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 172

사회 자정작용 시스템

등록일 2023.11.06 18:05 게재일 2023.11.07 10월 하순, 후덥지근하던 가을 날씨가 소슬해진다. 어제와 오늘은 습도가 20%대까지 낮아졌다. 그래선가. 보도의 벚나무 낙엽들이 절반은 부서졌다. 샛노랗거나 새빨간 벚나무 낙엽을 줍던 즐거움도 올핸 못 누릴까 보다. 낮은 습도에 벚나무 낙엽이 쉬이 부서지듯, 자연물들은 서로 반응한다. 그들의 상호 반응이 내겐 자정작용(自淨作用)으로도 보인다. 발생하는 오염물들을 자연은 끝없이 자정작용으로 정화한다. 공기나 물 등 무생물들도 물리, 화학적 자정작용을 한다. 살펴보면, 자연은 자정작용이 점철된 시스템이다. 인간사회는 어떨까. 당연히 자정작용시스템을 갖는다.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는 결국 자정작용시스템이다. 인간사회의 정치제도 중 자정작용의 결..

우리, 울지 말자

등록일 2023.10.16 19:48 게재일 2023.10.17 “우리, 울지 말자!….” 편의점 앞 탁자 의자에 앉아 고개 숙여 우는 아가씨의 등을, 다른 아가씨가 쓰다듬으며 한 말이다. 스무 살 전후로 보이는 앳된 아가씨들이다.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 그녀들 곁을 지날 때였다. 거리가 멀어지는 데다, 벽돌 깔린 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굉음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못 들었다. 출근길, ‘상대로 젊음의 거리’에서의 일이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젊디젊은 아가씨가 초가을 아침을 울고 있을까.’ 걱정과 궁금함이 마음에 여울졌다. ‘젊음의 거리란 이름을 가졌지만, 음주, 가무, 유흥, 때론 싸움, 밤엔 쓰레기가 나뒹구는 모습으로 점철된 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뒤따랐다. 연전, 이곳에서 청년들이 싸우던..

‘1-3 일동’ 감사 연꽃

책상 위 컴퓨터 모니터 곁에 연꽃 한 송이가 있다. ‘1-3 일동’ 감사 연꽃이다. 아까워 못 마시는 작은 혼합 음료병이 변신한 연꽃이다. 벌서 3주가 지났다. 연꽃엔 명함보다 조금 큰 종이쪽지가 붙었다. 쪽지에는 이런 글귀가 쓰였다. “항상 저희를 위해 힘써주셔서 감사합니다♡ 1-3 일동” 큰 글씨 세 줄로 쓴 감사 글 아래 왼쪽 공간에, 분홍 하트 눈을 가진 토끼를 그렸다. 토끼 왼쪽과 오른쪽에 위아래로 분홍 하트가 각각 두 개씩 그려져 있다. 그 오른쪽엔 1학년 3반 일동 표시 글을 써넣어 균형을 맞추었다. 그러니까, 쪽지에는 모두 7개의 하트가 있다. 사랑과 행운의 하트가 틀림없으리라. 8월 중순 금요일, 흐리고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이었다. 이웃 시 S 여고에서 일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상식 무너지는 사회

등록일 2023.08.29 18:35 게재일 2023.08.30 뭔가 달랐다. 사흘 전만 해도 종일토록 그늘인 곳인데, 8월 첫 월요일 낮에 그늘이 없어졌다. 저절로 하늘을 살폈다. 그랬다. 지난 금요일과 주말 사이 당국에서 공원 남쪽의 나뭇가지들을 쳐낸 것이다. 내 상식이 무너졌다. 뙤약볕 땅 달구는 삼복더위 한여름에 사람들과 새들, 곤충들에게 쉼터를 내주던 고마운 괴목(槐木) 가지를 무참히 잘라낸 당국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기왕이면 여러 생명이 나무 그늘에서 무더운 여름을 쉬게 하고 난 뒤, 늦가을쯤 가지치기하면 어디가 덧이라도 날까. 물론, 민원 등 당국은 어떤 연유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처사는 상식(常識)에 어긋난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공공시설 설치, 유지보수, 거리 청소 같은 ..

탈북, 북한이탈

등록일 2023.08.07 16:30 게재일 2023.08.08 가끔 탈북민의 유튜버를 본다. 몰랐던 북한의 실상과 문제들을 듣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족이면서 해방 후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 한국과는 매우 다른 1인 독재 체제를 3대째 왕조같이 이어오는 북한이다. 또, 핵무장을 완성했다며 우리와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니 국민으로서 북한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유튜버가 생기기 전에는, 이따금 언론에 보도되던 북한과 탈북민들에 관한 소식을 단편적으로 알고 지냈다. 한데, 지금은 유튜버를 통해 여러 정보를 알 수 있는 세상이다. 북한 정보도 예외는 아니다. 상당히 심층적인 내용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탈북민 유튜버 방송을 보면서 한 번도 자신이나 탈북민들을 ‘북한 이탈주민’이라고 소개하거나..

