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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길수 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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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13일. 한 인터넷포털 사이트를 통해,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 사는 어떤 여성 교포를 알게 된 날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십사 년째가 된다.
`은하수별`이란 닉네임을 쓰는 그녀와 이메일을 통해 이런저런 소식과 관심사를 서로
주고받으며 보냈다. 소녀시절 온 가족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은하수별은, 옷가게를 하면서 삶을 꾸려 자수성가한 분이었다. 온라인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반갑게 그녀의 온 가족도 우리 집안같이 가톨릭신자였다. 이 점에서, 나는 은하수별이 마치 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어느 땐가
그녀가 음성메일을 보내왔기에, 나도 서툰 솜씨로 음성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사업 파트너 여부의 검토를 위해 여러 종류의 마시는 차 샘플을 받기도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열장이 넘는 한 한국 신부님의 신앙생활 피정(避靜) 지도 시디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또 아르헨티나 산 포도주, 왕새우, 안데스
산의 고 순도 암염(岩鹽)도 선물로 받았다. 그에 반해, 나는 매년 발간되는 <보리수필> 동인지와 내 발표 글이 실린 계간 수필
전문지, 그리고 내가 편찬책임을 맡았던 <대해성당 25년사>등을 보낸 것이 고작이다.
메일이 오간지 10년째 되는 해엔, 그곳에 함께 사는 남동생이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져 동생부부가 한국에 검진받으러 온 적이 있다. 그때, 먼 길을 마다않고 은하수별 동생부부는 이곳 까지 우리를 찾아왔었다. 우리부부는
정보화시대 인연의 우연성과 소중함을 체험하며, 지구반대편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온 얼굴도 모르는 은하수별의 남동생 부부와 만났다. 그녀의 남동생
요한씨와 부인 글라라씨는 우리를 만나기 위해, 광주에서 네 시간씩이나 고속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제주도에 이어, 홍도를 다녀온 다음 날 바로
이곳으로 왔단다. 저녁식사를 요한씨의 건강을 고려해 채식으로 함께하고, 포스코와 북부 해수욕장 등지의 야경을 함께 구경한 다음 일찍 호텔에서
쉬게 해 주었다.
고향이 원주인 요한씨는 초등학교시절 누나와 함께 온가족이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갔는데도, 우리말을 하나도 잊지
않고 잘했다. 비결을 물어보니, 젊은 날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에게서 한국어를 배웠다 했다. 자신은 그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 주면서
품앗이처럼 서로 가르치고 배웠단다.
다음날. 주일이어서 우리 두 부부는 함께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주임신부님과 인사도
나누었다. 구룡포에서 점심을 하고, 호미곶을 총총 들른 후 바로 경주로 향했다. 첨성대와 박물관 관람으로 경주 돌아보기는 만족해야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떠날 시간은 금방 왔다.
슬프게도 요한씨는 다음해 9월, 고국에서 치료 후 돌아 간지 달포
만에 지병으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피붙이를 떠나보낸 가족들의 고통을 누가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상심한 가족과
은하수별의 슬픔이 머나먼 이곳 내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그 여파로 이메일도 뜸해지기도 했다.
인연이란 무엇일까? 또, 인연이란 어떻게 맺어지는 걸까? 시대, 개인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연…. 인연의 법칙으로 모든 존재의 생성과 소멸, 해탈을 통한 구원의 길을 안내하는 가르침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웃사랑과 하늘사랑이,
고통이란 길을 통해 은총으로 주어지는 구원의 길에 대한 가르침도 생각났다.
경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요한씨 부부를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아쉬움과 기쁨,
변해가는 정보화기술 시대의 한가운데를 사는 존재감으로 가득했다. 인터넷 웹사이트, 가상공간을 통해 안 인연이 현실로 이루어진 지난 이틀을
생각하며 7번 국도를 달려오는 발길은, 내일을 잉태하는 석양으로 아련히 물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