같이 무겁다. 오늘이 실험실 콘크리트 바닥에 헌 골판지를 깔고 회사 근무복을 입은 체, 쪼그리고 누워 토끼잠을 잔지 일..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8.03.15
삼월 삼월 강길수 나는 삼월과 연(緣)이 깊다. 음력으로 동짓달에 있는 생일을, 무슨 이유인지 양력 삼월일일로 출생신고를 아버지가 하셨다. 세상에 태어나서 두 달 만에 삼월과 공적으로 관련 지워진 것이다. 진짜생일 따로, 서류상생일 따로 인 삶을 산 것이다. 이 점은 그 시대에 태어난 많은 아이들이 ..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8.03.06
고추모종 고추모종 강 길 수 봄이 무르익자 작은 밭이 가관이다. 생명력 뽐내기 시합이라도 벌어진 걸까. 어느 곳엔 호박새싹이 빼곡히 솟아올랐고, 들깨새싹은 온 밭을 덮어 씌웠다. 감자에 달래, 나팔꽃, 돌미나리, 심지어 자두나무새싹도 드문드문 돋아났다. 그 뿐 아니다. 참외, 수박은 ..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8.02.08
양학동 등산로[7](반갑습니다) 양학동 등산로[7](반갑습니다) 강 길 수 “아저씨! 의원 출마하려 하세요?…” 지나가는 이의 기분 좋은 농담 인사다. 십일월도 사흘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푸르러 높은 하늘이다. 사람들의 가을은 어떠했을까? 그들의 마음은 저 맑은 하늘처럼 텅 비워졌을까. 나는 오늘도 양학동 등산로를 걷고 있다. .. 아름답기/수필 누리 2007.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