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들국화

보니별 2006. 12. 4. 00:07
 

                                        들국화


                                                                                             강길수(姜吉壽)


 토요일 오후, ‘햇빛마을 봉사자 피정(避靜)’1)에 가기위해 집을 나섰다. 오천에서 갈평으로 가는 길로 차가 들어섰을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풍광이 좋아 자주 찾던 곳이다. 가을이 오고 나서는 그날 처음 갔는데, 그러지 않아도 아름다운 길섶에 내가 좋아하는 들국화가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던 것이다.

 들국화에 내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불혹의 중반 때쯤으로 기억된다. 작은 공장의 책임자로 일하던 나는 어느 오월 말경, 대문 옆 얼마 되지 않는 잡초사이에서 예쁘게 핀 들국화 세 송이를 발견하였다.

 “어? 이런 곳에 웬 들국화가? 그리고, 늦봄에 핀 들국화?”

하고 중얼거리며 들국화 앞에 앉아 유심히 바라보았다. 대문 옆이라 낫으로 웃자란 풀을 베거나, 어떤 직원은 아예 뽑아 버리거나 하면서 지내던 터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철 이른 작고 약한 들국화가 용케도 화를 면하고, 그리도 예쁘게 피어있는 것이 참 경이로웠다.

 그날 후로 나는 직원들에게 대문 옆의 잡초는 뽑지 말라고 이르고, 그 곳은 내가 직접 잡초를 베겠노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나의 들국화에 대한 관심은 시작 되었다. 몇 번 서점에 들러 식물도감을 찾아보고 이름, 서식지, 특징 등을 조사하기도 하였다. 결과, '구절초' 쑥부쟁이', '산국', '해국', '야국', 등 여러 이름이 있음을 알았고, '들국화'는 야생하는 국화를 총칭하는 이름인 것도 알았다. 아울러 내가 좋아하는 들국화는 바로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말하는 것임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들국화'가 더 정겨워 그대로 쓰기로 하였다.

 지난 주말에 아버님 제사 모시러 고향에 다녀왔다. 가을 길 가엔 코스모스를 비롯하여, 이름모르는 가을꽃들이 나를 얼마나 반갑게 맞이해 주었던지.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반갑게 맞이한 것은 단연 들국화였다. 내 사춘기의 삶이 서린 고향 넘어가는 작은 고갯길 '칠메기'. 그 길섶 군데군데 무리 무리지어 참도 예쁘게 피어난 들국화의 청초한 모습! 연한 보랏빛 꽃잎을 살랑살랑 흔들며 손짓하는 들국화는 문득, 옛날 까까머리로 자전거 통학하던 중학교 시절로 되돌아가게 하였다. 길이 포장 되질 않아 자동차 한대 겨우 다닐 수 있던 이 고갯길을 가을엔 자전거를 끌거나 타며 들국화를 벗 삼아 넘곤 하였다.

 어느 가을날, 시민 운동회에 참석하고 혼자서 돌아오는 고갯길은 땅거미가 완전히 내렸고, 달도 없는 터라 상당히 어두웠다. 무서워 두려운 마음과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한 손엔 성냥 한 갑을 든 체, 자전거를 끌고 고갯길을 재빨리 오르고 있었다. 고갯마루 부근에 다다랐을 때, 저 쪽에서 무엇인가 희끄무레한 것이 움직이고 있는 듯 하였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겁이 났다. 잠시 심호흡을 가다듬고 용기를 내어 나는 그 앞으로 걸어갔다. 무엇인지 확인 않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것은 활짝 핀 들국화였다. 어찌나 얄밉고도 반가웠던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고갯길을 후다닥 올라, 단숨에 집에까지 내 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어찌하여 그런 용기가 났던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고향 고갯길의 들국화는 잠시 나를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까까머리 때의 들국화 사건이 생각나면 빙긋이 웃는다. 기실 공장 정문 옆의 들국화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중학교 일학년 때의 기억도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터이고, 나의 들국화 사랑은 싹트지 않았을 것이다.

 그해 봄에 시작된 들국화에 대한 나의 관심은 계속되었다. 잡초들이 자라 낫으로 벨 때면 나는 들국화 나무들은 그대로 두었다. 시간이 갈수록 들국화는 가지가 생기고, 튼튼해지며 더 큰 나무로 변해갔다. 놀랍게도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비록 많은 수는 아닐지언정 그 여름과 가을은 물론, 무서리가 내리는 이른 겨울까지 줄기차게 꽃을 피웠다.

