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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바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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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바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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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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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길수 
 
수필가
 

수능시험이 있는 달, 11월 첫날이다. 마침 날씨도 수험생들의 마음이라도 닮았는지 갑자기 초겨울같이 추워졌다. 종교단체들에선 수험생을 위한 기도 같은 신앙 행사들이 벌써 진행되고 있다.  
 
수년 전, 난생처음 시험 감독을 했던 날이 떠오른다. 그것도 국가기술자격 시험 감독을 했다. 참여하는 한 단체에서 시험 감독을 해보겠느냐고 제의하기에 동의하고 나가게 된 것이다. 그 몇 년 전만해도 늦깎이 공부로 학점을 따겠다고 열심히 시험을 보았던 나다. 김건모의 노래 중에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는 가사의 노래도 있었지만, 아침에 집을 나서며 수험자에서 감독으로 바뀐 입장을 경험해 본다고 생각하니, 걱정도 되고 또 야릇한 호기심도 발동하였다.

간단한 사전 교육을 받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한 시험장에 두 명의 감독이 배정되었다. 수험자들은 1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했다. 다른 시험장에는 60대도 있다 했다. 나는 감독이 처음이기에, 경험 있는 아들 같은 또래의 공무원과 한 조가 되었다. 시험이 잘못되지 아니하도록 살피어 단속하는 감독으로서의 기본업무 외에, 여러 부수적 일이 주어졌다. 신분증으로 수험자의 신원을 확인한다든가, 시험지와 답안지카드의 배부, 회수 출석자와 결석자의 파악, 통계 질문에 대한 대답, 공지사항 판서 및 공지, 시험 시작과 종료의 알림과 같은 것들이다.  

함께 배정된 젊은이는 아마도, 내가 초보감독이고 나이도 자기보다 많다고 보아 스스로 알아서 잘 해주는 바람에, 나는 눈치껏 내가 할 일을 찾아서 했다. 그리하여, 내 첫 시험 감독 일은 생각보다 쉽게 잘 끝났다. 아침 8시 20분에 도착, 오후 네 시경에 마쳤더니 다리가 좀 아팠다. 하지만, 하루 감독하고 받은 일당은 거금 일십 만원이었다. 아내는 오만원 짜리 두 장이 든 봉투를 받아들자, 무척이나 좋아했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첫 직장에 취업하면서부터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병행한 나는, 아마도 다른 이들보다 더 오랜 기간 시험을 쳐야 하는 삶을 살았으리라. 시험을 치를 때도 이따금씩 생각한 일이지만, 시험 감독을 하고 보니 더 명료해진 생각이 있다. 바로 `인간은 왜 두 가지의 존재론적 시험을 치러내야 할까?`하는 생각이다. 하나는 모든 생명체, 나아가 모든 존재가 치러야하는 생존시험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만이 치르는 시험이다. 바로, 인간이 만들어 사람의 우열을 가리는 시험이 그것이다.

우주 안에서 은하나 태양계, 행성, 위성들과 그 안에 존재하는 분자나 원자, 그보다 더 작은 입자나 파동, 그리고 힘(에너지)들이 치르는 시험도 분명 있을 텐데, 나는 그에 대한 지식과 감각은 사실 무디다. 그러나 우리 지구별 생태계의 생명들이 치르는 시험은 조금은 알고 또, 느낄 수 있다 싶다. 바로, 모든 생명체는 `적자생존의 시험`을 치러내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내가 시험 감독을 한 시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위적인 시험을 치러내며 살아야 하는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면 할 이야기가 많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는 생각했다. 인간이 진정 영혼과 이성을 가진 지성의 존재라면, 시험과 관련해 그에게 걸맞은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를. 그때, 분명히 내 이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인간이 진정 인간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스스로 만든 시험만이라도 치르지 않고, 지구별의 모든 사람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지구촌 건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그리될 때, 인간은 그전까지 모르던 새로운 세상, 다른 차원에 올라선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아울러 믿어졌다.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모두가 인격적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내 마음이 그려낸 하나의 꿈,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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