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냉이 뜯기

보니별 2007. 1. 30. 00:14
 

                                                   냉이 뜯기

                                                                       강 길 수


 

  이월 마지막 토요일, 야외에 나갈 일이 생겨 아내와 함께 둥지를 나섰다. 돌아오는 길이다. 간선도로를 벗어나 소로를 천천히 달리며, 냉이가 있을 만한 곳을 아내와 나의 네 눈이 부지런히 찾는다. 오는 길에 냉이 뜯으러 가자고 아내와 약속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작은 실개천이 흐르는 양지바른 언덕, 자그마한 과수원 밭 부근에 차를 세웠다. 밭엔 제법 푸른 기가 보이고, 마침 사과나무들은 수종을 바꾸려는지 다 베어져 밑둥치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색다른 과수원풍경이다. 나무를 다 벤 밭이니 냉이를 뜯고, 또 밟고 다녀도 괜찮겠지 싶다. 우리는 그 곳으로 갔다.

  예감이 통했는지, 밭엔 한파의 피해를 스스로 치유하며 이제 막 봄기지개를 켜고 연록 빛을 띠기 시작하는 냉이가 많이 있다. 어린 쑥도 제법 있다. 우리는 동업자라도 된 듯, 부지런히 냉이를 뜯기 시작했다. 아내는 무딘 칼로 예전처럼 뜯었고, 나는 처음 모종삽을 사용했다. 냉이로부터 반 뼘 정도의 거리를 두고  땅을 모종삽으로 찔러 약간 위로 젖혀 퍼 올린 다음, 냉이만 골라 뽑아 뿌리에 붙은 흙을 잘 털어내면 된다. 전에는 무딘 칼이나, 도구가 없는 경우엔 손가락 굵기의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이용했었는데, 모종삽을 쓰니까 훨씬 뜯기가 쉬웠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레,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아내의 콧노래소리다. 이에 질세라 나는 일어서서 봄노래 한 소절 뽑는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펴….”

오가는 콧노래 소리에 냉이 뜯기는 더 신이 난다.

  밭이라 대체로 냉이는 뿌리가 깊어 ‘뜯기’보다는 ‘캐기’가 맞겠다 싶다. 아내는 무딘 칼을 쓰기에 쑥도 함께 뜯고 있다. 나는 어느 사과나무 밑둥치 앞에서 커다란 냉이를 한포기 만났다. 심 본 듯 반가워 더 크게 뱅 돌려 모종삽질을 해도 뿌리가 다 올라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손으로 당겨 올렸는데 아뿔싸, “뚝!”하고 소리가 나며 냉이 뿌리가 끊어졌다. 짧은 냉이들은 모두 잘 캐졌는데, 이번 것은 뜯어진 거다. 아까웠다. 그때 이런 의문이 퍼뜩 들었다.

  “우리 선인(先人)들은 왜 ‘나물을 뜯는다.’고 했을까? 냉이는 분명 뜯는 것 보다는 캐는 게 맞는 것 같은데?”하고…. 우리가 그들로부터 이어받아 쓰는 “나물 뜯다”는 말을 곱씹어 보았다. 나물들은 잎사귀와 줄기와 뿌리의 전부 또는 일부를 먹는다. 나물을 뜯고 뿌리를 남겨두면, 그 나물 포기는 다시 뿌리에서 싹이 나 자라난다. 그러면 또 다음에 사람은 나물을 또 뜯어먹고 살 수 있게 된다.

  이것이다! 선인들의 삶의 지혜가 바로 우리가 쓰는 말 속에 담겨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더불어 살아야 할 식구처럼 삼아 서로 나무며 살아간 그들…. 말 안에 살아있는 사람과 자연과의 공생의 원리. 오늘날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로하스’가 우리 말속에는 연연히 살아 있지 않은가. 우리 선인들은 말을 통해 자연을 사랑하고, 후손들을 훈육하며, 한 삶을 마치면 마침내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산 게 분명하다싶다. 앞으로 우리는 뿌리째 먹는 나물도 캐지 말고 뜯기로 하자고 아내에게 제안하기로 맘먹었다.

  십여 년 전부터 해마다 봄철이면, 우리 부부는 짬나는 주말이나 휴일을 야외에 나가 함께 보내곤 한다. 냉이 뜯기로부터 시작하여 쑥 뜯기, 씀바귀 뜯기, 돌나물 뜯기를 한다. 그뿐 아니라 돌미나리 베기, 산딸기 따기, 오디 따기, 계피 잎 따기 등의  나물을 뜯거나 열매를 따며 자연과 어울리며 일하는 기쁨도 누린다. 그럴 때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언제나 아내가 나보다 훨씬 많은 양의 성과를 올린다. 어떨 때는 두 배, 세배까지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나는 작업을 하다 말고 노루처럼 고개를 쳐들고, 더 좋은 것, 더 많은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그렇게 된다.

  “당신 믿고 농사짓다간 밥 빌어먹겠네!”

  “빌어먹는 게 어때서? 빌어먹지 않는 사람 있으면 어디 나와 보라지. 자기는 나올 때 가지고 왔는감?”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에구!”하는 대화들이 오가면 어느 새 돌아올 시간이 되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내가 쑥을 함께 뜯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모종삽으로 냉이를 뜯어서 그런지, 내 것이 더 많아 보였다.

  “오늘은 당신도 많이 뜯었네!”

  “어, 응. 나라고 맨 날 자네만 못할라고?”

  아내의 은근한 칭찬과 내 응답을 끝으로, 어언 두어 시간이 흘러간 냉이 뜯기를 마쳤다. 실개천에서 냉이를 씻었다. 돌아오는 차 안은, 살갗을 간질이는 이월 스무 여드레의 따사한 햇살 아래 풋풋한 냉이 냄새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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