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논술문 들녘

가장 슬픈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보니별 2006. 9. 17. 00:40
 

[‘논객’ 404 과제 논슬문]


             가장 슬픈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 시인 박재삼의 시 세계 -

                                                                                       강 길 수


 시인 박재삼의 이름이나 시는 언론매체를 통해 보거나 들어본 기억은 있지만 제대로 공부하거나 알아본 적은 없다. 잡지에서 그의 시를 한두 편대했을 뿐인 입장에서 ‘시인 박재삼의 시 세계’를 주제로 정하고 보니 걱정이 되지만, 오히려 선입견 없이 다룰 수 있겠다 싶어 잘 되었다 싶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현대시는 문학 이 그랬듯이 대체로 한(恨)과 애수(哀愁)와 체념(諦念)의 정한(情恨)의 정서를 노래했다고 비평되고 있다. 시인 박재삼의 시세계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한국의 정서와 리리시즘(서정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탕은 한(恨)이라는 정서이다‘.(1)라고 비평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와  글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박재삼의 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한(恨)과 애수(哀愁)와 체념(諦念)으로 나타내는 정한의 정서에 머무는 서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것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박재삼 시인은 시작(詩作) 노트를 대신해서 쓴 자신의 글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가장 슬픈 것을 노래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노래한 것이다’라는 명제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시를 써 왔는데, 이것이 분명 시대착오가 아니라면 정말 이래서 되겠는가 하는 느낌이 든다. 합리주의나 과학주의가 팽배하고 보면 인간이 가진 연약한 심정이란 것은 팽개쳐도 되는 것인가. 나는 인간에게서 눈물과 시가 없어진다는 것 이상의 비극과 위기는 따로 없다고 믿는다.”(2) 즉, ‘가장 슬픈 것’을 시를 통해 노래함으로써, 그가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물질문명 추구 일변도의 현대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소중한 것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것은 바로 ‘눈물’과 ‘정감’이다. 그에게 있어 ‘눈물’은 ‘정감’의 근본이며, 정신문명의 소중한 면이자 정신차체다.  ‘가장 슬픈 것’을 노래하는 것은 현대인이 잃었던 ‘정감’을 되찾는 것이며, 정감회복은 결국 ‘정신을 되찾는 것’이 되므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되는 것이다. 박재삼의 시에는 이러한 그의 예언자적인 예지와 의지가 드러나 있다. 그의 이러한 말을 볼 때,  그의 시를 다시 살펴볼 이유와 필요가 충분히 있다. 그의 사상은 ‘한’을 ‘정’이나 ‘슬픔’이나 ‘체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여 마침내 그 것들을 극복하게 한다.

 여기에서는 그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예로 들어 분석하고, 비평함으로써 그의 ‘가장 슬픈 노래이기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된 점을 고찰하고자 한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이시의 제제는 저녁놀에 물든 가을 강이다.

또한 주제는 인생의 근본적인 유한성과 그로인한 슬픔과 사랑과 고독, 그리고 무상을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물이 강을 흘러 목적지인 바다에 다 와 감을 노래함으로써 인생의 근본적인 유한성, 슬픔, 사랑, 고독, 무상성은 서정성의 아름다움으로 형상화 되고 있다.

구성을 보면, 제1연은 슬픔 즉 서러움의 정서를 나타내주고 있다. 제삿날 큰집을 가다가 저녁노을에 물든 가을 강을 바라보며 친구의 슬픈 사랑을 되새기는 화자의 모습으로 서러움의 정서를 형상화 시킨다. ‘-고나’, ‘-것네’와 같은 어미를 사용하여 부드럽고도 더 슬픈 서정성을 부여한다.

 제 2연은 황혼녘 강 풍경의 ‘노을’을 ‘울음’으로 치환시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으로 표현하여 인간의 근원적인 사랑과 슬픔, 고독과 무상성을 ‘울음’으로 화자의 눈에 보이게 한다. 그리하여 화자의 서러움은 더욱 심화되어 ‘가장 슬픈 것’이 되고 있다.

 제 3연은 서러운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정감의 원형은 변화하며 흐르는 ‘강물’에 녹아 화자의 삶과 세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거친다. 결국 ‘슬픈 정감의 원형’은 신비롭고 무한, 무궁하며 영원으로 상징되는 ‘바다’에 가까이 도달케 함으로써 ‘영원한 사랑으로 승화’되어 작자의 말대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되게 하고 있다.

 심리학자 ‘융’에 의하면 원형적 이미지로서 '물'은 창조의 신비, 탄생, 죽음, 소생, 정화와 속죄, 풍요와 성장의 상징이며, 무의식의 가장 일반 적인 상징이다. '강'과 '바다'의 이미지 또한 죽음과 재생, 시간의 영원한 흐름 등을 나타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강'의 이미지가 인생의 순환의 변화상을 나타내는 것에 비해 '바다'의 이미지는 영혼의 신비와 무한성, 무궁과 영원 등을 나타낸다.(3)

 이렇게 고찰해 볼 때, 박재삼의 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한(恨)과 애수(哀愁)와 체념(諦念)으로 나타내는 정한의 정서에 머무는 서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것을 뛰어넘는 슬픔의 미학(美學)을 창조하고 있다. 위에 예로든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서도 ‘슬픈 사랑의 정감의 원형’은 강물에 녹아들어, 강을 따라 변화하며 흐르다가 바다에 도달케 함으로써 ‘영원한 사랑으로 승화’되어 마침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완성된다. 그리하여 그 자신이 말한 ‘금과옥조’ 즉, ‘가장 슬픈 것을 노래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노래한 것이다’라는 명제를 이루어 내고 있다. 박재삼 시인은 ‘가장 슬픈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란 자신의 금과옥조를 시를 통해 이루어내는 ‘슬픔의 미학’을 창조하는 시인인 것이다.



(주)

(1),(3)네이버 웹 문서 ‘박재삼’ 2004. 4. 6. 검색

(2) 박재삼 시 선집,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도서출판 오상, 199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