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만남, 20220316

보니별 2022. 3. 27. 21:56

 

 

                  등록일 2022.03.27 18:24                                  게재일 2022.03.28

 

 

 

2022년 3월 16일 오전 11시 38분. 보도를 걷다가 한 곳에 닿은 눈길에, 가슴 떨림이 강물의 윤슬처럼 일었다. 걸음이 저절로 멈추었다. A초등학교 남동쪽 석축 앞이다. 두 만남이 기다렸다. 얼른 핸드폰 사진을 찍었다.

 

눈물 나게 반가운 만남이다. 하지만, 가슴이 시려왔다. 작은 한 존재의 움직임이 예전 모습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애처롭다. 겨울나기에 온몸의 힘을 다 써버린 것일까. 겨우내 몸을 떨어 열을 내며 서로 보듬어 무리를 봄날처럼 따사하게 만들며 추위를 물리치고 살아남는 존재들. 저들은 안쪽과 바깥쪽 자리를 번갈아 서로 바꿔가며 모두를 따뜻이 지켜낸다니…, 사람보다 낫다.

 

요 며칠 동안 우울한 뉴스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제주와 남부지방에서 꿀벌들이 어디론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간다는 소식이었다. 벌은 과일, 푸성귀, 곡식 등 식물 꽃의 수분(受粉)을 담당하는 주체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렇다. 나비와 다른 곤충들도 있지만 역부족이다. 양봉 업주들은 개업 이래 처음 벌어진 일이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단다. 학계는 벌과 곤충이 생태계에서 사라지면 결국 사람까지 살 수 없게 된다고 줄곧 경고하고 있다.

 

어른 가슴 정도의 높이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철사 펜스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양지바르다. 울타리엔 장미가 적당한 간격으로 어우러져 산다. 커다란 석축 돌들 사이엔 심지 않은 풀들이 언제부턴가 터 잡고 있다. 민들레도 풀들과 함께 산다. 민들레는 보통 4, 5월에 꽃을 피운다. 4월이 되려면 아직 보름은 남았는데, 샛노란 민들레꽃 세 송이를 올해 처음 만났다. 무척 반가웠다.

 

한데, 한 민들레꽃에 꿀벌 한 마리가 내려앉아 있는 게 아닌가. 도심 한복판에 꿀벌이 이렇게 일찍 나타나다니. 가슴이 안도의 숨결을 내보낸다. 꿀벌의 움직임을 자세히 보았다. 안도의 숨결이 근심의 물결로 변한다. 꽃에서 꿀을 모으는 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바지런하다. 재바른 움직임에 사진 찍기도 어렵다. 한데, 이 꿀벌은 행동이 어눌하다. 사진을 찍어도 반응이 없다. 기력 쇠한 환자처럼 굼뜨다. 반갑던 민들레꽃의 모습이 기후환경 변화의 화신으로도 파고들었다.

 

사람이 주변의 동, 식물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살면 생태계의 변화가 피부에 와 닿는다. 이런 연유로 출, 퇴근길에 이곳으로 일부러 자주 지나다닌다. 도심 복판에 있으면서 별꽃, 민들레, 쑥, 클로버, 소나무 같은 풀, 나무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자연의 일부가 아니던가. 어릴 땐 산골에서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자라났다. 젊은 날엔 주말마다 들로, 산으로, 바다로 쏘다니며 자연 품에 안기며 지냈다.

 

기후환경변화와 생태계 교란, 이어지는 동, 식물의 멸종 현상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어젠다다. 그런데도 지구촌의 대응은 부실하기만 하다. 민들레 같은 봄꽃들이 일찍 피어나고, 꿀벌 등 곤충의 실종 현상은 과연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 오늘 도심에서 만난 민들레꽃과 꿀벌은 희망으로 왔을까. 경고로 나타났을까.

 

아무튼, 이 시대의 징표로 온 것은 거부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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