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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묘약

보니별 2017. 5. 19. 14:31



오피니언칼럼
사랑의 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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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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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길수 수필가 
▲ 강길수 수필가

향긋한 냄새가 명지바람 품에 안겨 와 후각세포를 쿡 파고든다. 도시에선 낯선 향기다. 가까운 곳에 사람이 없으니 화장품 냄새도 아니다. 대체 어디서 날까.  
 
사월 마지막 금요일 출근길. 반 시간 정도 걸어서 운동 겸, 출퇴근을 한 지가 두 해를 바라보고 있다. 광장을 지나 학교 옆 인도를 걷기 시작할 때, 갑작스레 짙은 풀 향기가 온 몸을 감싼 것이다. 어릴 때, 친구들과 차풀이나 자귀나무 잎을 뜯어 손바닥에 몇 번 치고 나서, 코에 대고 냄새를 맡곤 하던 풀냄새 놀이가 파노라마 되어 비춰왔다. 소꼴을 베면서 맡던 농익은 풀 향기도 물안개로 밀려왔다.
 
그랬구나! 가로수 밑에 조성한 잔디밭을 조금 전 깎은 모습이 눈에 나타났다. 잔디가 채 자라기도 전에 바지런하게도 묘 벌초하듯 깎아버린 것이다. 몸 잘린 잔디 잎들이 바람에 나뒹군다. 잡초가 함께 자라서였겠지만, 내가 보기로는 그대로 두는 편이 훨씬 나았을 성 싶다. 간간이 함께 자라 피어난 노란 씀바귀 꽃들이 연록으로 자라는 잔디들과 어우렁더우렁 보기 좋았었다. 때로는 바지런도 탈이다.  

웬일인지 보름 전쯤 일이 떠올랐다. 퇴근길에 횡단보도 없는 도로를 여느 사람들처럼 건너기 시작했다. 저 쪽에 차가 오기에 습관적으로 뛰었다. 네댓 걸음 뛰었을 때,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왼쪽 무릎부위에서 `뚝`하는 소리가 난 것이다. 순간, `아이쿠, 무릎 버렸구나!` 하는 속말이 가슴을 툭 쳤다. 심한 통증에 주저앉을 뻔 했으니 말이다. 고통을 참고 절뚝거리며 미련스레 집까지 걸어왔다. 괜히 뛰었다고 소용없는 후회를 했다. 

한의원에서 몇 차례 치료를 받았다. 두 주 이상 지났는데, 삔 무릎 부위가 그전 같지가 않다. 아직 뛰지는 못해도, 큰 고통 없이 치유되고 있어 불행 중 다행이다. 하늘에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든다.

무릎 삔 생각 때문인지, 깎인 잔디밭이 수액(樹液)을 흘리며 고통 받는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수수께끼들이 연달아 콕콕 마음에 박혔다. `수액은 잔디의 피가 아닌가. 생명체 잔디가 싹둑 잘려, 남은 밑 부분이나 잘려나간 잎과 줄기 모두 피 흘리며 고통 받거나 죽어가고 있다. 졸지에 몸이 두 동강 난 체 피 흘리는 잔디냄새가 무슨 조화(造化)로 이리도 향기로울까` `생나무가 베어질 때의 향기나, 군불을 땐 후 몸에 밴 나무 탄 냄새가 좋게 느껴지던 일들은 또 무슨 연유란 말인가` 하고….

사람들은 식품업이나 농축산업, 어업, 공업, 조경, 원예 등 여러 곳에 풀과 나무 곧, 식물을 원재료로 쓴다. 식물로 만든 제품의 향기는 바로 아로마테라피가 아닐까.

식물이 고통당하거나, 죽어가며 내는 수액 냄새가 대체 왜 향기로 느껴지는 것일까. 식물을 먹는 인간과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수액 냄새를 향기로 느끼도록 태어난 걸까. 아니면, 식물이 자기를 바칠 때는 수액 냄새를 내도록 마련된 건가.  

아무튼, 내가 맡아본 수액냄새는 모두가 향기로웠다. 그렇다면, 하늘은 식물의 디엔에이 설계 시에 두 가지의 향을 `사랑의 묘약`으로 처방한 것이 아닌가. 우선, 다른 생명들의 보존과 번창을 위한 사랑의 묘약이 수액의 향이고 다음으로, 식물 자신의 종족 보존과 번창을 위한 사랑의 묘약이 꽃의 향이 되니까.  

맞아, 사랑의 묘약! 식물이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몸과 지체가 잘리거나 부서지며 흘리는 수액 곧, 피의 냄새는 바로 나를 살리는 사랑의 묘약이었던 게야. 자기 몸을 영양소로 바치며, 사랑의 묘약까지 덤으로 내어 주는 식물의 고마움을 나는 여태 제대로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고마운 마음으로 식물을 대하고, 감사히 먹고 마시며 살아가야겠다.

깎인 잔디향기가 사랑의 묘약으로, 도시의 아침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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