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2018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은상-하늘바라기, 웃다 / 강길수

보니별 2018. 10. 17. 22:16

[수필대전 수상작]

은상-하늘바라기, 웃다 / 강길수

2018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2018.10.17



갑자기 해안 길로 가고 싶어졌다.
바닷가 길섶에 핀 보랏빛 쑥부쟁이안테나의 손짓 때문인가. 칠포마을 좁은 내리막을 조심스레 달려, 다리 건너 왼쪽 언덕을 돌아선다.
기다린 듯, 곤륜산 푸른 품이 서기(瑞氣)로 안아 들인다.
서북쪽 품안 자드락에 차를 세우고, 오솔길을 오른다.
‘맞아. 저 옛 주인공이 텔레파시로 나를 불렀어!’ 하는 속말이 들려왔다.

드디어 다 올랐다.
나지막한 금속 난간을 잡고, 도랑 건너 가을 주인공을 마주한다.
접시안테나를 닮아, 언제부턴가 가슴속에 피어난 쑥부쟁이안테나도 켠다.
‘오늘은 무슨 메시지를 보내오려나?’하며 주인공을 살피는데,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주인공 오른쪽 밑 부분에, 희고 긴 비닐조각 같은 것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하늘 쪽으로 삼사십 센티미터 될법하게 길다.
약한 하늬바람에 나불대며 반짝인다.

마음이 부스럼 난 듯 근질댄다.
슬쩍 부아도 올라온다.
귀한 주인공 곧, 선사시대 문화유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9호 포항칠포곤륜산암각화’ 주위를 관계 당국이 방치한 것 같아서다.
진즉 성역화했더라면, 저런 비닐조각은 날아오지 않았을 텐데…. 당장 주워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난간을 돌아 내려가 도랑을 건너뛰었다.
몇 걸음 암각화바위에 다가갔을 때, 흠칫 놀라고 말았다.
비닐조각으로 보였던 것은, 뜻밖에도 뱀 허물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폈다.
허물은 암각화 일부에 하늘을 향해 단정히 붙어 있다.
바짝 마른 것을 보니, 탈피한 지 제법 시간이 흐른 듯하다.

이상하다.
평소와 달리, 이 뱀 허물은 징그럽지 않으니 말이다.
수직에 가까운 암각화바위를 안간힘 다해 기어오르며, 껍질을 벗어낸 뱀의 비원(悲願)이 보여서일까. 암각화가 발산하는 오라(aura) 때문일까. 탈피를 제대로 못하면 껍질에 갇혀 죽고 마는 뱀. 그러니 이 허물은 그가 삶의 한 단계를 무사히 업그레이드했다는 물증이자, 통과의례 현장이다.
허물을 걷어낼까, 말까를 두고 잠시 망설였다.
비닐이라면 당연히 치워야겠지만, 한 생명이 암각화에 덧덮어 놓은 삶의 한 매듭이라 생각하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이 암각화를 선사시대 ‘검파형(劍把形)암각화’ 곧, 칼자루그림이라 한다.
하필 칼자루그림바위에서 삶의 변신을 꾀한 뱀. 그는 선인들의 혼 서린 칼자루그림을 알아챈 것인가. 살아있을 옛 주술사들의 염력에 이끌려 자루에 박힌 보이지 않는 신령한 칼날에, 벗겨지지 않는 제 껍질을 흔적도 없이 도려내기라도 하였나. 아니면, 뱀의 선조가 암각화를 타고 승천해 용이 되어 후손을 불렀을까.
허물이 조금 센 바람에 다시 나풀대기 시작했다.
그냥 두기로 마음먹었다.
허물과 암각화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사이 문득, 옆에 선 늘 푸른 소나무 가지 사이로 유리알 가을하늘이 갑자기 와락 내려와 마음에 푹 파고든다.
순간, ‘암각화는 하늘바라기로 새겨졌다! 뱀도 하늘로 기어오르며 허물을 벗었다!’는 메시지 파동이, 가슴속 쑥부쟁이안테나를 번개같이 내려쳤다.

연이어 새 메시지가 수신되었다.
‘칼자루는 사람이 만들고, 칼날은 하늘이 내려주기를 바란 선인들의 하늘바라기가 검파형암각화로 응답한 것’이라고…. 세상에 아니, 우주에 하늘과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위를 살펴본다.
나무도, 풀도, 꽃도 모두가 하늘바라기로 서 있다.
동물과 사람, 곤충과 미생물, 그 밖 지구촌의 온갖 것은 물론, 우주의 모든 존재까지도 하늘 안에 있다.

그랬다.
모든 존재는 하늘바라기였다! 높고도 깊으며, 멀고도 가까운 어떤 곳에 닿은 느낌이다.
그곳은 타임머신으로 삼천 년을 거슬러 갔거나 혹은, 앞질렀어도 변치 않을 바탕이리라.
인간은 유별난 하늘바라기다.
그가 만든 우주탐사선이, 태양계 밖 우주를 날아가는 고도과학기술시대를 산다.
그래도 하늘을 향한 인간의 열망과 찬미, 종교의식과 예술창작, 탐구와 실험의 응답은 그칠 줄을 모른다.
도대체 하늘은 삶에 무슨 이음이 있어, 인간의 온 역사가 하늘에 닿아 있을까. 많은 민족의 신화화 역사에서 보듯, 정말 인간은 하늘에서 온 존재인가.
본능적 갈증이다.
갈증을 풀기 위해 현대인들은 숱한 UFO 이야기를 생수로 마신다.
왜 그런지 묻는 것은 바보스러운 일이다.
삼라만상 모든 실존을 품어 안고 있어, 거부할 수 없는 현존이 바로 하늘이니까. 암각화를 품은 이 산의 이름이, 불사의 선녀 서왕모(西王母)가 산다는 곤륜산이 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닐 게다.
하늘바라기로 살며 응답해야 할 큐피드의 금촉화살을 맞은 존재, 그가 인간이다.

