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코로나19 펜스

보니별 2022. 5. 9. 11:12

                                     등록일 2022.05.08 18:06                                    게재일 2022.05.09

 

 

학교 녹지화단에서 영산홍꽃이 활짝 웃으며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하지만, 갈 수 없다. 전 같으면 여러 사람이 정자나 곁 의자에 앉아 웃음꽃을 피우고, 더러는 운동장을 걷고 있을 시간이다.

무엇이 마음에 걸리고 억누르는 것만 같다. 찝찝한 생각도 가슴을 붙잡는다. 바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 후 새로 세운 펜스 때문이다. 펜스는 녹지의 화단이나 정자, 의자 같은 시설물들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부지경계선 위에 무작정 놓아졌다. 그 바람에 녹지의 꽃과 나무, 편의 시설들이 그만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십여 년 전쯤, 전국적인 ‘담장 허물기’ 붐이 일었다. 초등학교는 물론 관공서, 종교시설까지 담장 허물기 사업이 벌어졌다. 국민 쉼터가 부족한 우리나라 도심의 현실에서 담장 허물기 사업은 가뭄의 단비였다. 덕분에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쉬거나, 걷기운동까지 하게 되었으니 정말 따봉이었다. 피부에 와 닿는 위민(爲民)행정의 한 표본이었다.

 

출퇴근 시마다 한 초등학교 곁을 걸어 지나다닌다. 보도 옆 학교 구내엔 아름다운 녹지 정원이 담장 허물기 사업으로 마련되었다. 정자, 야외의자 등 편의 시설도 함께 있어 도심의 훌륭한 녹지 쉼터다. 많은 시민이 쉬거나 여가를 즐기는 곳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철길 숲이 생기기 전엔 나도 자주 걷거나 쉬었다. 코로나19가 퍼진 어느 날, 어른 허리춤 높이의 ‘코로나19 펜스’가 녹지 정원을 막아섰다.

 

우리말 ‘울타리’는 풀이나 나무 따위를 얽거나 엮어서 만든 일종의 표지(標識)다. 경계를 알려주어 사람이 스스로 넘지 말라는 안내판 같은 것이리라. 하지만, 코로나19 전염을 막으러 설치한 이 금속펜스는 울타리로 보이지 않는다. 하얗게 칠하고 알록달록한 동그라미, 타원, 세모, 마름모 모양의 무늬들로 꾸몄다. 그러나 사람 출입을 강제로 막으려는 시설물이니, ‘울타리’가 될 수는 없을 터다.

 

금속펜스의 높이나 견고성으로 볼 때, 영, 유아나 노약자 말고는 맘먹으면 누구나 넘을 수 있다. 때문에, 범죄 의도를 품고 넘는 자는 막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시민 쉼터만 빼앗은 결과가 되고 말았다. ‘코로나19 펜스’를 세운 이곳 초등학교들의 녹지 차단 모습은 거의 같다. 비용은 따지지 않더라도, 뻔히 보이는 것을 애써 감추려는 나라 살림의 단면을 펜스를 통해 보는 것 같아 답답하고 씁쓸하다.

 

대통령이 ‘촛불혁명’이라 자칭하며 출범한 문재인 정권의 지난 5년이, 학교의 ‘코로나19 펜스’ 같아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아름다운 녹지가 눈에 뻔히 보이는데, 불필요한 펜스가 가로막아 갈 수 없는 답답함…. ‘소득 주도 성장론’의 실패처럼 나라의 경제, 안보, 외교, 복지, 의료, 국방 등 주요 정책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펜스처럼 만들어져, 주권자 국민과 소통하지 못했다. ‘내로남불’의 먹먹한 세월만 보냈다.

 

이번 3·9 대선은 중앙 선관위의 통계수치가 증명하는 ‘부정선거’ 정황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도우심으로 정권이 바뀌게 되었다. 새 정부는 나라의 요소요소에 필요 없이 막아 세운 ‘코로나19 펜스들’을 하루빨리 제거해 나가면 좋겠다.

'어울리기 > 발표 글-경북매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씀바귀, 도심에 살다  (0) 2022.05.22
그 후, 한 달  (0) 2022.05.15
무슨 바람  (0) 2022.04.24
만남, 20220316  (0) 2022.03.27
표본 경고등  (0) 2022.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