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킷나무 붓
강길수姜吉壽
살다보면 생각지 못한 일을 만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이른 봄, 아직 나뭇가지엔 겨울 덴바람의 여운이 남았나보다.
“윙, 위잉…….” 소소리바람이다. 앙상한 가지에 부는 바람이 살 속으로 스미듯 차갑고 매섭다. 하여, 이런 바람을 사람들은 ‘소소리’를 붙여 그 이름으로 부를 테지. 봄이 오다 말고 저 남녘 언덕 너머에서 잠들어 버렸나. 제 걸음으로 봄은 오고 있는데, 괜히 내가 트집 잡는 걸까. 아니야, 삼월 중순 날씨가 이렇다면 시비 걸만도 하지 뭐. 그래도 봄은 오고야 마는 법. 애꿎은 봄을 두고 등산길에 혼자 사설을 풀어놓고 있다.
비스킷나무. 몇 해 전 봄날, 한 문우文友와 걷다가 그 앞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던 나무다. 문우는 갓 돋아난 연록 새 나뭇잎을 보고 다짜고짜 ‘배고프다’고 했다. 왜냐고 묻자, ‘비스킷 같아 그랬다’고 했다. 나뭇잎에 비스킷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어서였다. 그 후, 나는 이 나무를 ‘비스킷나무’라 불렀다.
비스킷나무는 가지마다 작은 새눈이 봄맞이를 하고 있다. 소소리바람이 가지사이를 핥고 지나간다. 가지가 파르르 떨린다. 무언가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반갑다고 손짓을 하는 것도 같다. 두 귀를 가까이 들이대고 비스킷나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본다. 무딘 내 귀는 그 말을 듣지 못한다. 비스킷나무 뒤에 턱 버티고 선 큰 참나무가 보다 못해, 윙윙대며 무슨 말을 소소리바람에 실어 보낸다. 하지만, 내 귀엔 어릴 때부터 숱하게 들어온 바람소리일 뿐이다. 다시 비스킷나무를 찬찬히 쳐다본다.
“어! 웬일이야!” 혼잣말로 비스킷나뭇가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무가 붓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참나무가 전해준 말이 이것이었나. 가지 끝마다 뾰족한 붓을 참 많이도 쥐었다. 해마다 봄이면 나뭇가지들은 눈을 틔운다. 그런데, 오늘 다시 만난 이 비스킷나무는 웬일인지 눈 단 가지들이 붓으로 보인다. 붓들은 일제히 ‘바람을 쓸까, 하늘을 그릴까, 풀 나무를 써볼까, 꽃을 그릴까’하며 하모니카떨판같이 소소리바람에게 속삭인다.
아버지께서 벼루 통을 들고 사립문을 나선다. 내 고사리 손에는 붓을 들려 따라오게 하셨다.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를 따랐다. 철 든 후에 안 일이지만, 그날은 새로 짓는 이웃집에 상량이 있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먹을 오래 가셨다. 먹 가시는 모습이 꼭 무슨 치성을 드리는 사람 같다. 붓에 먹을 몇 번이고 잘 먹여 다독인 다음, 대패로 곱게 깍은 커다란 소나무대들보에 상량문上樑文을 휙휙 잘도 쓰셨다. 어린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다.
넓은 공간에 사람이 대여섯 명 뿐이다. 붓글씨 공부하러 간 첫날이다. 간단한 수속을 마치고 아주 오랜만에 붓과 한지를 받아들었다.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 때 몇 번 써 본 후 처음이다. 강산이 두 번은 바뀔 세월이 흘렀다. 한지를 깔고 붓글씨연습을 시작했다. 먹물을 사서 쓰니 먹 갈 일은 없다. 선 긋기 연습부터 시작했다. 옛날 아버지가 대들보상량문을 쓰시던 모습을 떠올리며 연습했다. 선 연습을 마치고부터 선생님에게서 받은 서체를 본本 삼아 연습했다. 한 주에 두 번씩 이년을 연습했으나, 그 옛날 아버지의 글씨를 따르기에는 아직도 거리가 멀다.
