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버팀나무

보니별 2007. 1. 1. 21:00
                                                         버팀나무

                                                                                            강길수(姜吉壽)

 

  자주 가는 인근 등산로의 비탈진 곳에 사람들이 잡고 오르내리는 소나무 한 그루가 산다. 많은 소나무 중에, 유독 그 소나무가 지난겨울부터 내 관심을 끌었다. 그 후 등산 갈 때마다 잡거나 쳐다보며 마음의 대화를 나누곤 하는 나무다. 지난겨울 그날은 눈(雪) 드문 우리 지방에 실로 오랜만에 간밤에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위험하다고 말리는 아내의 말을 뒤로한 채, 아이젠도 하지 않고 곧 벌어질 눈 나라 순례(巡禮)에 맘 설레며 둥지를 나섰다.

  그날 전까지는 일부러 소나무를 잡고 오르내리지 않았다. 이 정도의 비탈길에서 나무에 몸을 의지한다는 것이 싫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주로 소나무를 잡고 오르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소나무야, 너도 지질이도 기구한 팔자를 타고 태어났구나. 하필 그 자리에 있으니, 지나는 사람마다 너를 붙들고 당기거나 버텨서 네가 온전히 자랄 수가 없지. 이 불쌍한 소나무야!’하는 마음으로 지나치곤 했다.

  울창한 숲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수 없이 하얗게 피어난 눈꽃의 장관(壯觀)은 놀랍기만 하다. “뽀드득뽀드득…” 발밑에서 들리는 눈 밟히는 소리에다, 이따금씩 들리는 겨울새의 씩씩하고  경쾌한 노랫소리의 화음. 발바닥으로 솜처럼 포근하고 뿌듯하게 전해오는 눈의 감촉. 그리고 햇빛에 영롱하게 반사되며 온통 벌어지는 황홀한 빛의 파노로마! 만나는 사람마다 주고받는 반가운 인사. 가끔 미끄러질 때 소스라치듯 놀라며 느끼는 스릴과 환호. 넘어지면 그 순간 되레 어린시절 눈썰매 타던 시절로 확 되돌아가버리는 벅찬 행복…….

  어느 새 반환점을 밟고, 소나무가 사는 비탈진 곳까지 돌아왔다. 조심조심 조금씩 미끄러지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곳이어서 눈이 녹아 더 미끄럽다. 그때 발이 쫙 미끄러지며 소나무 곁에 금방이라도 넘어질듯 다다랐다. 본능적으로 소나무를 잡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내 몸무게의 밀침에도 끄떡도 않는다. 비로소 소나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가지 끝이 약간 살랑댈 뿐이다. 그 모습은 오히려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듯하다.

  사람들이 손잡는 부위는 껍질이 벗겨지지는 않았으나, 다른 곳 보다 얇게 닳아 빤질빤질하다. 주위의 소나무들은 굵기로 봐서 삼사십년 생은 족히 되어 보인다. 그러나 이 소나무는 굵기나 크기, 가짓수가 다른 나무의 절반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늦게 움터 자랐을 수도 있겠지만, 밑둥치로 봐서 환경의 영향으로 덜 자라보였다. 비탈져 메마른 곳에다,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뿌리부분이 길이 되며 흙이 없어져 한쪽은 푸석돌 바닥이 드러나 있다. 게다가 잡는 사람들의 몸무게를 무시로 지탱해낸다. 하지만, 소나무는 푸석돌에 단단히 뿌리박고 보기보다 훨씬 튼튼하게 서있다. 비록 가짓수는 적지만, 잎은 다른 나무보다 훨씬 더 푸르고 싱싱하다.

  소나무를 ‘버팀나무’라고 이름 짓기로 했다. 오르기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당길 때 버티어 주고, 내려가기 위험한 사람들이 잡을 때 또한 버티어 주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버팀나무가 되어 주었기에, 그 튼튼한 껍질이 저렇게 닳아 빤질빤질 얇아졌을까. 껍질을 다시 만져본다. 소나무의 고통이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듯 하다. 인도에서 평생 봉사하신 데레사 수녀님의 손도 이랬을까.

  문득, 고등학교시절 겨울방학 때 고향 산에서 나무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장작용 마른 통나무를 베어 지게에 잔뜩 지고, 비탈진 산길을 내려오다 힘이 부쳐 그만 넘어졌다. 통나무는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고, 지게는 저만치 나뒹굴었다. 간신히 옆에 섰던 소나무에 몸을 의지하여 크게 다칠 위기를 모면했었다. 그 때, 이미 나는 버팀나무의 득을 톡톡히 보았다. 아니, 기억을 못해서 그렇지 아장아장 걷던 유아시절부터 버팀나무의 도움을 많이 받았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버팀나무에게 ‘지질이도 기구한 팔자를 타고 태어났구나.’하고 생각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쳐다본 하늘에는, 하얀 눈을 이고 버팀나무가 살랑댄다.  무척 행복해 보인다.

