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1-3 일동’ 감사 연꽃

보니별 2023. 9. 11. 21:00

 

 

책상 위 컴퓨터 모니터 곁에 연꽃 한 송이가 있다. ‘1-3 일동감사 연꽃이다. 아까워 못 마시는 작은 혼합 음료병이 변신한 연꽃이다. 벌서 3주가 지났다. 연꽃엔 명함보다 조금 큰 종이쪽지가 붙었다. 쪽지에는 이런 글귀가 쓰였다.

 

 

항상 저희를 위해 힘써주셔서 감사합니다1-3 일동

 

 

큰 글씨 세 줄로 쓴 감사 글 아래 왼쪽 공간에, 분홍 하트 눈을 가진 토끼를 그렸다. 토끼 왼쪽과 오른쪽에 위아래로 분홍 하트가 각각 두 개씩 그려져 있다. 그 오른쪽엔 1학년 3반 일동 표시 글을 써넣어 균형을 맞추었다. 그러니까, 쪽지에는 모두 7개의 하트가 있다. 사랑과 행운의 하트가 틀림없으리라.

 

8월 중순 금요일, 흐리고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이었다. 이웃 시 S 여고에서 일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마칠 시간이 가까워 교사(校舍) 입구에 놓은 시료 채취기 앞에서 기다렸다. 안에서 여학생 네댓 명이 나오더니, 내게 쪽지를 붙인 혼합 음료 두세 병을 내밀며 말했다. “, 이것 좀 받아 주실 수 있으세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엉거주춤, 한 병을 받으며 말했다. “. 한 병이면 돼. 고마워!” 교내 종교모임 학생들인가보다 여기며, 붙은 쪽지의 글은 읽지도 않고 음료병을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학생들은 내게 해맑은 웃음을 덤으로 선물하고 교실로 들어갔다. 시간이 되어 시료 채취기를 철거했다. 빨리 가고픈 마음에, 음료는 꺼내 보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와 조끼 주머니에서 음료병을 꺼냈다. 비로소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그래. 세상은 역시 살만한 거야!”하고 속말이 튀어나왔다. 쪽지는 종교모임 학생들이 쓴 게 아니라, 1학년 3‘Z세대들이 쓴 것이었으니까. 더운 여름날 교내에서 일하는 이들을 어린 딸들이 분별(分別)하고, 뜻을 모아 감사의 마음도 함께 담아준 음료병. 아까워 음료를 마실 수가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분별을 안 하거나, 못하는 사람들이 휘젓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정치, 행정, 사법, 언론, 학계, 종교계 등 사회 대부분 분야가 분별력을 잃고 좌충우돌한다. 때문에, 묻지 마 강력범죄가 퍼지지 않겠는가. 한데, 이 학교 1-3 어린 학생들은 어찌하여 근로자를 분별(分別)하고 감사하게 되었을까. 지금 고1이면 거의 홑 자녀일 테고, 동기간(同氣間)이 있어도 두셋일 것이다. 그러니, 이 고운 딸들이 그저 예쁘고 기특하기만 하다.

 

S 여고 1-3반 학생들의 분별력이 감사로 태어나, 내게 다가온 날. ‘디지털 원주민으로도 불리는 ‘Z세대1 소녀들. 그들은 내 마음에 ‘1-3 일동 감사 연꽃으로 피어났다. 양심 저버리고 분별력 잃은 기성세대의 검은 마음. 그 검은 마음에 1-3 일동 감사 연꽃 씨앗이 뿌려져, ‘분별의 연꽃으로 활짝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불의와 부정, 조작과 선동을 몰아내고, 진실과 정의와 사랑이 도도히 흐르는 분별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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