해외직구 트렌드

등록일 2023.07.24 17:59 게재일 2023.07.25 세 번째 해외직구다. 국내 한 오픈마켓 사이트를 통해 필요한 생활용품을 해외에서 직접 샀다. 그 첫 품목은 자동차용 점프스타터였고, 두 번째는 배터리형 물 분사기였으며, 세 번째가 배터리형 예초기다. 셋 다 중국제품이다. 지난겨울, 일주일 정도 세워두었던 자동차 시동이 안 걸렸었다. 개선책을 알아보다가 새 배터리 마련보다 점프스타터를 사는 게 더 경제적이란 판단을 했다. 오픈마켓 사이트를 돌아보다가 ‘해외직구 상품’을 알게 되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하는 해외직구를 한번 해보자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상품가격이 국내 구매보다 훨씬 쌌다. 더욱이 국내 생산 동종상품과의 가격 차이는 생각보다 너무 컸다. 직장에서 품질관리 업무를 해 왔던 나..

부러웠던 광경

등록일 2023.07.10 19:55 게재일 2023.07.11 7월이 왔다. 7월을 맞으며 떠오른 참 부러웠던 장면이 있다. 바로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 광경이다.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국빈 방문이라는 상징성도 있었지만, 그보다 미국 상하 양원 의원들이 연설 듣는 모습이 내 맘엔 놀랍고도 참 부러웠다. 미국이 괜히 세계지도국이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전 대통령들의 같은 곳 연설 장면을 볼 때도 비슷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올해가 더 가슴에 와닿았다. 이달 17일은 제헌절이다. 하여, 우리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 장면이 떠오른 것일까. 당시 언론 기사엔, 44분 연설에 26번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나도 그 심야에 중계방송을 다 보았었다. 미 ..

유월 한가운데

등록일 2023.06.22 17:35 게재일 2023.06.23 유월 한가운데다. 정수리에 내려꽂히는 햇빛이 따갑다. 예전엔, 지금쯤 한창 필 장미꽃은 다 졌다. 늦둥이로 피어난 작은 장미꽃 한 송이가 외로울 뿐이다. 올 유월을 맞으며 든 생각은 바로, ‘자유와 민주’였다. 우리나라가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도 안 될 역사가 숨 쉬는 달이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25일, 우리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6.25 동족상잔이 벌어진 유월’이다. 하여, 1963년 ‘호국보훈의 달’로 유월이 지정되었을 터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 달이며, 1987년 6월 항쟁을 품은 달이기도 하다. 자유와 민주를 지켜내기 위해 분연히 목숨 바쳤던 선열들과 함께 가는 공동체 대한민국호 열차가, 유월 한..

장미 아가씨들

등록일 2023.06.08 17:57 게재일 2023.06.09 장미 아가씨들이, 펜스 담장 바깥으로 일제히 고개를 내밀고 웃기 시작했다. 방송국 주물 펜스형 담장이다. 오월 중순이 되자, 해맑은 장미 웃음이 절정이다. 출근 때 보다, 퇴근 때가 장미 웃음이 더 예쁘고 많다. 왠지, 동남쪽으로 더 많이 얼굴을 내밀고 웃기 때문이다. 며칠간은 풋풋한 고운 장미 얼굴에 취해 오갔다. 어느 날 퇴근길에, ‘꼭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북한 응원단 아가씨들 같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마, 부산 아시안게임 때였지 싶다. 담장 바깥으로 하나같이 얼굴을 내밀고, 활짝 웃는 장미꽃들과 북한 여자응원단의 어디가 닮아 그런 생각이 났을까. 아름다워서? 여럿이 몰려 있어서? 전체 모습이 닮아서? 일사불란해서? 요정처럼..

논 사잇길

등록일 2023.05.25 18:06 게재일 2023.05.26 참으로 격세지감이 든다. 뒤처질세라 엄마 치맛자락 따라 바지런히도 오르던 그 옛날, 논대로골의 다랑논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다랑논 사잇길은, 두 사람이 비켜 가기도 버거운 길이었다. 그게 어제 같은데, 지금은 타향에서 승용차를 몰고 아스팔트 논 사잇길을 가고 있다. 세월은 반세기를 훌쩍 넘었다. 텃밭 가는 길이다. 2차로 아스팔트 포장 지방도로다. 농사철이면 농기계들이 오가는 길이기도 하다. 걷는다면 반 시간은 걸릴 거리의 도로 양쪽으론 드넓은 논이 펼쳐진다. 길가에 몸 붙여 사는 식물들을 벗하며 텃밭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로수 없는 도로이지만, 이름 모르는 풀들이 열 지어 서서 오가는 이들에게 응원단처럼 환호를 보낸다. 걷거나 자전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