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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를 떼어내고

보니별 2016. 11. 25. 13:18




오피니언칼럼
안대를 떼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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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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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길수 수필가<br /><br /> 
▲ 강길수 수필가 
 
 

약국 문을 나선다. 기분이 참 좋다! 밝은 햇살이 망막을 파고들어도, 덴바람이 수술한 눈동자를 덮치며 지나가도 개의치 않는다. 이틀 만에, 그리도 지루하게 느껴지던 안대를 발걸음도 가벼이 떼어 버렸기 때문이다. `군날개` 제거 수술을 한 오른쪽 눈동자가 붉게 충혈 되어 있어도 날아갈 듯이 마음은 가볍다.  
 
사오년 전 여름, 집에 보관하고 있던 쌀에 바구미가 생겼다. 아내와 상의 끝에 옥상에서 말리면서 바구미를 쫓아내기로 하였다. 쌀의 양이 제법 되어, 야외용 돗자리 3개에다 쌀을 고루 펴 널었다. 마르며 쌀이 갈라지는 것을 줄이려 그늘에서 말렸다. 또 날아드는 참새 떼와 비둘기 떼 때문에 쌀을 지켜야 했다. 
 
바구미가 많이 먹은 쌀은 보기에 거의 삼분지일은 쌀가루로 변해보였다. 해질녘 쌀을 거둬들이기 전,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플라스틱 바가지로 쌀가루를 바람에 날려 보냈다. 그러던 중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달라지며, 쌀가루가 내 눈에 수 차레 날아 들어갔다. 이태를 이렇게 여름에 옥상에 쌀을 널어 말리며 지냈다.

재작년 가을에 오른쪽 눈동자 결막에 흰 얇은 막 같은 것이 보여 안과에 갔더니 `군날개`란 진단이 나왔다. 시력에는 영향이 없으나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겁이 났다. 의사에게 발병 원인을 물어 보았다. 몇 가지가 있는데, 눈에 균이 오염되어 일어날 수 있는 등이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뇌리에 바구미 쌀가루 생각이 떠올랐으나, 그게 원인인지 단정할 수는 없었다. 수술 마치면 일주일간 안대를 끼고 살아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미련스레 일 년 반 이상을 미루었다. 거울을 보니 얇은 막이 눈동자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그저께 수술을 했다.

약물 마취 등 준비를 마치고, 군날개의 막을 제거하는 수술이 시작되었다. 마른 손바닥을 재빨리 비빌 때 나는 소리 같은 가벼운 기계음이 잠시 귀를 거스른다 했는데, 벌써 수술이 끝났단다. 물약을 넣고, 고정식 안대를 설치했다. 적어도 이틀은 왼쪽 한눈으로 지내야 했다. 사물의 초점이 잘 맞지 않아 불편했다. 한눈만 안보여도 이렇게 불편한데, 두 눈 다 보이지 않는 분들은 얼마나 어렵게 지낼까.

안대를 제거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틀 동안 한 줄 치기도 몇 배로 힘들던 자판을 이전처럼 두드리며 생각해본다.  

우선, 친절하고 성의껏 내 눈을 수술해 주고, 보살펴 준 의사와 간호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다음으로, 한쪽 눈이 안 보인다고 혼자서 많이 불편해 하며, 호들갑을 떨었던 스스로에게 책망하는 마음이 앞선다. 앞을 못 보는 많은 분들과, 몸이 불편한 수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내 이 작은 불편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비록 남들에게 표는 내지 않았지만, 이틀을 묵묵히 참지 못한 자신의 감추고 싶은 모습이 부끄럽다. 그 다음으로, 건강을 포함한 많은 일들을 자꾸 미루어 왔던 지난날의 내 삶의 모습이 또 확인되어 스스로에게 미안한 생각이 또다시 든다. 하여, 어느 영성운동에서 배웠던 `삶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우친다. 

끝으로, 정신치료를 포함한 의료기술이 더 빨리 완벽하게 발전하여, 인간은 물론, 나아가 모든 생명체의 `생로병사` 중에서 `병`만이라도 완벽하게 해결할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제발 이 푸른 아름다운 지구별에서 `군대`와 `전쟁`을 없애고, 그 자원과 기술로써 `생명체의 병마`를 극복하는 길로, 우리 인류가 하루빨리 나아가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그 길이야 말로, 인간이 진정 `만물의 영장`이 되는 길이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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