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2023.06.22 17:35 게재일 2023.06.23
유월 한가운데다. 정수리에 내려꽂히는 햇빛이 따갑다. 예전엔, 지금쯤 한창 필 장미꽃은 다 졌다. 늦둥이로 피어난 작은 장미꽃 한 송이가 외로울 뿐이다.
올 유월을 맞으며 든 생각은 바로, ‘자유와 민주’였다. 우리나라가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도 안 될 역사가 숨 쉬는 달이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25일, 우리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6.25 동족상잔이 벌어진 유월’이다. 하여, 1963년 ‘호국보훈의 달’로 유월이 지정되었을 터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 달이며, 1987년 6월 항쟁을 품은 달이기도 하다.
자유와 민주를 지켜내기 위해 분연히 목숨 바쳤던 선열들과 함께 가는 공동체 대한민국호 열차가, 유월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문득 바라본 차창 밖 마음의 모니터엔 홀연, ‘한국적 민주주의’란 글이 나부낀다. 웬일일까. 내 무의식은 왜, 유월 한가운데에 ‘한국적 민주주의’를 소환했을까.
‘한국적 민주주의’란 말이 많이 쓰인 것은, 1972년 제4공화국 유신체제 출범 전후였다. 유신의 당위성을 함축한 이 말이, 올 호국보훈의 달에 가슴을 물들인다. 작금의 우리 사회상이, 10월 유신 같은 개혁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잠재의식의 외침인가. 입으론 국민을 팔며, 제 속 채우기에 급급한 거대 야당의 입법 독재 행태가 바로, 한국적 민주주의를 잘못 커닝이라도 한 것일까.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일찍이 링컨 미국 대통령이 말했듯, 주권자가 국민이고, 국민이 뽑은 공직자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제도가 아닌가. 그렇다면 대통령 이하 선출, 비선출직 모든 공직자는 오직 국민과 나라를 위해 봉사할 천부적 사명이 주어진다. 만일 공직자가 사적인 것과 반국가적 일을 탐한다면, 그 자체가 죄다.
나는 유신체제 때 취업, 결혼하여 셋방살이 새 가정을 꾸렸다. 제철소 기능직 사원으로 시작한 직장생활은, 주경야독하면서도 즐겁고 희망찼다. 기간직 앞에서 가끔 주눅 들기도 했지만, 급여나 분위기가 그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도, 귀족노조도 없었다. 솔직히, 산업 근로자와 서민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았다. 가장의 홑벌이로 아이 둘 키우며, 살림 살고 저축도 할 수 있었다. 독재니, 비민주니 떠드는 것은 정치꾼들의 선동이었다.
산업화 시대, 민주화 시대, 정보화 시대, 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아온 산업 근로자 소시민으로서, 유월은 명경대(明鏡臺) 앞에 선 마음이다. 기꺼이 젊음을 바쳤던 유신 시대와 80년대가, 지금보다 훨씬 더 진실한 민주화 시대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때 정치인들은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했으니까.
‘정치인의 자유가 곧, 민주화’라는 정치권의 괴상한 등식…. 하지만, 그 안엔 국민이 없다. 정치꾼들은 언론, 법조, 교육, 종교, 선관위, 여론조사 등 많은 부문과 야합했다. 이를 선동, 조작, 억지 주장의 도구로 삼아 국민을 호도, 지배하고 나라를 구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저들의 속셈을 침묵하는 다수 국민은 다 안다.
‘주권자 국민이 눈 부릅뜨고, 망보아야 할 세태’가 유월 한가운데가 주는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