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어떤 엑소더스

보니별 2019. 6. 18. 14:09

              

                                                 

                                                            어떤 엑소더스

 

                                                                                                                                           강길수

 

   등골이 도랑 되어 흐른다. 덥다. ‘오늘도 새들에게 먼저 물을 나누어주자고 마음먹었다. 작은 가빠옹당이에 물을 붓기 위해 가빠무덤에 한 발짝 다가섰다.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 ‘어라! 얘들이 왜 이렇게 이동하지?’ 가빠무덤에는 작은 존재들의 행렬이 피란 가듯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뭘까. 쉬운 길을 놔두고 쓸데없는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고, 몸까지 혹사하며 거대한 산을 힘들여 넘는 길을 가고 있는 이유가. 자기들이 넘고 있는 거대한 산이 실은 사람이 만든 재선충 살() 처분 더미 곧, 가빠무덤이란 사실을 짐작이나 하고 넘을까. 봉분도 흙이 아니라, 죽은 소나무를 잘라 쌓고, 두꺼운 가빠로 덮어 사방을 둘러싸 지은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내겐, 저 작고 수많은 개체들의 집단이주 행동이 쉬 납득되지 않는다. 나폴레옹 군대가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도 저랬을까.

   ‘엑소더스란 말이 떠올랐다. 이어, 이 작은 존재들의 탈출 행렬이 인간사회보다 낫다는 생각이 불쑥 가슴을 파고들었다. 수년 전 장마철을 앞두고, 다른 곳에서 본 같은 종의 이사행렬은 길옆으로 길게 이어졌었다. 한데, 이들은 가빠 무덤을 가로질러 올라 넘고 있다. 사람인 내 입장 곧, 관찰지점이 가빠무덤보다 더 높은 삼차원에서 내려다본다. 저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산일 가빠무덤을 힘들여 넘지 말고, 아래로 돌아가면 거리도 단축되고 힘도 훨씬 덜 들 것이란 사실이 곧바로 눈에 보인다. 그런데 이 집단은, 지도자의 결정에 따라 구성원 모두가 바지런히 넘고 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불평불만이라고는 있을 수 없어 보인다. 개체들의 꼼바지런함이 바로 내 마음 메모리에 각인되고 만다.

   개미 지도자는 어떤 계산으로 저들에게는 거대한 산, 가빠무덤을 넘어 장마철을 대비하기로 결정했을까. 흔히들 인용하여 말하는 개미의 이차원적 본능의 결정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개미 지도자는 이 결정에 최선을 다 했으리라. 엄밀히 말하면 개미도 삼차원적 존재다, 개미의 감각기관이 지면에서 아주 조금은 위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높이는 밀가루처럼 작은 알맹이는 몰라도 큰 모래알 정도만 되어도, 전체 모양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을 터다. 가빠무덤 봉분보다도 더 높은 삼차원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입장에서 보면, 개미들이 가빠무덤을 돌아가는 것이 시간이나 거리, 에너지 소모 등 여러 면으로도 더 나은 데 말이다.