어릴 때, 하늘 꿈을 많이도 꾸었다.
생의 가을을 사는 요즈음도, 가끔 하늘 꿈을 꾼다.
그럴 때마다, 질문받은 학생처럼 응답이 궁금했었다.
오늘 곤륜산암각화 앞에서 하늘바라기를 배워, 처음 대답한 마음이다.

암각화 품에 활짝 핀 쑥부쟁이안테나 둘이, 하늘바라기로 웃고 있다.



“하루 한번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정진할 것”
수상소감

‘하루에 한 번 하늘을 바라보자!’고 한 문우가 한동안 메일 끝에 적어 보내왔다.
나는 ‘하루에 한 번은 하늘을 바라보자!’고 답신에 써 보내곤 했다.
평소 하늘을 자주 보며 살았는데, 이 일로 하늘을 더 많이 바라보게 됐다.
 
칠포곤륜산암각화를 만난 이후 야릇한 힘에 이끌려 자주 찾으며 산다.
실물을 그려놓은 암각화라면, 그렇게 여러 번 가지 않았을 것이다.
 
수상 소식에 ‘하늘’이 떠올랐다.
암각화를 찾으면 꼭 주위도 한 바퀴 둘러본다.
이때, 하늘도 함께 바라다보며 하늘바라기가 되고 만다.
 
동쪽 곤륜산 정상으로 고개를 들어야 보이는 드높은 하늘과, 서쪽 저녁놀 물든 산 너머로 그리운 하늘이 있다.
남쪽 나뭇가지 사이로 태양빛 맑게 스며드는 아련한 하늘과, 밤이면 잠든 산등성이 타고 오르는 별들 총총한 북쪽 꿈 하늘도 있다.
하늘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하늘을 제대로 느끼려 하지 않고 살았던 내게 하늘의 소중함을 알려 준 암각화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오랜 기간 함께 수필 길을 걷는 ‘보리수필’ 동인들과 글 길을 가르쳐 주신 은사들과 지인들께도 고마움을 드린다.
 
이 수상을 앞으로 더 분발, 정진하라는 뜻으로 삼으련다.


△2006년 ‘에세이 21’ 추천 완료
△2009년 제1회 포항소재문학상공모 수필부문 최우수상 당선
△보리수필문학회 회원, 산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부문 심사평 / “전통문화 대하는 독특한 시선 돋보여

 

대구일보사가 주최하고 경상북도가 후원하는 9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은 경북의 문화유적지를 비롯해 유무형의 전통문화를 찾아보고 그 체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획득할 좋은 기회라 여겨진다.

338편이 응모한 가운데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70편의 응모작들을 심사위원들이 윤독하고 심도 있게 논의했다.

공모전이 표방하는 바에 충실한가, 전통문화를 읽는 시선과 해석이 독창적인가, 수필의 기본요건인 문장은 바른가, 문학성은 있는가 등에 주목했다.

회를 거듭함에 따라 소재는 중첩되고 기량은 평준화됐다.

하여 독특한 시선과 남다른 해석이 요구된다.

 

대상으로 선정된 이석구씨의 웃는 문은 청송 송소고택을 둘러보고 쓴 글이다.

고택의 미학적 구조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서술에 이어서 에 대한 고찰이 시작된다.

솟을대문을 비롯해 사랑채와 안채, 별당 등 밖과 안을 잇는 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중점을 뒀다.

“~ 문지방은 아래로 휘어져 살포시 웃는 모양 같다.

” ‘웃는 문을 볼 수 있는 작가의 시선은 매우 독특하다.

또한 끼익’, ‘삐이걱을 문의 웃음소리로 듣는 작가의 감각도 새롭다.

으로 열림과 닫힘, 소통을 말하고 있다.

시선은 신선하며 사유는 깊다.

 

금상에 뽑힌 김순경씨의 향내 품은 툇마루는 도입부의 분위기가 읽는 이의 손목을 잡고 글 속으로 이끈다.

큰 절(흥국사=개목사)이 있었던 빈터의 정황과 내력을 세세히 풀어놓고, 작가는 안방 같은 법당의 툇마루에 앉았다.

사유는 고향의 작은 절, 어머니, 형님들로 이어진다.

일주문도 해탈문도 없는 절, 스님도 보이지 않는 절에서 작가는 툇마루가 삶의 무대라는 낯선 해석을 내놓는다.

문학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강길수씨의 하늘바라기, 웃다를 은상으로 뽑았다.

작가는 포항칠포곤륜산암각화를 찾아가서 뜻밖의 대상과 마주친다.

암각화바위에 걸려서 나불대는것을 비닐조각으로 오인했으나 가까이서 보니 뱀이 벗어놓은 허물이었다.

하늘바라기의 의미화가 파생되는 시점이다.

칼자루그림바위에서 뱀은 허물을 벗었다.

칼자루는 하늘에 칼날을 기원하고, 뱀이 남긴 허물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나무도, 풀도, 꽃도, 사람도 하늘을 향해 있다.

모든 존재는 다 하늘바라기다.

하늘바라기에는 염원이 담겨있고, ‘웃다에는 희망이 함축돼 있다.

 

본 공모전이 문화유산의 찬란함과 영광을 파급하는 동시에 역사의 부침을 통찰해 현대의 좌표로 삼는 데 기여했기를 바란다.

 

지연희 심사위원장 한국문협 수필분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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