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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로 실다 사제로 죽게 하소서

보니별 2017. 2. 25. 01:17




사제로 살다 사제로 죽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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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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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길수<br /><br />수필가<br /><br /> 
▲ 강길수 
 
수필가 
 
 

지인 부부의 자녀 삼남매 중 외아들이, 지난 주 대구 신학교에서 사제(司祭)로 서품(敍品)됐다. 신학교에 입학한지 십년 만에 새 신부(神父)가 된 것이다. 
 
사제수품(受品) 후 며칠 전, 그 첫 미사와 축하 행사가 이곳 성당에서 있었다. 우리 부부도 참석했다. 거룩한 미사를 마치고, 축하식이 열렸다. 인사말에서 갓 사제가 된 젊은 신부는 참석한 신자들에게 이렇게 부탁하며 말을 마쳤다. 
 
“교우 여러분, 제가 사제로 한평생을 살다가 사제로 죽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 눈시울이 저절로 뜨거워졌다. 분명 영광스럽고 감사하며, 축하하고 축하받으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날인데도 말이다.
 
우선, 외아들을 사제로 봉헌(奉獻)한 지인 부부의 지극한 믿음이, 바로 가슴에 전류처럼 찌르르 타고 흘렀다. 내가 새 사제의 아버지라면 외아들의 신학교 입학을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생을 하느님 뜻에 따르고 신자들을 양치기처럼 돌보며, 독신으로 살아내야 하는 사제의 인생길. 그 길이 얼마나 크고 진한 고난의 길, 희생의 길이 될 것인지….

또한, 젊은 사제의 말이 마치 내 아이들의 일이나, 우리 가족의 일, 나의 일, 아내의 일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것은, `자녀로서, 가족으로서,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한평생, 그리고 인간으로서 한평생 제대로 살다가 죽게 해 달라`는 기도 부탁과 같이 들리기도 했다. 내가 여태 아버지의 몫, 남편의 몫, 가장의 몫, 인간으로서의 몫을 제대로 하며 살았는지 되묻게 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자기 몫을 하도록 되어 있다. 사람의 자기 몫은 직분(職分)을 넘어서는 본질적 개념이기에 좋든, 싫든 걸어가야 할 길과 같은 것이리라. 시간이 보이지 않지만 흐르고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거부할 수 없이 한 존재로서 감당해야 하는 몫이기도 할 것이다.

젊은 사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남편과 아버지의 직분을 포기하고 사제의 직분을 선택했다. 사제직과 혼인한 셈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는 일생 독신으로 성직(聖職)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 길은 고독과 희생으로 점철된 봉사의 길, 모든 이를 품어야 하는 고통과 사랑의 길이 되어야 하리라. 

세상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속한다. 희생의 톱니로 맞물려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 너와 나는 희생이란 톱니로 서로 소통하고 하나 되어 세상공동체를 이룬다.

생명은 다른 생명들의 희생 위에 존재한다는 준엄한 사실…. 오늘 새 사제가 봉헌한 거룩한 첫 미사는 생명은 다른 생명의 희생의 대가로 산다는 소름 끼치는 사랑의 진실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삶의 `거룩함` 안에는, 다른 존재의 죽음이 뒤따르는 `잔인함`이 숨어있다는 진리가 눈물 되어 흘러내렸다.

자연의 아름다움도, 찬란함도, 화려함도 먹고 먹히는 잔인함과 거룩함이 함께 해야 가능하다는 신비 앞에 오늘 또 마주 섰다. 새 사제는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거룩한 사랑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는 마음을 다독였다. 삶은 죽음의 다른 모습이며, 죽음은 삶의 다른 모습이라고…. 그리고 기도하였다. 

`하느님, 새 사제가, 사제로 살다가 사제로 죽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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