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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꽃, 기쁨과 슬픔

보니별 2016. 11. 6. 20:10
오피니언칼럼
나리꽃,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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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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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길수 
 
수필가
오래 전 한 여름…. 
 
동해 아름다운 바닷가, 작은 섬 같은 바위산에서 우연히 나리꽃군락을 만났었다. 하늘나리꽃이었다. 온 산 양지바른 곳에 붉은 정열을 뿜어내는 나리꽃이 참 많이도 모여 피어있었다. 푸른 바다를 얼싸안고 예쁜이대회라도 하는지 사람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얼마나 기뻤던지, 그만 와락 나리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며칠 뒤, 구식카메라를 들고 하늘나리꽃을 찍으러 갔었다. 렌즈 안쪽에 나도 모르게 습기가 오염되어 사진이 선명하지 못했다. 일 년을 기다린 끝에, 설레는 마음으로 또 갔었으나, 이번에는 그 많던 나리꽃이 날씨 탓인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슬펐다.  
 
그런데 몇 년 전 여름, 도심에 가까이 있어 자주 가는 등산로 초입 양지바른 비탈진 곳에, 아름다운 나리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있는 게 아닌가! 헤어졌던 첫사랑을 만난 듯, 얼마나 반갑고 기뻤던지…. 다시 올 때, 디카사진을 꼭 찍어 연중 내내 나리꽃을 만나리라 마음 먹었다.

하지만 이틀 뒤 디카를 가지고 갔을 때, 나리꽃은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왈칵 솟구치는 슬픔을 억지로 삼켜야 했다. 그리고 예전처럼, 또 일 년을 기다리겠다고 다짐했다. 제발 나리꽃을 가져 간 사람이 뿌리는 두고 갔기를 기도하면서….

매미소리가 다시 여름 하늘을 힘차게 유영하였다. 어느새, 일 년이 후딱 갔나보다.

세상살이에 묻혀 살던 나는, 미안하게도 만날 하늘을 보면서도 하늘나리꽃 생각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사흘 전, 그 산에서 만난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오는 길이었다. 꼭 일 년 전 나리꽃이 피었던 그 자리에, 두 송이의 나리꽃이 찬란하게 피어 있는 모습이 내 동공에 비치는 아닌가! 옆 사람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나는, “어! 나리꽃, 그 것도 두 송이네!”하고 감탄했다.

아마도 나리꽃이 나를 불렀거나, 그 꽃을 만나고픈 내 잠재의식이 작동했는지 무심결에도 나리꽃을 찾고 있었던 게다.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무지막지하게 꺾여버린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나리꽃은 덤을 얹어, 두 송이의 꽃을 아름다이 피어냈던 것이다. 올해는 제발 무사하여 자기가 핀 자리에서 그 목숨 다할 때까지, 사람들과 짐승들과 곤충, 풀과 꽃들과 나무들, 공기와 구름과 하늘, 해와 달과 별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나누어 주기를 나는 간절히 빌었다. 

이틀 뒤, 나리꽃과의 신나는 재회를 위하여 일부러 조금 일찍 나리꽃 코스로 갔다.

그러나 나리꽃은 올해도 또,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나리꽃을 잃은 슬픔과 사람에 대한 실망이 또다시 밀려왔다. 그때, 속에서 오래 감추어져 있던 말 한마디가 불쑥 솟아났다. 그 옛날 우리 둘째가 첫돌을 앞둔 어느 가을, 우리 집 작은 화단은 탐스런 국회가 만발했었다. 예쁜 국화꽃에 반해, 꽃을 꺾으려던 젊은 이웃집 젊은 아주머니를 크게 부끄럽고 당황케 했던 말이….



“꽃은 두고 보는 거야!” 



제발, 나리꽃이 시집간 그 집에서, 내가 못다 준 사랑보다 훨씬 더 높고 진한 사랑을 받기를 두 손 모으는 마음 간절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을 억누르며, 나는 또 일 년을 기다리기로 맘먹는다. 그리고 못다 찍은 디카사진 대신, 마음의 메모리에 이틀 전 본 두 송이 하늘나리꽃을 예쁘게 찍었다.

아마도 내년에는, 나리꽃나무가 더 많은 송이의 예쁜 꽃을 피워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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