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논술문 들녘

현대 한국사회의 종교적 특징과 희망

보니별 2006. 10. 1. 00:18

[논객 506 논술문]


                     현대 한국사회의 종교적 특징과 희망


                                                                강 길 수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은 종교를 필요로 하는가? 종교는 왜 여러 가지가 있는가? 등 종교에 대한 물음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속 시원한 대답을 모르는 체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현대 한국사회에는 ‘종교 백화점’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여러 종교들이 함께하고 있다. 거리를 가다보면 많은 교회당은 물론, 성당, 사찰, 집회소, 철학관들을 만날 수 있다. 이 것은 한국사회가 다 종교를 포용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한국사회는 어떻게 많은 종교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그러면 종교란 무엇이며, 왜 생긴 것일까? 백과사전에 따르면 '종교는 초월적 절대자 또는 신성시하는 대상을 경외(敬畏)하는 신념체계를 기반으로 하여, 신앙(信仰)·기원(祈願)·예배(禮拜)의 행위로써 구제·축복·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현상의 하나'이다.(1) 다시 말하면, 종교는 기본적으로 ‘절대신념체계(absolute belief-system)’이며 ‘궁극적 가치체계(ultimate value-system)’를 갖고 있다. 종교는 인간의 ‘사회 전 영역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 궁극적 가치체계’로서 신앙의 대상, 신념체계, 종교집단의 세 구성요소를 갖추고 교리와 의례, 집회와 활동을 하는 문화현상이다. 또한 종교는 인간이 현실 세계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서 생기는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는 기능을 가지므로, 모든 민족과 문화에서 볼 수 있으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1999년의 우리나라의 종교인구 비율은 53.6%이고, 종교인구 중에서 각 종교가 차지하는 인구 비는 불교 49.0%, 기독교 34.7%, 천주교 13.0%, 유교 1.2%, 원불교 0.4%, 천도교 0.1%, 기타 1.5%이다. 이 조사는 자기 확인 방법에 의한 통계라고 한다. 통계수치를 보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종교를 가졌고, 그 중에서도 세계종교인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종교적 특징은 세계 4대 고전문화권으로부터 전해진 모든 종교가 한국문화 속에 들어와 공존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것은 첫째, 중국 고전문화권으로부터 유교가, 둘째, 인도 고전문화권으로부터 불교가, 셋째, 유일신관의 고전문화권으로부터 기독교가 전래되었고, 넷째, 그리스, 로마의 인본주의 고전문화 전통을 말한다.  이 문화전통들은 오랜 동안 한국문화에 중첩되면서 한국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사회는 다 종교상황(multi-religious situation)하에 있는 것이다. 

 다종교상황이란 절대 신념체계가 한 사회 안에 여럿이 공존한다는 의미이다.  비합리적이며 역설적인 상황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절대 신념체계’란 자기의 신념만이‘절대적’인 것이므로, 다른 신념체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문제에서 보듯이 수천 년에 걸친 이스라엘과 아랍의 종교와 연관된 갈등은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 외에도 세계사적으로 많은 전쟁과 갈등들이, 자기와 다른 종교적 절대 신념체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했던 사례들이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자신 이외의 어떤 것도 그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합리적이며 역설적인 다 종교현상이 한국사회에서는 별 마찰 없이 일어나고 있다. 본격적인 다종교상황이 반세기를 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심각한 종교 간의 대립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다 종교상황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현상이라고 연구자들은 말하고 있다. 즉, 한국사회는 세계 4대 고전문화 전통을 배경으로 하는 서로 다른 종교가 상호 큰 마찰 없이 한 사회에서 공존하고 있는 특이한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종교인은 신앙과 생활이 유리되었거나 아니면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것일까?

