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2023.06.08 17:57 게재일 2023.06.09
장미 아가씨들이, 펜스 담장 바깥으로 일제히 고개를 내밀고 웃기 시작했다. 방송국 주물 펜스형 담장이다. 오월 중순이 되자, 해맑은 장미 웃음이 절정이다.
출근 때 보다, 퇴근 때가 장미 웃음이 더 예쁘고 많다. 왠지, 동남쪽으로 더 많이 얼굴을 내밀고 웃기 때문이다. 며칠간은 풋풋한 고운 장미 얼굴에 취해 오갔다. 어느 날 퇴근길에, ‘꼭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북한 응원단 아가씨들 같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마, 부산 아시안게임 때였지 싶다.
담장 바깥으로 하나같이 얼굴을 내밀고, 활짝 웃는 장미꽃들과 북한 여자응원단의 어디가 닮아 그런 생각이 났을까. 아름다워서? 여럿이 몰려 있어서? 전체 모습이 닮아서? 일사불란해서? 요정처럼 나타나서? 대체 무엇 때문일까…? 당시 북한 응원단은, ’미녀 응원단‘이란 별명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여, 마음에 남았다가 장미 웃음에 되살아났으리라.
따져본다. 사람과 차량이 많이 다니는 정문 앞 큰 도로는 방송국의 북쪽이다. 장미가 저절로 북쪽으로 꽃이 더 많이 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식물은 햇빛 쪽으로 더 자라지 않는가. 하면, 인위적 무엇이 작용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연구자처럼 장미꽃과 가지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역시 그랬어. 내 예상은 맞은 거야. 장미 가지들을 누가 일부러 담장 대공 사이 밖으로 끌어내고, 어떤 것은 철사로 대공에 묶기까지 한 게 아닌가. 장미꽃들은 사람에 의해서 억지로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웃었던 게다. 장미들의 고통이 가슴에 전류로 흐르는 듯했다. 장미를 아프게 한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 했던가. 식물은 사람과 동물이 자기를 어떻게 처분하든, 묵묵히 당하며 자신을 내어줄 뿐이다. 가꾸는 대로 자라나고 열매 맺는다. 미생물에서 인간에게 이르기까지, 식물을 먹지 않고 사는 존재가 몇이나 될까. 저 장미 나무들은 사람이 몸을 옥죄는 폭압을 가해도, 열심히 꽃 피워 봄을 아름답게 비췄다.
부산 아시안게임이 열린 지 올해로 21년째다. 그때 배를 타고 부산에 와서 해맑게 웃는 얼굴로 남녘 동포들을 설레게 했던 북한 응원단…. 꼭 장미 아가씨들 같았다. 그들의 일사불란한 행동과 유니폼도 관심거리였다. 반면, 어딘가 조금은 불안해 보이고, 부자유스럽게 느껴지던 기억도 있다. 우리 사회의 자유분방함과 북한 응원단의 기계 같은 움직임이 대비된 게 아닐까.
그랬다. 담장의 장미 아가씨들과 북한 여자응원단은 인위적 통제를 받는 점이 닮았던 거다. 하지만, 북한 응원단의 젊음은 그들 체제의 일사불란을 뛰어넘었기에, 우리 국민의 가슴엔 오월의 장미 웃음 같았으리라. 담장의 장미 웃음도 오월 속으로 가고, 유월이 왔다. 우리 사회는 북한과 같은 인위적 일사불란 사회를 추구하는 세력도 있다고 본다. 겉으론 그럴싸해도, 그 안엔 자유와 민주가 없다.
호국의 달 유월을 맞아 드는 생각은 바로, 자유와 민주다. 국민과 우방이 피로써 지켜낸 자유, 민주의 가치는 목숨만큼이나 고귀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