   아무튼, 공동체에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결정에 구성원들이 결연히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개미들의 엑소더스 행렬에 불평불만이나 반대, 파업 같은 것들을 하는 개미는 눈 닦고 봐도 없다. 개미들은 다가올 장마의 빗물이 저들의 보금자리를 못 쓰게 하고, 생명을 위태롭게 할까 봐 미리 이사를 하고 있다. 이사 시작점은 가빠무덤의 남쪽 흙이 있는 쪽이고, 종점은 무덤 너머 북쪽 산봉우리 쪽이다. 낙엽이 많아 정확한 종착점을 찾을 수 없다. 휴대폰을 꺼내 잠시 동영상을 찍었다. 다행히 내가 물을 나누어 붓는 가빠옹당이 안으로 개미 대열이 지나가지 않고, 가장자리 높은 곳으로 바지런히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엑소더스는 어땠을까.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동체는 열 가지 재앙에서, 홍해의 갈라짐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먹을거리 만나manna 등에서 자기네 민족을 선택한 하늘의 위대한 능력을 체험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고난이 닥쳐오자, 갖은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며 지도자 모세를 괴롭혔다. 급기야 율법으로 금지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등, 공동체에게 화를 자초하는 반항적 상황을 만들었다. 하늘과 사람 사이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모세는 그립던 목적지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도, 정작 본인은 들어가지 못하고 마는 슬픈 엑소더스를 이끈 신탁의 지도자였다. 하늘은 모세에게 왜 이런 섭리를 했을까. 인간이 미물이라고 말하는 저 작은 개미들이, 왜 이 시간 나에겐 극명히 인간 사회와 비교될까. 역사를 섭리하는 하늘의 뜻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가 걸어온 엑소더스의 길은 어떤가. 젊은 날 군에서 제대하고 취업하기 전 한해 가량을, 고향에서 집안 농사일을 도우며 취업준비도 하면서 지냈다. 그 무렵, 아버지의 인생길에 대해 처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리 사회보다 경제가 발전했던 일본에 징용을 다녀왔던 아버지다. 만일, 그 때 아버지가 고향을 떠났더라면 자식들의 삶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버지는 농촌 생활보다는 도회에서 사는 것이 더 잘 되었으리라는 게 내 마음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일본의 징용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만류로 고향에 정착했다고 말하신 적이 있다. 하여, 우리 집은 소를 부리는 상일꾼 농사일은 삼촌이 도맡아 해야 하는 어설픈 반거충이 농가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의 유년시절,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맏아들이라는 이유로 고된 농사일은 못 배우게 하고 삼촌에게 시켰단다. 때문인지 아버지는 동장, 벼 중상中商 등을 하며 집안 바깥일들을 도맡다시피 하였다. 나 같았으면 늦었어도 소 부리는 일을 배울 텐데, 왜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는지가 속으로 궁급했었다. 그러나 한 번도 아버지께 물어보지 못했다. 당시 고향 동네의 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다. 주위에 우리 집뿐 아니라, 형제가 많은 집들은 맏이가 반거충이인 농가가 제법 있었으니까. 그때 우리 집 농토 중에서 제일 큰 밭에 사과나무를 심은 것도, 이 일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철들면서부터 이런 집안의 분위기 때문에, 나는 저절로 고향 엑소더스를 꿈꾸었다. 꿈은 군에서 제대한 해에 구체화되었다. 그해 늦가을 국책사업으로 처음 지은 일관제철소의 입사시험을 거쳐, 이듬해 취업하면서 그 꿈을 이루는 발걸음을 떼었다. 당시 나라의 중화학공업정책과 맞물려 팽창하는 공업도시로 빠져나온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의 엑소더스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의 고향 엑소더스가 모세가 이끌었던 그것 곧,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내 힘으로 벌어 한 가정을 꾸려왔고, 아버지와 달리 동생의 도움 없이 독립하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반거충이로부터의 엑소더스인 셈이다.

   오늘날 기후와 자연, 사회의 변화는 미래에 대한 시대 징표로 다가온다. 징표들은 내게 젊은 날의 엑소더스에 이어, 새로운 엑소더스를 요구하고 있다 싶다. 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변화와 환경문제, 승자만 살아남는 무한경쟁 국제경제 시스템, 도래할 제 사차 산업혁명 사회의 고용감소 등에 대한 불안감. 부의 강대국 편중, 저개발국의 빈곤과 기아. 자원 확보 전쟁, 경제를 앞세운 지투G2의 패권경쟁에서 파생되는 국제 정치, 경제, 안보 등 현안들. 종교의 이름으로 살인과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언론을 통한 교묘한 선전선동과 여론조작으로,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는 집단들. 삼차 세계대전의 먹구름을 몰고, 내달리는 악마적인 핵무기와 대량살상 무기. 사차원 이상 다차원을 사는 존재가, 지금의 인간사회를 내려다보고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사회와 지구촌 전체가 정말 새로운 모세, 새로운 엑소더스를 필요로 한다.

   지구촌 문제 해결을 위한 유엔 등 국제기구의 노력이 있다지만, 갈수록 어두운 전망이 나를 불안케 하고 있다. 지구촌 모든 존재들에게 희망이 될 현대의 엑소더스는 정말 불가능한 걸까. 장마를 피해 미리 안전한 곳으로 이사 가는 저 작은 개미들이 보내는 파동이 마음에 몰려온다. ‘문제는 풀기 위해 있다. 풀면 풀리는 게 문제다라고. 개미들 같이 바지런한 엑소더스를 나도, 우리사회도, 지구촌도 시작하면 되는 것이란 가슴의 화답송和答頌도 들린다. 삼차원의 세계에 살면서 사차원 이상 다차원 우주까지 유추하고 향유한다는 인간이, 이차원적으로 사는 작은 개미들보다 못해서 되겠는가. 거리의 휴지 줍기, 신호등 지키기, 세제와 플라스틱 제품 덜 쓰기 등 쉽고 구체적인 것부터 지금 당장 실천하라고 내게 명령하고 있다. 지도자에게 따지지 않고, 미리 장맛비 피해를 피해 가빠 무덤을 꼼바지런히 넘고 있는 저 작은 개미들이…….

 

      

  - <수필미학> 발표, 2019. 여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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