 한국사회의 다 종교현상을 거꾸로 해석하면 한국사회에서는 어떤 특정 종교의 ‘절대 신념체계’도 그 절대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다른 종교의 상대적 가치만 인정할 뿐이다.  종교가 개인의 내면세계뿐 아니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우리 사회에는 모든 구성원들의 행동을 지배할 수 있는 지배적인 가치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국의 다종교상황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주도적 가치관이 없음을 말해준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 종교 현상을 연구하는 어떤 연구자는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정리 하고 있다. ‘한국 종교인은 윤리관은 유교적이고, 인생관은 불교적이며, 행동절학은 기독교적이고, 숙명관은 무속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사회가 ‘개방적 다원주의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2)

 그러나 한국사회의 다종교상황의 근원적 이유가 이 연구자의  현상(現像)적인 추론으로 충분히 설명되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역설적이며 비합리적인 다 종교상황에서도 종교 간의 관계에 관한한 큰 문제없이 반세기의 현대사를 이어왔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는 삼국시대까지 그 연원을 소급할 수도 있다. 한국사회의 종교적 자유는 거의 완벽하다. 이것은 국가가 나서서 지켜주는 것이라기보다, 사회의 불문률이며 관습이자 전통이 되었다. 즉, 오늘날과 같은 다 종교 한국사회의 형성에는 보다 근원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것은 바로 우리의 민족문화 안에 형성된 고유한 민족성에 있다고 보아야 타당하다.

 우리 민족의 근원 설화인 ‘단군신화’를 보자. 환인천제(桓因天帝)가 널리 인간 세상에 이익을 끼칠 만한 곳에 아들 웅(雄)을 보내 다스리다가, 웅녀(熊女)와 결혼하고 단군왕검(檀君王儉)을 낳았다는 것이 그 내용의 요지이다. 이는 역사적이나 문화적, 기타 여러 측면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종교적 관점에서는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즉, ‘웅’은 하늘의 상징 곧, 계시(啓示)종교적 절대 신념이며, ‘웅녀’는 땅 의 상징으로 자연(自然)종교적 절대 신념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성은 선천적으로 모든 종교에 대하여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종교뿐 아니라, 다른 문명과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며, 모든 것에 유연성(flexible) 있는 민족성을 역사를 통해 발휘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이 가진 고유한 근원적 개방성(openness)과 유연성(flexibility)이다.

 이 개방성과 유연성은 농경사회나 산업사회까지는 한편으로 가족주의, 이기주의, 기회주의 등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을 유발한 것도 사실이지만, 주된 흐름은 창의성과 능동성, 끈기와 정통성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더욱이 ‘제 3의 물결’이라 불리는 현대 지식정보화 사회에 있어서는 무한한 가능성이자 희망의 원동력이 된다. 학문과 예술, 특히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가 사는 환경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기존 가치관을 허물어 버리거나 허물어가고 있다. 종교와 철학을 포함하는 정신세계는 물론, 우주를 포함한 자연 공간과 물질, 그리고 생명에 이르기까지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이 현재까지의 결론이다. 지구촌이 21세기를 맞으며 20세기가 남긴 문화사적 유산은 ‘불확실성의 원리’로 대표되는 문화, 바로 <불확실성의 문화>이다. 종교도 이 <불확실성의 문화>에서 예외일수는 없다. 물론, 이 결론은 인간의 지혜와 과학기술이 더 발달하면 달라질 수도 있다.

 21세기 인류의 과제는 이러한 불확실성 문화에 도전하여 새로운 확실성의 문화를 여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우리 민족이 천부적으로 가진 자산, 바로 개방성과 유연성의 힘과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종교 현상으로 나타난 다종교 상황은 바로 21세기 우리 민족의 가능성과 희망을 제시해주는 증거이며, 그 청신호이다. 그러므로 황우석교수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21세기는 바로 배달겨레 우리 민족에겐 가능성과 희망의 세기인 것이다.




[주]

(1) 인터넷 검색, ‘종교’,  다음 백과사전, 2005. 6. 4. 

(2) 윤이흠, 한국 사회문제, p. 407-430 한국방송대 출판부, 20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