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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블록 위

보니별 2017. 7. 7. 22:58



오피니언칼럼
보도블록 위






승인 2017.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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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길수<br /><br />수필가 
▲ 강길수 
 
수필가

보도블록 위를 걸을 때는, 조심하는 버릇이 있다. 먹이 찾아 헤매는 작은 생명체를 밟지 않기 위함이다.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지 꼭 집어 말할 수는 없다.  
 
어린 시절 한 여름날, 산에 소 먹이러 갔다가 소나무 아래 누워 단잠이 든 적이 있다. 그 작은 생명체가 온 몸을 탐험이라도 하는지, 사타구니까지 기어들어가 다니며 간지럽히는 바람에 꿀잠을 깼다. 다행이도 물거나 쏘는 종(種)이 아니어서 툴툴 털고 일어났다.
 
중년기에 생명과 생태계에 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어느 날, 인도를 걷는데 웬일인지 보도블록 위를 바지런히 돌아다니는 작은 생명이 새롭게 눈에 보였다. 그전에도 숱하게 보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다시 말하면, 그날 비로소 관심이 가게 된 것이다. 환경 분야에 오래 일한 경험으로 비롯된 생태계에 대한 애정과 종교적 취향, 문학에 대한 미련 같은 마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 싶다. 그 작은 생명은 바로, 개미였다.

산골에서 자라나며 개구쟁이 친구들과 밖에서 어울려 놀 때는, 개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었다. 가재, 개구리, 뱀, 새, 물고기 같은 비교적 작고 자주 만나는 동물이 바깥 놀이의 주 대상이었다. 또, 잠자리, 나비, 매미, 풍뎅이, 하늘소 같은 잡기 어려운 곤충들도 장난감으로 삼은 존재들이었다.

그러던 개미가 세월이 많이 흐른 어느 날, 마음에 새롭게 자리 잡았다. 어릴 때 보던 개미와 같은 것인데, 다르게 다가온 것이다. 보도블록 위를 기어다니면 언제 사람의 발에 밟혀 죽을 줄도 모르는데, 먹이 찾아 헤매는 개미가 꼭 굶주린 하이에나였다. `저렇게 바지런히 먹이 찾아다니다가 느닷없이 내 발에 밟힌다면, 저 개미의 한 생은 얼마나 슬프고 허무할까`하는 생각이 화살같이 가슴에 박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날 자연 속에서 놀이의 대상이든 아니든 동물이나 곤충들과 함께 자란 세대는 산업화, 도시화 이후의 장난감세대 어린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을 누렸다 싶다. 그 축복의 내용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세상은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 나무, 풀, 곤충, 동물 등 식물과 동물, 인간이 어우러져 산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자라난 것이 그 첫째다. 둘째는, 사람과 사람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에도 함께 걸어가야만 할 어떤 길이 있다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생명체들에겐 일어날 수 있다는 현실을 바라보며 산 일이 그 셋째다. 끝으로, 자기 삶은 어떤 모습으로든 스스로 책임지고, 참으며 살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영장답게 살아왔고, 살며, 또 살아가야한다는 말이 된다. 현대까지 물질문명사회를 이루어 오는 동안,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니까 자연생태계를 마음대로 개발하고, 취하고 쓰는 것을 당연시 해왔다 싶다. `기후변화, 온난화, 자원고갈, 자연의 보복, 지구의 악질 바이러스 인간` 같은 용어들이 등장하면서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지구촌 일반 시민들의 소비 생활은 별반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물, 화석연료, 전력, 세제(洗劑) 같은 일상 소비생활에서 나부터 소비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등 친환경생활로 개인의 삶을 바꾸는 일이 요구된다. 로하스나 슬로우 시티 같은 삶을 사는 일부 사람들에서 그 본(本)을 보듯, 생명 하나하나를 소중히 다루는 `생태계사랑`이 지구촌 모든 정부들의 정책으로 채택, 수행되어야 한다는 자각이 갈수록 커진다.  

우선 보도블록 위를 걷는 사람들부터, 굶주린 하이에나 같이 헤매는 개미를 밟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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