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편지 가람

변해가는 고향...

보니별 2006. 11. 6. 21:52
 
      나 젊었을적 보다 많이 달라져가고 있는 고향에서 한가위 제사와 성묘를 마치고 돌아왔어. 맘에 들지 않는 고향의 변모... 금오산을 관통한 고속철은 '오봉리' 산골의 최상류를 가로지르고, 한창 공사 중인 현풍 - 여주간의 고속도로는 윗마을 '삼가'의 목들미를 질러 간다. 고속철은 잠시 소리가 날 뿐이지만,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24시간을 신경 거슬리는 자동차들의 질주 소리에 시달릴 것이 뻔해 보이는 고향의 대표적 변모였어. 게다가 들리는 소문으로는 혁신도시가 오면 '모텔'이니 '팬션'이니 하는 것들이 들어설지도 모르는 그런 변화. 하지만, 주민들은 내 맘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경제적 이득 앞에 인간은 목숨을 거는 법이므로. 그래. 동기간처럼, 불알(미안)친구처럼 펀하게 하렴. 우린 이세상에서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사이이기에 더 편하고, 그 누구에게도 발설 할 수 없는 얘기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소울메이트'라면 어떨지... 막내 아들과 참 오붓한 시간이었네. 거금이 아니라 돈으로 계산 못할 정이, 사랑이 쌓였을 거야. 그치? 부디 '다음 이벤트'에 장원급제 하시어 사랑스런 아들 휴가 얻어내시구랴. 내는 그렇게 믿는다오. 뭐라구라? '맞짱' 뜨고싶다구라? 좋지우. 언제라도... 근데, 종목은 뭔디유ㅠㅠ? ㅋㅋ 그래. 우리가 믿는 신앙의 대상이 존재하건 아니건, 내용이 이성적이든 아니든, 신앙은 믿는 그 자체로서 우리 인간의 생존에, 정체성확립에 가히 절대적임을 인정해. 그러나 맹목적인 신앙이 이웃과 사회에해를 끼치게 될 경우에는 달리 생각해야 한다고 보아. 인간의 지능과 학문, 지성은 그런 맹신은 신앙이 아님을 알아냈고, 오늘날 기존의 신앙들은 그 근본부터 존재론적인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 같애. 그래서 나는 헷갈리며 살기로 했어. 그 것이 자신에게 정직한 것이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어린이'처럼 될 것을 요구 하셨고, 어린이는 정직한 것이 그 첫번째 모습이라고 믿어. 정직하고 단순한 사람! 그 것이 내가 도달하고 싶은 사람, 바로 산상수훈의 첫 귀절인 '마음 가난한 사람'이러고 믿는다. 그대는 신앙 안에서 분명 부활할거야. 사랑에 목마르고 헌신하니까. 그렇지?! 우리 성숙된 신앙을 향해 함께 나아가자. 언제나 사랑에 사는 어린이가 되어보자. 오후엔 양학산에 갈거야. 그럼, 아듀! 시월 초이래. - 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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