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2023.08.07 16:30 게재일 2023.08.08
가끔 탈북민의 유튜버를 본다. 몰랐던 북한의 실상과 문제들을 듣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족이면서 해방 후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 한국과는 매우 다른 1인 독재 체제를 3대째 왕조같이 이어오는 북한이다. 또, 핵무장을 완성했다며 우리와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니 국민으로서 북한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유튜버가 생기기 전에는, 이따금 언론에 보도되던 북한과 탈북민들에 관한 소식을 단편적으로 알고 지냈다. 한데, 지금은 유튜버를 통해 여러 정보를 알 수 있는 세상이다. 북한 정보도 예외는 아니다. 상당히 심층적인 내용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탈북민 유튜버 방송을 보면서 한 번도 자신이나 탈북민들을 ‘북한 이탈주민’이라고 소개하거나 말한 것을 본 적이 없다.
한국 정부는 1997년 1월 13일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동년 7월 14일 시행했다. 그전에는 「귀순 북한 동포 보호법」이 시행되고 있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재 시행하는 법률의 명칭에서 ‘북한 이탈주민’ 부분이다. 그중 거부감 드는 단어는 바로, ‘이탈(離脫)’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탈’의 뜻을, ‘어떤 범위나 대열 따위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떨어져 나감.’이라 풀이한다. 문제는, ‘이탈’이 범위나 대열 등에서 이상 있는 무엇이 떨어지는 현상으로 이해된다는 점이다. ‘대열 이탈’이나 ‘궤도이탈’처럼 일상에서 쓰는 ‘이탈’의 어감도, 이탈 주체가 뭔가 비정상이란 느낌이 든다. 즉, ‘북한 이탈주민’이란 표현은 자칫 탈북민의 자주성과 진정성을 저해하고, 북한 체제를 인정 두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한 웹사이트의 자료에 따르면, 탈북민의 명칭은 1993년 이전에는 ‘귀순자, 귀순 용사’로 썼고, 1994년~1996년은 ‘탈북자, 귀순 북한 동포’로 썼었다. 또, 1997년~2004년은 ‘탈북자, 북한 이탈주민’으로, 2005년~2008년은 ‘새터민, 북한 이탈주민’을 썼으며, 2008년 이후는 ‘탈북자, 북한 이탈주민’을 쓰고 있다고 한다.
19세기 프랑스의 작가 플프로베르는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주장했다. 우리나라 이태준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이는 글을 쓰는 데는 단 하나의 적확(的確)한 말을 골라 써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요구는 문학작품뿐 아니라 법률, 논문, 보고서 등 모든 글쓰기에도 적용된다고 본다. 더욱이 나라의 문서는 내용에 꼭 맞는 말을 써야 함은 자명하다.
탈북민들은 ‘북한 이탈주민’이라는 말을 꺼리는 듯하다. 국민인 나도 이 말은 정상적인 북한 체제를, 탈북민이 문제가 있어서 떠난 것처럼 볼 수 있는 표현이라는 느낌이 든다. 문민정부 때, 입법자들이 이 점을 깊이 따져 보았는지 알 수 없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탈북민에 대한 용어는 자유 없는 북한독재체제의 억압과 공포, 가난에서 목숨 걸고 탈출한 ‘탈북민 주체의 관점’에서 써야 함은 마땅하고 옳다.
지금부터라도 입법부와 행정부는 탈북민에 대한 공적인 용어 선택에 신중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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