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박주가리 날틀

보니별 2021. 3. 13. 13:12

                                                  박주가리 날틀

                                                                                                                   

                                                                                                                                                              강길수|姜吉壽

 

 

   하늘이 코발트블루다. 작은 날틀 하나가 높하늬바람 타고 하늘에 떴다. 어디로 뭘 하러 가는 걸까.

   날틀은 비행기도, 로켓 우주선도, 드론도, 외계인의 비행접시도 아니다. 누에고치섬유 같은 갓털이 주인 하나 달랑 달고 나를 뿐이다. 한 올 한 올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가는 갓털이다. 작은 것들도 모이면 큰 힘을 내는 법. 무수한 갓털은 주인을 꽉 부여잡고 바람 타고 나른다. 바람이 세게 불면 한 방향으로 모여 빨리 날고, 약해지면 산발한 여인의 머리처럼 이리저리 흩날리며 지그재그로 곡예를 한다. 그 나르는 모습이 꼭 소문 무성한 외계인 비행접시의 비행을 연상케 한다.

   갑자기 날틀이 처박힐 듯 빨리 내려온다. 추락하는가 보다.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어떤 날틀인지 보고 싶어서다. 날틀은 사람 키 정도 높이까지 휘둘리며 내려오다가, 다시 고도(高度)를 잡으며 떠오르기 시작한다. 갈 길이 더 남았나 보다. 가까워진 날틀을 자세히 살펴본다. 휴대폰 사진도 찍었다. 날틀은 박주가리 갓털과 그 씨방이었다. 하얀 갓털이 부여잡고 있는 씨방은 꼭 아주 작은 갈색 복주머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는 박주가리를 ‘새박’이라고 불렀다. 국어사전에 박주가리의 씨를 ‘새박’이란 이름으로 한방에서 쓴다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아이들은 어디서 배웠는지, 어린 새박을 따 그 안의 하얀 갓털 달린 씨앗을 빼내 먹기도 했다. 갓 생긴 씨앗이 갓털 섬유와 함께 오독오독 씹히며 달짝지근한 맛을 냈다. 특별한 간식거리였지만, 웬일인지 자주 먹거나 많이 먹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그 독성을 아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많이 먹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지 싶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텃밭 가장자리에 시선이 가자, ‘아 참, 그랬었지!’ 하는 속말이 절로 나왔다. 지난봄, 그곳에 박주가리 두세 포기가 났었다. 덩굴이 잘 자라 오르라고 조릿대 몇 나무를 베어 지지대로 세워 주었었다. 거름도 주지 않았지만, 박주가리는 너무 잘 자랐다. 한줄기에서 여러 가지가 나서 서로 꼬이며 나사처럼 지지대를 감아 올랐다. 여름이 되자, 지지대는 보이지 않고 덩굴만 무성했다. 덩굴에서 일제히 꽃이 피기 시작했다. 분홍빛 작은 꽃들이 텃밭을 밝혔다. 옆에 사는 푸성귀의 영역까지 넘보며 무섭게 자라났다.

   박주가리꽃이 질 무렵, 아내는 그 덩굴이 너무 무성해 곁의 취나물과 파가 잘 안 된다며 덩굴을 걷어내자고 했다. 놀란 내가 그래도 한두 덩굴은 살려두자고 하여, 몸 상당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한 덩굴만 남게 되었다. 박주가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열매를 맺었다. 어린 시절 표주박 같은 초록 열매를 따서 씨방을 꺼내 먹던 추억을, 실로 오랜만에 다시 경험하는 호사도 누렸다.

가을이 가고 텃밭 가는 횟수가 줄어들며, 박주가리에 대한 생각은 잊고 말았다. 겨울 끝자락이 왔다. 텃밭에 심은 양파와 마늘이 궁금해 모처럼 아내와 함께 왔다. 하늘은 여전히 맑고 높다. 머지않아 봄철의 황사나 미세먼지가 하늘을 흐리게 할 것이지만, 오늘은 드높은 하늘에 기분도 좋다. 게다가 우리 밭에서 이륙한 박주가리 날틀까지 만났으니 행운이다.

   박주가리는 왜 자식들에게 갓털을 붙여 날틀로 변신 시켜 자란 밭을 떠나게 하는 것일까. 밭에 떨어지면, 우리가 싹을 뽑아낼 것이란 사실을 예지(豫知)라도 하였다는 말인가. 하늘 높이 떠나가는 박주가리 씨방과 갓털에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는다. 땅속에 묻혀있는 뿌리도 대답이 없다. 이제 박주가리 날틀은 남녘 파란 하늘에 높이 녹아들어 어디론가 떠나갔다.

   박주가리 뿌리와 날틀과 씨방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음파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하루에 한번은 하늘을 바라보며 살겠다.’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나요. 모든 떠나가는 것은 결국 하늘로 간다는 것을요. 푸른 행성 지구도 하늘 가족 중의 하나잖아요….”

 

   멍하니 박주가리 날틀이 녹아든 높은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 했던가. 그런 것 같지만, 엄밀히 따지면 아니다. 인간인 나는 겨우 두 발만 땅에 대고 있을 뿐, 몸은 이미 하늘이 감싸고 있다. 아니 내 발과 양말 사이, 양말과 신발 사이, 신발과 땅 사이에도 하늘이 스며있지 않은가. 지구 전체를 하늘이 감싸 안고 있으니. 땅속엔들 하늘이 들어있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니라, 하늘로 통하는 것이다. 박주가리 씨방이 갓털 날틀을 타고 어떤 새 땅에 내려앉아 자리 잡은들, 거기도 하늘 품이다. 그러니 하늘은 온갖 생명의 고향이자, 근원이다. 나아가, 하늘은 모든 존재의 운명이다.

   박주가리 날틀 녹아든 코발트블루 하늘에, 여객기 한 대 녹아들고 있다.

 

 

 

▶강길수 「에세이21」 등단(2006.봄). *수필집(공저) 『바다로 가는 자전거』, 『존재의 향기』, 『보리수필』1~15집.

 

 

    - 「에세이21」 2021 봄호 발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