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 406 과제 논술문]
종교와 과학은 대립적이어야 하는가?
강 길 수
최근 과학의 발달, 특히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복제’문제로 지구촌이 떠들썩하다. 유전자를 조작한 콩 등 곡물류로부터 ‘복제양 둘리’로 대표되는 동물 복제, 그리고 ‘클로네이드사’의 ‘인간복제’ 성공발표에 이르기까지 생명공학 기술은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과학기술은 바야흐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서 도저히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신비로운 현상으로 믿어왔던 ‘생명의 영역’ 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더욱이 생명공학 기술은 그 목적을 ‘황금 알을 낳는 거위’에 두고 산업적인 활용을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생명관련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화, 상업적 이용은 ‘윤리 도덕적’인 문제를 야기할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으며, 자칫 지구촌의 생태계를 위협하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반대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특히, 종교계의 반대 목소리가 높다. 이 논술문에서는 어느 특정 종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종교’란 총론적 입장에서 종교와 과학기술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인간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행복은 오래, 더 나아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란다. 종교생활과 과학기술의 연구와 개발도 그 외 인간의 모든 활동도 결국은 행복한 삶을 위해 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이다.
우선 '종교(宗敎 religion)'란 무엇인가? 국어사전(1)은 종교를 "신이나 절대자를 인정하여 일정한 양식아래 그 것을 믿고, 숭배하고, 받듦으로써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하는 정신문화의 한 체계"라고 정의한다. 백과사전(2)은 “초월적 절대자 또는 신성시하는 대상을 경외(敬畏)하는 신념체계를 기반으로 하여, 신앙(信仰)·기원(祈願)·예배(禮拜)의 행위로써 구제·축복·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현상의 하나. …종교의 일반적 기능은 현실 세계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서 생기는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음으로 ‘과학(科學 science)은 무엇인가? 국어사전(1)에는 “어떤 영역의 대상을 객관적인 방법으로, 계통적으로 연구하는 활동, 또는 그 성과의 내용. 특히, 자연 과학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음.”라고 정의되어있다.
위의 정의들에서 보듯이 종교도 과학도 인간이 하는 것이며, 그 목적은 바로 현세 와 내세를 아우르는 ‘행복’에 있음은 자명한 것이다. 종교도 과학도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보고 느끼기에는 ‘인간 복제’와 같은 문제에 있어 종교와 과학은 첨예하게 대립하여 합일점을 찾기보다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생명은 천부적인 것이기에 존엄하며, 따라서 인간이 그 생명을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종교의 입장이고, 과학의 입장은 ‘연구’가 기본이며, 거기에 사업성까지 부여되면 윤리적인 문제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바로 이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교와 과학이 어떻게 상호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지에 관해 참고해야할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그 것은 저 유명한 ‘갈릴레오 사건’의 교훈이다.
밝혀지는 과학적 사실이나 결론을 종교의 잣대로 임의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오류를 범하게 되는지 우리는 17세기 '갈릴레오 사건'에서 볼 수 있다. 새로 밝혀지는 과학적 진리나 사실은 먼저 그 것을 사실그대로 인정하는 가운데 그와 관련되는 종교, 윤리, 도덕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갈릴레오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현대 지구촌 사회는 웰빙, 장수(長壽), ‘유비쿼터스’를 지향하는 과학기술 지식정보 사회로 이행해가고 있다. 과학은 종교에서 과학에 대해 제기하는 제 문제에 대해 마음을 열고, 종교는 밝혀지는 과학적 진실에 대해 마음을 열어, 종교와 과학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해야 한다. 종교의 경전들은 이러한 과학적 시대상황을 고려하여 재해석되어야 하며, 과학은 인간, 나아가 생명의 존엄성과 자연의 소중함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 비록 그 것이 자기들의 살을 도려내는 아픔일지언정, 이젠 인류의 참된 행복을 위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토론하며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종교와 과학의 대립으로 인하여 인간에게 생존이 위태로운 큰 불행이 닥친다면 종교도 과학도 필요 없게 되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이 가졌던 종래의 모든 가치관과 생활양식 등 문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 요구는 16세기의 지동설 주장에 의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다. 과거의 가치질서가 변화된다하여 무조건 반대하거나, 모호한 개념의 '인간 존엄성'을 내세워 새로 밝혀지는 과학적 진실을 덮으려 하는 것은, 이성적이며 탐구적인 인간이란 인간 본래의 존재양식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비합리적인 것이며, 과학의 발달, 나아가 새로운 문화의 발달을 저해하는 일이 된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과학이 이루어 내는 업적들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간사회의 모든 분야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과학이 인간의 행복에 공헌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회문화의 패턴을 찾아 발전시키는 것이 창조적 과학문명 사회이다. 종교도 창조적 과학 문명사회에 걸맞게 변해가고 발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종교와 과학은 ‘대립’이 아니라 대화하고 협력하며 함께 문제를 풀어 나아가야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오래토록 지구란 행성에 존립하며 행복을 누려야 하는 것은 인간 삶의 대 면제이요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은 대립적이어서는 안 된다.
[주] (1) ‘동아 새 국어사전’ , 동아출판사, 1991.
(2) ‘다음 백과사전’ 인터넷 검색, 2004.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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