주위를 살펴본다. 비스킷나무뿐만 아니라 옆의 생강나무도, 커다란 상수리나무도, 벚꽃나무도 붓을 가졌다. 아니 눈을 달고 있는 모든 나무들은 물론, 사철 푸른 소나무에게도 붓이 있는 게 아닌가. 그 것도 한두 개가 아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붓을 가지고 있다. 그랬다. 붓은 사람만이 가진 게 아니었다. 나무도, 풀도 붓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가늘고 뾰족한 비스킷나무의 붓은 일곱 살 초립동이의 붓일까. 커다란 참나무의 붓과 다른 나무들의 붓은 또 어떤 붓들일까.
다시 세세히 나뭇가지들의 새눈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 나무, 저 나무의 눈트는 모습을 유심히 뜯어본다. 어떤 것은 끝이 뾰족하게 붓처럼 생겼고, 다른 것은 뭉툭한 몽당연필 끝 같기도 하고, 또 끝이 둥글게 된 것도 보였다. 사람이 쓰는 여러 필기구의 모습들과 꼭 닮았다. 나무들은 왜 저 많은 붓들을 가지고 있을까. 무에 써 두어야 할 사연이 많기에 저리도 수많은 붓들을 부여잡고 살까.
소소리바람 틈새로 한줄기 명지바람이 비스킷나뭇가지들의 붓끝을 간질인다. 붓들은 일제히 춤추듯 지나가는 바람에다 글을 쓴다. 시를 쓰고, 수필을 쓰고, 소설을 쓸 테지. 때론 일필휘지 휘호도 쓰고, 동화도 쓰며, 아포리즘도 쓸 거야. 사람이 만든 문학과 예술 장르는 물론, 사람이 모르는 장르의 글과 악보를 쓰고, 그림도 그릴 것이다.
한 달가량 지났다. 비스킷나무는 하얀 꽃을 많이도 피웠다. 작은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나서 조금 멀리서 보면 한 무리 꽃이 한 송이로 보이기도 한다. 여름 초가지붕에 해질 녘 피어나는 박꽃 같기도 하고, 큰 것은 결혼식을 마치고 신부가 던지는 하얀 부케 같기도 하다.
어린 붓들은 자라면서 잎도 되고, 꽃도 되고, 가지가 되기도 한다. 잎 붓, 꽃 붓, 가지 붓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비스킷나무 붓은 계절에 따라 변하고 있었다. 봄엔 눈이 잎이나 가지나 꽃으로, 여름엔 꽃이 열매로 변했다. 가을엔 약한 가지가 튼실한 가지로, 잎이 낙엽으로 변하고, 겨울엔 작은 눈을 깜빡이며 기다린다.
붓은 자기 뜻을 전하는 도구다. 그렇다면, 삼라만상 모든 의사소통의 도구가 바로 붓이 된다. 사람들은 글, 그림, 악보, 소리, 행위, 또는 영상이나 전파 같은 다양한 붓들로 제 뜻을 나타내고 전한다. 나무들은 몸을 철따라 다른 모양의 붓으로 변신하여 제 뜻을 나타내고 전한다. 사람은 붓을 참과 거짓, 선과 악, 오욕칠정五慾七情의 도구로 쓰지만, 나무는 붓을 자기번식과 이웃사랑만을 위해 쓸 뿐이다. 나무는 자기를 필요로 하는 동식물에게 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지 않는가.
사람이나 동물, 다른 식물의 먹이가 된 나무 붓들은 먹은 이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산다. 사람이나 동물이 나무 붓들의 메시지를 알아듣기를 바라면서…….
명지바람이 분다. 비스킷나무 붓들이 봄을 춤춘다.
- 2013. 제 13회 산림문화작품 공모전 입선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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