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자귀나무

보니별 2018. 6. 8. 12:23



                            



                                                                자귀나무

                                                                                                               강길수姜吉壽 

 

   등산길 어귀, 고가도로 밑을 돌아 오를 때는 어쩐지 마음이 쓸쓸해진다. 언제부턴가 그랬다. 예전에 이곳을 지날 때는 까닭 모르게 기분이 좋았었다. 그때보다 인도와 차도가 잘 정비되어 더 깔끔해 졌는데도 왜 그럴까. 가만히 되돌아 생각해본다. 맞아. 바로 그런 연유가 있었던 게다.

   나무들이 사라진 것이 이유였다. 새 아파트 입주민을 위해 도로를 넓히는 공사 때, 슬프게 잘려버린 나무들을 내 마음은 간직하고 그리워하나보다. 저쪽 맞은편 양지바른 길 아래에 커다란 벚나무가 살았다. 벚나무 왼쪽 앞으로 젊은 복사나무가 다정한 이웃으로 자리했다. 이쪽 길의 축대 옆에 터 잡은 큰 자귀나무는, 오르는 이들에게 손짓하며 제일 먼저 반겼다.

   세 나무 모두 튼실해 꽃도 여느 나무들보다 더 아름다웠다. 벚나무 꽃은 저쪽에서 커다란 연분홍나비의 승천 모습을 만들며 자랑했다. 누굴 홀려 내려는지 복사나무 꽃은 유달리 진한 핑크빛 미모를 한껏 뽐냈다. 하지만, 세 꽃나무 중에서 가장 마음 끌린 나무는 바로 자귀나무였다. 봄꽃들이 지고 햇볕 따가운 여름날, 짝 맞추어 환호하는 잎들의 사열 속에 핑크빛부채춤 추며 무대 위로 펄쩍 뛰어오르는 신데렐라, 자귀나무꽃. 누가 심었는지 씨가 떨어져 싹 돋았는지 알 수 없지만, 앞을 오가는 사람들은 핑크빛부채춤사위에 넋 놓을 따름이었다.

   그뿐 아니다. 몰랐던 비밀도 드러났다. 등산 갈 때와, 땅거미 내릴 무렵 내려올 때의 자귀나무 잎은 모양이 사뭇 달랐다. 갈 때 활짝 펴 있던 잎들은, 올 때는 연인이 되어 서로 부둥켜안고 밀회를 즐기는 게 아닌가. 밤낮을 함께 붙어살면서도 뭐가 모자라, 해만지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랑을 나눌까. 처음 밀회와 만났을 때, 무심하게도 날씨가 가물지도 않은데 왜 저럴까싶었다.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깜짝 놀랐다. 이름만 들었을 뿐, 더 알려 하지 않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잎이 밤에 짝 맞춰 접는 모습에서 금슬 좋은 부부를 읽어낸 선인들은, 부부금슬을 빌며 안마당에 이 나무를 심었단다. 잎을 합하는 수면운동현상은 수분조절을 위해, 잎자루 밑 엽침(葉枕)이 작용해 생긴다고 했다. 합환목(合歡木), 야합수(夜合樹), 유정수(有情樹), 합혼수(合婚樹) 등 금슬을 나타내는 이름들도 있었다. 평생 배우며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인가 보다.

   자귀나무에 마음 끌렸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자귀나무가 보모님의 생 특히, 어머님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가슴을 푹 파고들었다. 장남이란 이유로 논밭갈이 같이 소 부리는 농사일을 못 배운 아버지는 소위, 반거충이 삶을 사셨다. 하여, 우리 집 농사일은 상당부분 삼촌에게 의지하였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는 벼 중매일과 동장 일을 오래 하셨다. 어머니는 집안일을 양쪽 곧, 아버지와 삼촌 두 분께 맞추며 사셔야 했다. 게다가, 낳은 자식 일곱 중에 셋을 가슴에 묻고야 마는 비극도 겪어냈다. 둘은 병으로, 가장 잘생기고 똑똑했던 셋째 아들아이는 모 심던 날 불어난 냇물에 잃고 말았다. 어머님이 겪었을 슬픔과 고통을, 뉘라서 감히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바깥일로 약주를 거나하게 드시고 늦게 집에 들어오시는 날이 잦았다. 그런 날 안방은 으레 아버지의 말이 자자하게 들릴 뿐, 어머님의 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일하면서 얻은 스트레스를, 술과 어머니 앞에서 풀어 놓는 이야기를 통해 푸신 듯하다. 술 취한 사람이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다시 하는 데는 웬만한 사람은 질리게 마련이다. 어머니는 그런 내색을 하신 적이 없다. 이력이 나신 걸까. 천성이셨을까. 아니면, 삶의 고수셨을까. 나중엔 어린 내가, ‘나는 커서 술 먹어도 저러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도 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삼촌들의 뒷바라지는 부모님 몫이 되었다. 그럼에도 아버지형제간은 우애 있다고 소문 나 있었다. 한번은, 건넌방에서 아버지와 둘째 삼촌 간에 무슨 일로 말다툼 한 적이 있다. 삼촌 세분과 사는 동안, 큰 소리를 들은 것은 그때뿐이다. 큰삼촌은 옆집에 사셨다. 형님 집 농사일을 내일처럼 해 주고, 아버지는 아우 집 바깥일을 내일같이 봐 주며 사는 모습이 이웃들에 돋보였으리라. 어머니도 동서지간에 입씨름 하는 걸 본적이 없다.

   훗날 내가 결혼하여 타지에 나와 살면서, 비로소 부모님의 삶이 점차 이해되었다. 산촌의 가난한 살림으로 남동생 셋을 건사, 분가시켰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단했을 부모님의 삶이 훤히 보였다. 어려워도 힘든 티를 내지 않고 금슬 좋았던 부모님의 삶은, 어머님의 보이지 않는 눈물이 우리 가정을 봄비로 두루 적셨기 때문이었으리라.

뒤돌아보면 우리 집은 한 그루 금슬 좋은 자귀나무였다. , 어머니는 잎의 엽침이셨다. 엽침의 역할로 자귀나무는 밤마다 합환목사랑을 나눈다. 똑같이 어머님의 숨은 헌신이 엽침 되어 우리 집을 튼실한 자귀나무로 가꾸었다고 뒤늦게 깨닫는다.

   부모님 다 떠나신지 벌써 강산이 두 번째 변하려한다. 짬 있을 때마다 가는 등산로 어귀. 축대 곁 자귀나무도 베어진지 몇 해가 지났다. 시간 앞에 변하지 않는 것 없어 쓸쓸하지만, 자귀나무는 가슴속에 살아남아 오늘도 나를 반긴다.

 

 

              - <에세이21> 2018 여름호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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