  가끔 중증 노환(老患) 할아버지들을 목욕시켜드리러 가는 요양시설에서 만난 봉사자들의 행복한 얼굴도 떠올랐다. 중증 노환 노인들을 뒷바라지하는 그들은 하나같이 시설 이름 ‘햇빛마을’처럼 밝기만 하다. 분명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사서 하면서도 그들은 왜 기뻐할까. 나는 처음 그 목욕장에 갔을 때의 기억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노환으로 스러져가는 육신의 초췌한 모습, 기저귀에서 풍겨 나오는 대소변의 악취, 봉사자들에게 벗은 몸을 내맡긴 체 시신처럼 있는 무표정한 모습, 초점 잃은 동공……. ‘누가 인생을 아름답다 했나?’하는 질문이 울분처럼 북받쳐 올랐었다. 그리고 ‘내 뒤치다꺼리는 죽는 날 까지 스스로하게 하소서!’하는 기도가 절로 나왔던 쓰라린 기억이다. 그런데, 이 버팀나무가 그 곳 봉사자들처럼 생각되는 것은 나의 감상일까

  국가나 사회의 공인(公人)들도 생각해본다. 이 버팀나무처럼 그들이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민들이 힘들고, 어렵고, 위험할 때 언제나 손잡고 기댈 수 있도록, 이 ‘버팀나무’처럼 변함없이 제 자리에 서있는 일꾼…. 그런 정치인, 공직자, 리더들이 사는 나라가 그립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버팀나무 삼아 기대며 예까지 살아왔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버팀나무가 되어주었을까. 첫아들을 실패하고, 일본에 징용 갔던 아버님을 오년간 며느리보다 더 학수고대 하셨다는 할아버님과 할머님. 천신만고로 귀국한 아들이 삼년 만에 얻은 귀한 손자를 어미젖 먹일 때 말고는 빼앗다시피 하여 애지중지 괴이셨다는 할머님. 그분들이 내 유아기의 든든한 버팀나무셨으리라.

  유년시절 산과 들, 냇물에서 함께 놀며 자연을 배웠던 벗들과 학교, 군대, 직장, 사회에서 만났던 벗들도 귀한 버팀나무다. 선생님들, 상사들, 부하와 동료들, 고마운 분들 모두 버팀나무였다. 내가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사람들, 미워하고 원망했던 사람들, 공직자들, 국민들,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도 또한 버팀나무였다. 내가 먹고 마시는 음식물들, 동식물, 자연도 버팀나무다. 우리나라와 이웃나라, 지구촌,  달, 별, 태양, 우주, 신들, 창조주 등 모든 삼라만상의 존재들 또한 버팀나무다.

  한솥밥을 먹으며 자란 동기들과 친지들도 빼놓을 수 없는 버팀나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버팀나무는 나를 낳아주고, 먹여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이셨다. 홍시를 많이 먹어 배변을 못해 다 죽게 된 아기를, 새벽에 업고 이십 리 길 의원에 달려가 살려내신 어머님. 중학교 이학년 때, 무엇을 잘못 먹고 달포를 앓아누워 있는 아들을 잃을 까봐 백방으로 다니며 애쓰시던 아버님. 두 분 다 돌아가셨기에 이젠 가장 큰 그리움의 버팀나무가 되셨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부모님과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은 버팀나무가 되지 못하였다. 동기와 친지들에게도, 친구와 지인들에게도 별반 버팀나무가 되지 못했다. 오랜 세월 직장생활을 하며 ‘책임완수’에만 매달렸지, ‘버팀나무’란 사실을 의식하며 살아내지 못했다. 그저 언제나 미지근한 삶을 살아왔을 뿐이다. 태어난 자리에서 자기도 모르게 ‘버팀나무’가 되어서 비록 작아 보이지만, 더욱 푸르고 단단해진 이 소나무 앞에서 진정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는 ‘버팀나무’를 두 손으로 꼭 잡고 서서, 짙푸르고 하얀 솔잎눈꽃위로 코발트보다 파란 겨울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짐한다.

  “비록 늦었지만, 앞으로는 너를 본 받아 살아내련다. 버팀나무야!” 하고.

버팀나무에게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전 여기서 사는 게 행복해요. ‘버팀나무’란 좋은 몫을 차지하고 살아내는 걸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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