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141

희생의 강

등록일 2022.03.13 18:08 게재일 2022.03.14 이게 어찌 된 거지. 돌연변이라도 일어났단 말인가. 이리 추운 겨울을 저 어린것이 밖에서 오롯이 버텨내다니. 모를 일이다. 아무리 기후변화 시대라지만, 올겨울도 영하 섭씨 7~8도를 넘나드는 날씨가 몇 번 지나갔는데 말이다. 성당 오가는 길목에 커다란 대문 앞을 지난다. 대문 양쪽에 벽돌을 쌓아 올려 허리춤쯤 높이에 작은 화단이 하나씩 있다. 나 같으면 그냥 벽돌 벽이나 콘크리트 벽으로 마감했을 공간인데, 집주인은 화단을 만들었다. 꽃이 피면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도록 적당한 높이도 배려하였다. 집주인의 꽃사랑이 화단으로 태어났기에, 오갈 땐 늘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부턴가 양 화단에 탐스러운 장미들이 피어났다. 왼쪽에 장미 여남은 그루, ..

그래도 살만한 세상

등록일 2022.03.06 18:15 게재일 2022.03.07 차를 몰고 돌아오는 도중이다. 웬일인지 뭔가 찜찜했다. 도착하자마자, 가지고 갔던 봉투 서너 개 속 서류를 손가락으로 벌려가며 두세 번 안을 살펴보았다. 호주머니도 다 뒤졌다. 그래도 가지고 갔던 통장과 법인카드가 든 비닐 커버는 보이지 않는다. 조수석에다 봉투의 내용물을 다 쏟았다. 하지만 찾던 물건은 없다. 돌아오면서 이상하게 찝찝하던 기분이 이해되었다. 담당 공무원에게 확인 전화를 했다. 그도 가져가지 않았단다. 분실이 확실해졌다. 통장 잔고가 없어 분실해도 금전적 손해는 안 보지만, 새로 통장과 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성가신 게 사실이다. 군 제대 후 대기업 실험실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실험분석과 품질관리, 환경 관련 실험과 분석, 관리를..

1등 몰아주기 문화

등록일 2022.01.02 18:55 게재일 2022.01.03 매주 목요일마다 즐겨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제법 오래전부터 보아 온 것이다. ‘미스트롯 1’과 ‘미스터트롯’과 ‘미스트롯 2’ 그리고 ‘내일은 국민가수’다. 트로트는 우리 정서에 잘 어울리는 대중가요이기에 처음부터 거의 보았다. 무엇보다 경연에 도전하는 이들이 무대에 나서면 하나같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하였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진한 기쁨과 감동을 듬뿍 선물해주었다. 삶의 희망과 용기도 북돋아 주었다. ‘지난날 나는 왜 저 참가자들처럼 모든 걸 쏟아붓는 삶을 살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기도 했다. 그런데 끝에 톱7을 뽑고 1등을 시상하는 장면은 좋았지만,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선 시상 범..

낙엽 이불

등록일 2021.11.30 18:40 게재일 2021.12.01 낙엽경기라도 벌어진 걸까. 높하늬바람이 내려 부는 아침, 출근길이 온통 낙엽축제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정신없이 하늘을 난다. 은행잎은 갈 곳 잃은 노랑나비들의 군무를 춘다. 멀리 커다란 느티나무는 어느새 앙상한 몸이다. 사시 푸를 것만 같던 벚나무도 옷을 거의 다 벗었다. 시선이 나무 밑 잔디밭에 머문다. 샛노란 은행잎들이 매스게임이라도 하듯 정연하게 도열해있다. 말라가는 잔디이파리 사이사이에 은행잎이 들어있는 모습이 아늑하다. 순간, 은행잎들이 작은 황금색 이불로 보였다. ‘내년 봄도 새싹을 돋구려면 겨울잠을 잘 자야 해….’ 은행나무가 잔디에 조곤조곤 일러주는 말이 귀를 일깨운다. 도로 가장자리나 가로수 아래 잔디밭과 화초밭, ..

작은 생태계 소식

등록일 2021.11.16 20:01 게재일 2021.11.17 쌓아 둔 빈 비닐 비료 포대 위를 낫공치로 마구 두드렸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반사 동작이다. 일고여덟 번쯤 두드리자, ‘아마 죽었을 테지…’하는 생각이 났다. 그제야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어 동작을 멈추었다. ‘괜한 오기로 한 생명을 죽이는구나’하고 속말이 나왔다. 낫 날 끝으로 비닐 포대를 이리저리 뒤졌다. 축 늘어진 목표물은 없었다. 맨 아래 비닐 포대를 뒤졌을 때, ‘아! 그랬구나’하는 속말도 나왔다. 드러난 땅에 구멍이 나 있다. 내 반사 동작의 목표물은 구멍으로 도망간 게 틀림없다. 아마, 따뜻한 낮 기온에 먹이 찾아 나왔다가 나를 만나 줄행랑쳤으리라. 아까 현장 식탁용 판자를 들어낼 때, 달아나던 생쥐도 생각났다. 주말 텃밭을 가..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

