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논술문 들녘

부부 사이의 사생활은 보장되어야 하는가?

보니별 2006. 9. 13. 19:37
 

[‘논객’ 403 과제 논술문]


               부부 사이의 사생활은 보장되어야 하는가?

                                                                               강 길 수


 오늘날 인터넷의 사용이 부부들 사이에서도 보편화 되고 있다. 그에 따라 ‘쳇팅’, ‘이메일 펜팔‘ ’카페활동‘ 등 온라인상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부부사이의 사생활 존중이나 보장이 과거보다 더 많은 관심사내지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남편과 아내도 부부이기이전에 각각 독립 인격체로서 서로간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거나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과, 부부는 법적, 정신적 한 몸이므로 부부사이의 사생활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상반된 주장이 있다.

 이 문제는 한 부부의 문제이자 사회적, 국가적, 종교적, 문화적 문제이다. 부부란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을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생활 문제는 결국 법을 넘어 인격체인 두 부부사이의 근원적인 ‘신뢰’ 문제로 귀착되므로, 이 논술문에서는 부부간의 법적 책임과 의무와 권리에 등에 대해서는 논외로 한다.

 계약결혼을 행동에 옮겼던 프랑스의 당대 최고 지성인 사르트르와 보봐르 부인은 결혼 계약을 하면서 서로의 성적 자유와 사생활을 합의했다. 그러나 보봐르는 사르트르가 죽을 때까지 그의 애정행각 때문에 속을 썩였다고 한다. 이, 삼십대 부부 중에서 상당수가 결혼 전에는 서로 사생활을 보장하는 자유로운 부부 관계를 상상한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고 나면부부간의 사생활 보장이라는 것이 아주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부부’란 어떤 관계일까? 부부는 ‘법률상 혼인신고를 한 남녀 또는 그 관계이다. 부부는 원칙적으로 함께 살고 공동생활을 영위해야 하는데, 이것은 이혼 또는 한쪽의 사망에 의해 혼인이 소멸되기까지 계속된다. 또한 인격적·정서적·성적으로 관계를 맺음과 동시에 서로 보살피면서 경제생활,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협력하는 친밀한 관계’(1)이며, 부부 사이에서 출산되는 자녀의 양육책임을 져야한다. 부부관계의 특징은 이러한 제 관계들이 상호 독점적 관계라는데 있다.

간혹 이, 삼십대 부부 중에서 각자의 소유를 철저히 구분할 뿐 아니라, 사생활도 보장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번 돈은 자기가 관리하며, 자기 일은 각자가 알아서 하며, 사적인 인간관계나 각자의 부모에 대해서도 각자가 관리한다고 말한다. 반면, 우리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부는 인격적인 한 몸으로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사이이므로, 그 어떠한 비밀이나 사생활은 용납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언뜻 보면 전자의 경우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급증하는 이혼율을 보아도, 부부관계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부부사이에 사생활과 비밀은 절대 필요 없는 것일까? 꼭 그렇다고 말 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임을 대다수의 부부들은 인정한다.

 위의 논거들을 정리하면 부부란 ‘상대방의 사생활을 인정해 주어야 하면서도 또한 동시에 서로 비밀이 없어야 하는 사이이다’라고 정의 된다. 그러므로 부부사이의 사생활 인정 면에서 보면 부부란 관계는 원천적으로 논리적인 모순위에 서 있다. 그렇다. 부부란 관계는 인간이 유사 이래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룩한 두 성인 남녀 사이에 믿음과 사랑을 기초로 한 인격적 계약에 의해 결합된 운명공동체로서  ‘가정’을 이루는 핵심요소이다.

 그렇다면 부부사이의 사생활을 인정해 주어야 하는가? 물론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부사이에 비밀은 없어야 하는가? 물론 없어야 한다. 사생활을 인정해 주지 않고, 또 비밀이 있다면 ‘믿음과 사랑을 기초로 한 인격적 관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부사이에 ‘서로 사생활을 인정해 주면서도, 서로 비밀이 없는 관계’가 모든 부부가 지향해야할 이상적인 부부상(夫婦像)이다.

인터넷의 보편화와 디지털화는 사생활이 쉽게 노출되고 침해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따라서 부부가 서로 상대방의 사생활을 엿보려는 유혹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사생활을 엿보기 쉬운 환경이란 것이 사생활 침해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실제 부부사이에 상대의 이메일을 몰래 훔쳐본 것이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에 관한법률’과 ‘전기통신사업법’등을 위반하여 처벌 받은 판례도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집고 넘어가야 한다. 돈, 권력, 명예가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보장하는가? 그렇지 않다. 역사나 현실에서 우리는 돈과 권력과 명예 같은 것들이 일시적인 충족감과 행복은 줄 수 있을 지라도, 진정하고 항구한 행복은 주지 못한다는 것을 수많은 사례에서 본다. 최고 권력자로부터 정치인, 경제인, 심지어 일반 시민에까지 돈과 권력에 대한 비리로 얼룩져 본인은 물론, 사회까지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명예는 어떤가? 입시 부정과 비리 청탁 등 명예도 돈과 권력과 결부되면서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사례를 많이 보아왔다.

 그러면 어떻게 부부사이에 사생활을 인정하면서도, 서로 비밀이 없는 이상적인 부부가 될 수 있겠는가? 좀 진부한 이야기 같이 들릴지 모르나, 원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즉, 부부사이에 인격을 걸고 신의를 지키고,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 상대편에게 알려야 할 일은 스스로 먼저 알리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훈련해야 한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감싸고 용서하는 부부가 되도록 노력하고 훈련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관계의 삶 속에서 행복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느끼도록 힘써야 한다.

 상대편이 자기와 함께 있지 않을 때의 사생활을 미주알고주알 알고자 한다면, 그 것은 이미 믿지 못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사랑하는 관계도 아니며, 더군다나 인격적인 계약은 사실상 그 순간에 파기되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 신뢰가 무너지면 갈등과 대립과 싸움과 폭력과 이혼 등이 깃들 수 있고, 가정 공동체는 무너져 부부는 물론 가족까지 불행해지게 된다.

 부부관계란 믿음과 사랑과 용서란 재료로 둘이서 가정공동체란 배를 만들어 세상이란 바다를 항해해 가는 관계이다. 그 공동체 안에서 가족은 함께 먹고, 일하고, 쉬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이해하고, 용서하며, 자녀를 양육하고, 발전하고 이루며, 행복하게 살다가 마침내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 공동체의 과정을 통해 부부는 자아를 성취하고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게 된다. ‘서로 사생활을 보장하는 가운데, 서로 비밀이 없는 부부사이’……. 이 것은 믿음과 사랑으로 결합된 인격적 가정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델이자, 증거요, 지표이다. 그러므로 부부사이의 사생활은 보장되어야 한다.



[주] (1) 부부 이야기, 김용섭-전은경, www.webmedia.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