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그래도 살만한 세상

보니별 2022. 3. 7. 11:16

                등록일 2022.03.06 18:15                                   게재일 2022.03.07

 

 

 

차를 몰고 돌아오는 도중이다. 웬일인지 뭔가 찜찜했다. 도착하자마자, 가지고 갔던 봉투 서너 개 속 서류를 손가락으로 벌려가며 두세 번 안을 살펴보았다. 호주머니도 다 뒤졌다. 그래도 가지고 갔던 통장과 법인카드가 든 비닐 커버는 보이지 않는다.

 

조수석에다 봉투의 내용물을 다 쏟았다. 하지만 찾던 물건은 없다. 돌아오면서 이상하게 찝찝하던 기분이 이해되었다. 담당 공무원에게 확인 전화를 했다. 그도 가져가지 않았단다. 분실이 확실해졌다. 통장 잔고가 없어 분실해도 금전적 손해는 안 보지만, 새로 통장과 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성가신 게 사실이다.

 

군 제대 후 대기업 실험실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실험분석과 품질관리, 환경 관련 실험과 분석, 관리를 해왔었다. 이런 업무들은 절차와 과정이 하나하나 연결되어 있기에, 어느 한 단계만 에러가 있어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절로 단계마다 확인에 또, 확인하는 습관이 붙었다. 때문에, 사림들이 꼼꼼하다거나 분명하다고 하는 평을 들으며 살았다. 한데, 오늘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

 

차를 몰고 시청으로 다시 가는 동안, 통장과 카드 분실신고하고 재발급받을 각오를 하였다. 그것을 두고 간 지가 한 시간 가까이 지났으니 말이다. 청사 입구에 코로나로 인한 손 소독과 온도 체크를 겸한 장비가 있다. 그 뒤에 들어오는 사람을 점검하고, 안내하는 직원 데스크가 있다. 입구 문을 들어서며 직원에게, 혹시 분실물 통장이 없느냐고 물었다. 없다는 대답과 함께, ‘아까 오신 분이지요? 빨리 아까 자리에 가 보시라는 친절한 말을 덧붙였다.

 

얼른 두 층을 올라가 직원을 만났던 탁자로 갔다. 거기엔 통장과 카드가 든 비닐 커버가 아까 놓아둔 그대로 얌전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으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통장과 카드가 든 비닐 커버를 보물처럼 사뿐히 주워 안주머니에 넣고, 발걸음도 가볍게 계단을 내려왔다. 안내 직원에게, “찾았어요! 오늘은, 기분 좋은 날입니다.” 하였더니, 그녀도 잘 됐어요!” 하며 함께 즐거워했다.

 

차를 몰고 두 번째 같은 길을 돌아오면서 보이는 세상은, 처음 돌아올 때와 같은 곳인데도 달라 보였다. 세파에 휩쓸려 지레 실망했던 마음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정치권, 운동권이 진실과 거짓을 뒤바꾸고, 여론과 선거를 조작한다는 데이터와 의혹이 팽배해도 집권층은 아랑곳하지 않고, 갈라치기만 일삼았다. 그래도 백성들은 민심이 천심답게 서로 믿고, 도우며 사는 거란 마음이 푸르게 물들었다.

 

발원지의 작은 물줄기가 내가 되고 강이 되어, 마침내 바다를 이룬다. 하천과 바다의 물이 자정작용으로 스스로 깨끗해지듯, 나라의 물 백성들은 사회의 오염원들을 물처럼 묵묵히 정화하고 있다고 믿어졌다. 그 증거가 오늘 내가 겪은 통장과 카드를 잃었다가 되찾은 일이라 싶었다. 개인 모여 가정과 사회, 백성을 이룬다. 탁자 위에 놓인 통장과 카드가 든 비닐 커버 앞을 지나면서도 그대로 둔 사람들이 바로, 물 같은 백성들이리라. 하여, 우리 사회는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 명경대에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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