등록일 2021.10.18 19:01 게재일 2021.10.19 젊은 날, 성당에서 ‘레지오 마리애’란 소공동체 활동을 시작했었다. 창단 단원으로 출발하여 오늘 해단할 때까지, 오랜 기간 참여했다. 해단 사유는 단원들의 수가 줄어, 더는 소공동체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단원이 줄어든 원인은 개인 사정도 있었지만, 다른 지역 전출이 주된 요인이었다. 전출은 타 시도로 가는 경우와, 같은 지자체에 살면서도 주거지 이동으로 거리가 멀어져 떠나는 경우의 두 가지로 대별 되었다. 우리 성당이 기존 시가지에 있어서 전입자보다 전출자가 많은 요즈음의 사회 여건도 작용했다. 새 교우 영입, 혼성체제 도입, 상위 단체 지원요청 등 자구책을 쓰면서 버티어 왔다. 40주년을 반년 남짓 앞두고, 남은 단원이 한..

애가 타는 국민

 등록일 2021.09.26 19:24|  게재일 2021.09.27| 젊은 날, 환경 분야 기술 자격 공부를 하며 ‘자정작용(自淨作用)’이란 단어와 개념을 처음 알았었다. 자연의 복원력 혹은 항상성에서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새로운 소식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었다. 그 무렵은 나라에서 공해 문제를 도입하는 초기여서, 주로 물에 대한 자정작용을 다루고 배웠다. 요약하자면, 물은 자연 생태계에서 오염되더라도 스스로 깨끗해지는 자정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태계가 한정되어 있어, 오염량이 자정 능력을 넘게 되면 하천과 바다가 오염되고 만다. 심하게 오염된 하천과 바다는 생명체가 살 수 없다. 물의 오염은 결국 전 생명체와 사람의 생존에도 악영향을 준다. 따라서 생활하수, 산업폐수 등의 ..

이런 공존

등록일 2021.09.07 20:02 게재일 2021.09.08 장마철보다 지루한 가을장마가 잠시 멈춘 출근길이다. 처서 아침이다. 학교 뒤 담장 곁을 지나가는데, 누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나지막한 작은 나팔꽃 한 송이다. 자세히 바라다본다. 나팔꽃 덩굴은 삼사십 센티미터 정도 자란 망초 대를 감고 올라가다가 중간쯤에서 남보랏빛 꽃 한 송이를 피워냈다. 나팔꽃 줄기와 망초의 대는 담장 콘크리트 벽과 보도블록 사이의 좁은 틈바구니에서 싹터 올라 자라났다. 둘 다 어려 보인다. 용케도 미화원의 풀 뽑는 손길도 피했다. 그러잖아도 근자에 주위에서 나팔꽃이 줄어간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한데, 이 척박한 환경의 틈에 망초와 어우러져 살면서 꽃을 피우다니 반갑고, 기쁘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한꺼번에 몰려왔..

유에프오와 국가 지배층의 무의식적 원형

등록일 2021.08.25 19:56 게재일 2021.08.26 일찍이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융은 그가 쓴 ‘현대의 신화’에서 유에프오(UFO) 문제를 다루었다. 왜 융이 1958년 미확인 비행물체를 심리학의 주제로 다룬 책을 냈을까. 전에 논술을 공부하면서 ‘현대의 신화’를 읽었다. ‘융’은 ‘유에프오’ 현상이 미확인 상태이므로 ‘풍문(風聞)’으로 본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심리학자로서 ‘의심할 여지 없이 존재하는 심리적 현상’을 다루고 있다. 심층심리학의 분석적 방법이 보증하는 가능한 한 모든 결론을 ‘풍문으로서의 정신적 소산’에서 끌어내고 있다. 하늘에서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유에프오 현상은, 2차대전 이후 세계적인 신드롬을 불러왔다. 1947년 미국 로즈웰 유에프오 추락 사건의 풍문은 그 대표적 사..

안갯길 나라

등록일 2021.08.10 19:49 게재일 2021.08.11 눈을 비비며 운전대를 잡았다. 가을 새벽, 아직 어둡다, 첫길이다. 내비게이터도 없던 시절이라 이정표만 따라야 했다. 대청봉을 오른다는 설렘으로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했다.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하루 허용 등정(登頂) 인원이 다 차 더는 입산할 수 없다’는 안내원의 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실망했다. 꼭두새벽부터 서둘렀는데, 너무 아쉬웠다. 이왕 온 김에 한계령 고갯길이나 다 넘어보자고 의견이 모였다. 인제 방향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짙은 안개가 장막처럼 눈앞을 가로막았다. 일행들은 ‘와! 설악산 안개다!’하고 소리쳤지만, 운전대를 잡은 나는 되레 바짝 긴장되었다. 열 명이 넘는 사람의 안전이 내 운전에 달려있으니 말이다. 안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