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파트촌 풍경
강 길 수
그대...
오늘 낮엔 아파트촌에 위치한 '장성 초등학교'에
납품을 갔다가, 간 김에 인근 학교에
새로 작성한 영업안내와 견적을 전해주러 갔었지요.
아파트 사이사이에 조성된 공원식 녹지를
걸어 지나면서 본 시월 초여드렛날 한낮의
'장성' 아파트촌 풍경은 이러했다오.
초등학교 뒷 켠에 있는 어린이 집에선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무슨 발표회나 운동회라도
하려는 듯, 금색 치장을 한 옷을 입고 흥겨운
율동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었구요.
학교옆 계단과 경사길이 이어진 작은 길 한 켠엔,
일흔쯤 되어버이는 노 부부가 무슨 악세사리 판매대를
설치해 놓고 물건을 팔고 있었다오.
좌판대 위에 있는 물건들이랑 옷 입은 매무새가 젊은 이의
그 것 보다 깔금하여 보는이의 기분이 좋았어요.
나는 저분들이 생활고가 아닌 시간 소일거리로 저렇게
사이좋게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오.
담장 너머 초등학교 건물 옆 보도블록 깔린 피구장엔,
스무명이 조금넘어 보이는 여학생들이 한 여선생님의
갑독하에 어눌한 동작들로 피구 놀이를 하고 있길레,
잠시 숨을 돌리며 자라는 우리의 새싹들을 지켜 보았지요.
어린이 집 옆에 있는 테니스장엔 팔자 좋은(?)
삼, 사십대로 보이는 칠 팔명의 남녀 혼성 팀들이,
맑은 하늘아래 상쾌한 갈바람을 맞으며
테니스 게임을 하거나, 레슨을 받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옆 조그만 마당 가 그늘에 있는 벤치엔
초로의 한 남자가 긴 작대기를 옆에 둔 채
길게 누워 있었지요.
생을 관조하는지, 어제 밤 못잔 잠을 자는지,
아니면 아직도 술에 찌들어 몸을 못가누는지,
그 것도 아니면 세상에 대고 욕을하며 원망하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오.
저 위로 보이는 단지내 길엔 이따금 자동차가
지나가고, 사람들도 지나가고, 어린이집에서
들리는 큰 음악소리에, 아이들의 웃는소리와
재잘거리는 소리, 테니스 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벤치에 길게 누운 초로의 남자가
시월 초여드레 한 낮의 따사한 햇볕아래,
한 폭 정물화처럼 내 마음에 비쳐졌다오.
그대...
올 가을은 내가 미처 알아채리기도 전에
이렇게 깊게 와 있더이다.
은행나무 가로수 잎새들이 노랑빛으로 은은히
물들기 시작하고, 저 편 산에도 간간히
가을 단풍이 보인다오.
아침 저녁은 물론, 낮에도 그늘에선 소슬바람의
찬 기운이 문득 문득 옷깃을 스치구요.
머지않아 낙엽은 흩날리고, 황금빛 들녘은
황량하게 텅 빈 곳으로 변하며,
가지들은 앙상하게 북서풍을 맞을테지요?
그리고는, 겨울이 우리를 애워쌀 것이구요.
그대...
또, 그리고는
이 아파트 촌에도
이윽고 산너머 남촌에서
새 남풍이 불어 오고야 말겠지요...?
2003.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