 이미 다른 풀들이 기력을 잃고 말라서 바삭거리며 생을 다 한 초겨울 아침. 무서리를 맞으며 청초하게 피어있는 들국화…. '어찌 저 자태에 미당의 국화를 비길쏜가? '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화가 아무리 화려한들 사람 손에 가꾸어진 것이고, 사람에 의해 보호받는 꽃이 아닌가. 그러니, 그 아름다움엔 사람의 그림자가 숨어있지 않겠는가. 또한, 국화의 인고가 어찌 저 들국화의 오랜 인고에 비길 수 있으랴. 더구나 국화에 어찌 무서리 맞으며 인고로 정화된 저 들국화 같은 절제와 질서의 아름다움과 청초한 지성미(知性美)가 서려있겠는가!

 약간은 앙상해 보이는 가지이지만 잎들은 각각 독립해 있어 더욱 지조 있어 보인다. 가지를 따라 오르다 보면, 줄기와 가지들이 마치도 거의 나무처럼 단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보라색 꽃잎들은 서로 독립해 있으면서도 가지런히 각각 제 자리에 있어, 절제와 질서, 그리고 지성의 청초한 아름다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국화를 들국화에 비한다면 화려한 아름다움이 있기는 하지만, 꽃잎들은 확실히 더 무질서하다. 들국화는 크기와 자란 곳, 땅의 비옥함에 따라 대략 스무 개 내지 마흔 개 정도의 연보라색 꽃잎들이 가지런히 깔끔하게 배열되어 피어나있다. 질서와 절제가 조화를 이룬 들국화 꽃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해맑은 지성(知性)의 아름다움이 안으로부터 배어나오고 있는 어느 청초한 여인의 자태를 느끼게 된다. 어쩌다가 가지런한 꽃잎이 두 개씩 겹친 것은, 여인이 웃을 때 드러나 더 예뻐 보이는 덧니를 연상케 한다.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은 꽃, 화려하진 않더라도 절제와 질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꽃. 봄날의 따사로움과 화려함, 여름날의 싱그러움과 생명력, 가을의 풍요와 고독, 그리고 겨울의 적막함과 소망을 모두 갖춘 청초한 지성의 꽃, 들국화….

 꽃이 지고나면 들국화는 한 생을 결산하는 홀씨를 맺는다. 새로운 삶, 새로운 꿈을 펼칠 새 세상을 향하여 날아가려고, 홀씨는 작은 날개를 펴 서로 보듬고 서서 바람을 기다린다. 보송보송한 짧고 보드라운 깃털을 매단 홀씨, 홀씨 송이는 막 유년기를 벗어난 소녀처럼 모습이 앳되다. 볼을 부비고 싶을 만큼 앙증스럽게 바람을 유혹하는 그 모습엔 나도 도리 없이 유혹당하고 만다. 씨앗 여문 들국화의 홀씨송이는 한 생의 꿈을 머금은 또 다른 들국화의 모습이다.

 서리 내린 초겨울 낮에 들국화의 작은 씨앗을 받으며 나는 희망과 용기와 기쁨을 맛본다. 씨앗에 설계되어 있을 들국화의 새로운 삶과 꿈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생명의 어머니 새 대지를 만나면, 들국화는 다시 그 절제와 질서의 꽃, 해맑은 지성의 꽃을 피울 것이다. 그리하여 알아볼 수 있는 이들에게 절제와 질서와 지성의 미를 청초하게 선물할 것이다.

 나는 그 씨앗을 받아 봉투에 넣고, 받은 날자와 장소 등을 써 가방에 넣어 두었다. 어느 훗날, 내가 좋아하는 바닷가나 자연 속에 내 작은 둥지를 틀게 되면, 그 곳에 심기 위해서다. 그렇게 들국화 씨앗을 받는 것이 벌써 몇 해가 흘렀다. 지금도 옛 출퇴근용 가방에는 삼년 전, 혹은 이년 전, 근무하던 직장의 대문 옆에서 받은 들국화 씨앗이 새 대지에서 움틀 날을 꿈꾸며 들어있다.

 어느 훗날, 나의 들국화 사랑이 꽃피울 그 날을 위해서…….


 

1)피정(避靜):세상의 시끄러움을 떠나서 고요하게 기도하며 영성 수련을 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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