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논술문 들녘

역사바로세우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니별 2006. 9. 21. 14:11
 

[논객 408 과제 논술문}

        

              역사바로세우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길수


 2004년 여름의 우리사회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더하여 일반 국민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 전향 장기수가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의문사 진상 규명위원회의 판정과 그에 대한 대통령의 ‘정치적으로 왜곡 말라’는 언급내용, 북한 함정의 북방한계선 침범 사실에 대한 미보고 사태, 간첩 혐의로 복역한 전력이 있는 인사의 현역 장성에 대한 비리조사 같은 일로 촉발된 ‘국가 정체성 논란’ 등이 그 것이다. 더욱이 ‘역사바로세우기’란 명분의 친일 진상규명법 개정을 놓고 여야가 공방으로 치닫더니 과거사에 대한 포괄적 재 규명으로 비화되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민망하게 우리 사회에서 작금 벌어지고 있는 이와 같은 일들은 절대다수의 양식 있는 국민들을 우울하고 짜증나고 화나고 불안하게 하고 있다.

 ‘기록된 역사는 승자의 역사’란 말이 있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맞는 말이다. 유사시대는 물론 선사시대까지도 승자나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기록과 유물을 남겼을 것임은 자명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유념해 보면, 역사란 언제 어느 시대나 승자 또는 역사 기록 주체에 의해 잘못 기록되거나 고쳐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역사 평가나 역사 교과서 문제 등에서 우리는 역사가 얼마든지 다르게 씌어질 수 있음을  본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사실은 역사에 기록된 내용과 승자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역사는 지속적으로 다시 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는 왜 쓰였고, 또 써야하는 것일까? 역사는 인간의 자기인식을 통한 ‘자기 정체성의 확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 즉, 자기 정체성을 아는 일이다. 그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기의 본질을 안다는 의미이며, 자기 본질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를 아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이를 시도(試圖)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므로, 그 가능성을 아는 유일한 길은 과거에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가라는 점에 있다. 따라서 역사의 목적은 인간이 무엇을 해왔는가를 앎으로써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알며, 나아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자기 가능성을 아는데 있다. 다시 말해 역사는 ‘인간의 정체성’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쓰였고 또 써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의 목적에서 볼 때 ‘역사바로세우기’는 바로 과거에서 배워서 현재와 미래의 자기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해야 하는 작업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역사바로세우기’ 논의가 ‘한국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라면 그 것이 제 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첫째, 그 논의는 사회적, 국민적 합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민간단체 특히, 학계가 중심이 되어 먼저 그 필요성을 연구하고, 활동하여 사회 저변까지 공감대를 형성,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한다. 이 과정에 어떤 외압이나 간섭이 있어서는 안 된다.

 둘째,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어느 정파나 정당, 또는 단체가 주체가 되어 일방적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것을 본의든 아니든 정략적으로 이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모든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 주체가 개인이든 단체든 언론이든 정당이든 모두 자발적으로 동참할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 ‘과거사 규명과 반성’이 주도 주체 세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럴 때는 공정성 시비가 일 것이 뻔하다. 이러한 면에서 ‘문민정부’ 시절의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넷째,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의 적용 시기와 대상문제도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되어야한다. 한 세대도 가기 전에 역사평가를 한다는 것은 제대로 평가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세계역사나 어느 민족의 역사에서 시대나 왕조, 혹은 정권에 따라 역사의 기술이나 평가가 다른 것을 얼마든지 본다. 제대로 된 평가는 적어도 반세기는 흘러야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며, 사안에 따라서는 한 세기 이상의 기간이 필요한 것도 있다고 본다.

 다섯째, 북한과 관련되는 문제는 전문적인 연구를 하면서 취급해야한다. 민족의 장래와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무릇 모든 ‘역사바로세우기’는 과거에서 배우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과거에서 배워서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미래지향적인 것이어야 한다. 용두사미 격으로 과거의 문제를 들추어내어 오히려 사회공감대와 국론을 분열시킨다면 하지 않음만 못할 뿐 아니라, 자칫 큰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정체성 확립’을 위한 ‘역사바로세우기’ 논의는 결국 우리가 처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하는가의 현실적 논의로 귀결되어야 한다.

  역사는 보는 이의 관점, 시대, 국내 ․ 국제 정치상황, 단체의 성향 등에 따라 각기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역사바로세우기’의 목적이 ‘국가 정체성’의 공고화에 있다면,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를 극복하고, 진정한 민주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미래지향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위에 열거한 원칙들을 지키면서,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어내는 지혜를 모으고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원로, 정치, 외교, 경제, 교육, 국방, 문화, 종교, 시민사회 등 사회의 모든 직능단체들을 망라하는 협의기구 같은 것을 만들어 상시 활동을 하는 방안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개인도 무엇을 개선하기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아 잘 된 것과 잘못 된 것을 가려내어 계승할 것은 이어가고, 반성할 것은 고친다. 하물며, 사회와 국가에 있어서의 ‘역사바로세우기’ 는 과거사의 공과 과를 미래 지향적인 역사관과 국가 사회적 합의로 바르게 평가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현실의 난제를 극복하는 자양분이 되게 하고, 모든 국민이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으며 행복한 삶을 사는 미래 건설의 방안이 되게 해야 한다.

 과거에서 배워 미래를 계획하는 일! 그 것이 ‘역사바로세우기’의 핵심이다.


- 2004. 8.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