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이기/생각

잔인한 사월(3)

보니별 2015. 4. 28. 01:51

 

 

 

 

잔인한 사월(3)

 

올해 이곳에는 벚꽃이 삼월에 피었다.

사월이 잔인해서였을까.

내겐 벚꽃이 사람들의 잔인한 사월을 피해 피어난 것만 같았다.

얼마 전부터 벚꽃이 지고 난 꼭지들이 죄다 봄비와 함께 떨어져

많이도 누워있는 보도를 따라 걸으며 출퇴근을 하였다.

 

신발 밑으로,

 핑크빛을 띤 벚꽃 진 꼭지들이 운동화 밑창에 밟히는

발바닥의 야릇한 감각을 어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우리 인간들이 만든 잔인한 사월을,

아니 유사이래 주어진 모든 시간을

왜 이리 살아내는지.

 

사월이, 꽃피는 사월이 왜 잔인해야할까.

겨우내 혹한에 고생했던 가지들에서 새 눈이 열려,

연둣빛 생명 옷을 저리도 찬란히 갈아입는

나뭇가지들이 어디가 잔인한가.

봄 비 머금은 땅을 헤집고 솟아오르는

연록 새싹의 어디가 잔인한가.

 

우리들은 왜 자연을 배우지 못할까.

어떤 학자들은 식물도 생존경쟁으로

치열하게 산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고 느낀 식물들은 그러지 않았다.

담쟁이가 소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도,

인동초가 자귀나무를 이리저리 올라타고 놀아도

소나무와 자귀나무가 불평하는 소리를 듣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우러진 두 쪽 다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럴까.

창조주가 실수로 빚어낸 존재가 인간이란 말인가.

생태계의 최 정점에서

지성과 감성으로 단장한 이성적 존재 인간.

사랑과 미움, 선과 악, 죄와 벌을

모두 아는 의지적 존재 인간.

 

아니불사불멸한다는 영혼,

신의 모상을 닮은 영을 가졌다는 인간.

신에게서 태어났기에 존엄한 존재이며,

신에게 돌아가는 길을 추구할 줄 아는 인간.

 

삼라만상의 변화를 직시하고

 깨달음의 길을 찾아

구도, 수행, 해탈 할 줄 아는 인간.

 

우주가 자신과 하나라는 것을 본래적으로

알고 간직한 인간.

 

하늘과 자연,

 이웃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원초적으로 마음에 새긴  인간…….

 

지난해 사월,

세월호 침몰 사건 앞에서

우리네는 어떤 모습들을 보였는가.

그리고 일 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보이고 있는 모습은 또 어떤가.

 

'길가의 휴지를 주워야 하는데,

왜 줍지 않느냐'고

서로 상대방과 정부에게 말만 해대고

무조건 책임을 전가하는 여야 정치권.

제 할 바는 접어두고,

정부에게만 책임이 있으니 휴지를 치우라고 떠들어대며

강변하는 언론, 노조, 시민단체, 운동권, 일부국민들.

또, 이러한 현상을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다수의 침묵하는 국민들.

 

'길가의 휴지는 누가 주워야 하는가?'

근거도 없이 무작정 주장만 하고,

목소리 높여 떠들어대는 무리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사회.

 

 나도, 우리 각자도

그 무리 안에서 침묵하는 이상,

그런 무리중의 하나로 치부되어버리는 사실 앞에서

잔인함을,

참으로 잔인함을 또 느껴야 하는,

또 하나의 잔인한 사월…….

 

보도블록위에 무심한 듯, 무리로 떨어진

핑크빛 벚꽃 꼭지들이 말라가며 갈색으로 변하는 사월.

 벚꽃 꼭지들이 발에 밟히며 전하는 발바닥의 야릇한 감각은,

저절로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벚꽃나무 가지를 쳐다보게 하였다.

가지엔 어느새 신록이 새생명을 뽐내며,

사월의 바람에 살랑대고 있었다.

그 때, 푸른 벚꽃나무 잎들이

세상에 속삭이는 나즈막한 말이 귀에 들리는 듯하였다.

 

화무십일홍이잖아요.

그런데 열매와 나무는

우리 무수한 푸른 잎들이 키우는 것이랍니다.

아무도 모르게 일하는

탄소동화작용으로 말이에요!

마치 침묵하는 다수가

세상에 속삭이는 것 처럼.

 

그렇다.

이 잔인한 사월 끝자락의

찬란한 벚나무 신록은 우리에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마라!’고 일러주고 있었다.

아무리 절기가 빨라져도 봄은 또 오고,

벚꽃은 내년에 또 꽃을 피우고,

또 새잎은 돋아나는 법이니,

희망하는 한

우리에게  절망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2015. 4. 27.  깊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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